사람 사이를 산책할 수 없다면 나 스스로를 산책할 수 없다. 그 스스로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람을 초월하여, 사람이 된다. 사람은 사람을 초월할 때만이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 사람을 통해서만 사람 너머로 갈 수 있다. 그러므로 니체의 문장대로,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다. 언제나, 어느 순간에나,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 사람이다.
우리는 무엇이기 때문에 지상의 시간인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무엇도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된 것이다.
우리는 한없이 주저앉아서, 때로는 한없이 울면서 사람을 배워간다.
오늘도 사람 속을 걸으며 사람과 이별한다. 이별하며 사람을 이해한다.
-8, 사람 속은 내내 일렁이는 숲이네요.
이원 시인의 의 첫 산문집 '산책 안에 담은 것들'이 출간되었다.
산책은 우리를 느리게도 빠르게도 걷게 하며, 보이지 않던 것을 골똘히 들여다보게도 만들며, 느닷없는 곳에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한동안 머무르게도 만든다. 한순간에 오래된 시간을 불러오기도 하고, 끝내 오지 않을 시간과도 만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산책은 한가로운 시간인 동시에 뜨겁고 깊은 시간이다. 이런 이유로 시인 이원은 산책을 좋아하고 산책을 하면 용기가 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산책을 통해 모든 것을 제거해도 끝내 없어지지 않는 ‘훼손되지 않은 원형’을 만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다가갈수록 생각할수록 점점 더 모르게 된다. 그렇기에 시인 이원은 길을, 기억을, 당신을, 몸을, 언어를 걷고 또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또한 시인 이원은 산책을 통해 기억을 걷는다. 열두 살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모셔져 있는 상여 옆에서 소복을 입고 통곡하던 때를, 스무 살 무렵 명동의 이른 아침과 늦은 밤을 걸었던 때를, 끝나지 않을 긴 생처럼 병원의 복도에 발을 질질 끌던 때를, 반야심경을 외웠던 때를, 울어도 울어도 눈물이 계속 나오던 때를…….
그리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나게 한 사람. 자신의 근원으로서의 엄마를 떠올린다. 세상에 와서 제일 많이 발음한 단어, 엄마. 부르면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사람, “오늘도 힘들어서 어쩌니” 하시며 나보다 먼저 나의 하루를 살아보는 사람, 엄마라고 불리는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종로구 통인동 154-10번지에 살았던 시인 이상, 좌탈입망(坐脫立亡)으로 열반에 드신 한암스님, 재작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을 떠올린다.
이렇듯 시인 이원은 산책을 하면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 속을 걸으며 그 사람을 이해한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사랑’의 다른 말인 ‘사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홍대, 한강, 명동, 시장과 묘지, 골목, 동네, 갤러리……
시인 이원은 어떤 길을 걸으며 이 책을 완성했을까? 그의 첫 번째 길은 자신의 ‘나와바리’라고 말하는 홍대다. 이 선언처럼 그는 집에서 걸어서 홍대까지 가는 길을 열 가지 정도 알고 있다고 말한다. 천천히 가고 싶을 때 걷는 길, 가벼워지고 싶을 때 걷는 길 등 기분에 따라 여러 가지 길로 걸어갈 수 있다고 말이다. 홍대의 장점은 어느 시간에 가도 즉각 ‘해방!’된다는 것이다. 홍대 앞 골목들은 골목마다 걷는 속도를 다 다르게 하는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다. 현실을 비현실로, 비현실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이상한 중력을 가지고 있다. 정형화된 틀 속에 갇히지 않은,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이 뒤섞인, ‘삐급’들의 거리, 그곳엔 새로운 문화가 창조되는 용광로가 있다.
두 번째로 시인 이원은 골목을 걷는다. 숨어들기 좋고 숨어 있기 좋은 곳, 최소한의 통로이자 숨통이 되는 골목의 중요성을 말한다. 그리고 재개발이라는 명분과 함께 골목이 사라졌을 때를 슬퍼하고 요즘에 싹트고 있는 골목의 부활을 기뻐한다. 골목이 생겼다는 것은 작은 것들이 생겨났다는 뜻, 다시 말해 독특한 단 하나의 것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독립 책방, 피규어 가게, 집밥 식당 등이 속속 생겨나는 골목에서 진정한 문화를 만난다.
세 번째로 시인 이원은 한강변을 걷는다. 그는 한강변을 걸으면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유연한 힘이 생겼다고 고백한다. 나에게서 쓸 데 없는 자존심을 걷어내주고, 초라하다는 자의식도 걷어내주고, 부풀려진 욕망도 걷어내주고, 그냥 ‘있다’는 뜨거운 자존감만의 몸이 생겨나게 해주었다고 말한다. 네 번째로 시인 이원은 동네를 걷는다. 그리고 슬리퍼를 신고 트레이닝복을 입고 헝클어진 머리로 어슬렁거리는 동선이 생긴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말한다. 그렇게 동네를 거닐면서 나만의 지도를 만들어가는 재미를 공개한다.
그다음 시인 이원의 산책은 자신의 대학 시절의 추억이 가득 담긴 명동으로 이어지고, 슬프고 힘들 때 찾는다는 시장과 묘지로 이어진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산책하고, 엄마를 산책하고, 시인 이상을 산책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떤 의미에서 자신을 자주 울게 만드는’ 갤러리를 산책한다.
책 속으로
사이는 사랑이다. 채워도 채워도 비어 있는 것, 주어도 주어도 모자라는 것이 사랑이다. 채우지 않으면 비어 있는 곳도 없으니, 주지 않으면 모자라는 것도 없으니 채우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탄생하는 공간. 주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결핍되기 시작하는 시간, 사랑. 사랑은 나를 사라지게 한다. 사랑은 내가 사라질 때만 지속된다. 당신의 손이 먼저이고 당신의 안색이 먼저이고 나는 점점 사라진다. 내가 사라질 때만 나타나는, 내가 부재할 때만 계속되는 순간. 당신을 통해서만 내가 사는 것. 사랑의 방향, 그리고 시간의 방향.
-1.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를 ‘산책’(24쪽)
문화가 있는 거리는 은폐된다. 은폐된 곳에서 은폐의 힘으로 개방된다. 이 역설의 논리가 문화의 힘이다. 숨어 빵을 굽고 있는 작은 공간으로 사람들이 찾아온다. 서로 어깨가 닿을 듯한 거리에서 그러나 어깨가 닿지 않고 소곤거린다. 문화에 대한 또는 문화라는 최소한의 예의.
‘문화 게릴라’라는 표현이 가능한 것은, 숨어 있는 동시에 언제든 뒤집을 수 있는 전복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 문화이기 때문.
-2. 장난감의 시간, 보물의 시간(50쪽)
골목이 다시 생겨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골목의 목록을 다시 만들어갈 수 있다.
골목은 사이에 난 길이다. 마주 보는 이쪽과 저쪽이 있다. 가게끼리 마주 보며 있기도 하고 벽과 집이 마주 보고 있기도 하다. 벽과 벽이 마주 보고 있기도 하다.
골목에서는 멈춘다. 당기는 안쪽이 있기 때문이다. 골목에는 냄새가 배어 있다. 빠져나갈 것은 다 빠져나가도 남는 최종의 것들. 그것들이 섞이며 만드는 것을 문화라고 부른다.
골목. 숨어들기 좋은 곳. 숨어 있기 좋은 곳. 최소한의 통로. 숨통.
-3. 골목의 부활-대강(大綱)에서 상세(詳細)로(63쪽)
내가 걷는 한강에는 다 있다. 강의 물, 물의 결, 물의 결 속, 물의 결 위 공기와 햇빛과 어둠, 다리들, 나팔꽃들, 붉고 찢어진 발가락을 가진 비둘기들. 찢어진 발가락을 신발 속에 감춘 사람들, 걷고 달리고 자전거를 타고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애완견을 끌고, 운동을 하고, 낚시를 하고, 졸고, 눕고, 앉아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아이, 엄마, 여자, 연인, 친구, 남자, 수녀, 벤치, 운동기구, 절두산, 강 건너편으로 국회의사당, 순복음교회, 방송국, 자전거, 풀밭, 바람의 방향에서 바람의 방향으로 휘어지는 나무들, 내 안으로 흘러드는 가장 먼 강물.
-4. 고요한, 더 고요한, 가장 고요한(91쪽)
우리 동네가 된다는 것. 슬리퍼를 신고 트레이닝복을 입고 헝클어진 머리로 어슬렁거리는 동선이 생긴다는 것. 잘 모르는 가게 주인과도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눌 수 있다는 것. 뒷골목에 있는 오래된 빵집과 오래된 떡집을 비교할 수 있다는 것. 가장 맛있는 떡과 빵을 고를 수 있다는 것. 나만의 지도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 지도에 생겨나고 사라지는 곳을 표시할 수 있다는 것. 길을 자꾸자꾸 발견하게 된다는 것. 알게 되는 골목만큼 잠시 멈춤, 즉 간단(間斷)의 시간도 늘어간다는 것.
-5. 나만의 지도를 만들어가는 곳, 우리 동네(95쪽)
그러나 내가 명동을 자주 걷는 것은 ‘풍성한 시간’이어서만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내게 명동은 서울예전(물론 지금은 서울예대라고 부르지만)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학교에 다니면서 시라는 것을 쓰게 됐는데, 시를 쓰는 순간에만 시간을 만나는, 그러니까 나에게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뜨거운, 숨 막히는 것이 시간이라는 것을, 슬프거나 고통스러워서가 아니라, 충만해서 뜨겁고 숨 막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6. 기억, 고도 삼천 피트의 얼굴(114쪽)
소란스러운 시장의 한 구석에서 고요를 만나게 될 때, 고요한 묘지의 한구석에서 고요 안의 고요를 만나게 될 때, 그 고요는 둘 다 잘 스며 있다. 묘지에서 만나는 고요, 시장에서 만나는 시장의 고요. 둘 다 잘 삭아 있다. 시장에 스미는 고요와 묘지에 스미는 고요는 닮아 있다.
묘지에서, 시장에서, 고요를 만날 때, 그것이 고요의 맨 얼굴 같다고 생각된다.
-7. 시장과 묘지, 거대한 심연(131쪽)
이원 지음 | 세종서적 | 240쪽 | 13,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