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기간만 되면 영화인들로 북적였던 해운대 술집 골목.
개막식이 끝난 6일 밤, 기자는 축제 분위기를 만끽하기 위해 해당 골목을 찾았다. 여전히 흥에 취한 영화인들 몇을 만났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골목이 북적이지는 않았다. 즐겁게 웃고 떠들며 반가운 인사가 울려퍼졌던 시절이 찰나처럼 스쳐 지나갔다.
'영화제를 축제로 즐기며 웃고 떠들 상황이 아니'라는 영화인들의 이야기가 현실이 된 셈이다.
사람들이 꽉 찬 술집은 세 군데 남짓 정도였다. 그곳에서도 영화계 관계자나 기자할 것 없이 다 같이 어울리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영화인들은 영화인들끼리, 기자들은 기자들끼리 작게 크게 술자리를 가졌다.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 초기의 조심하는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단체 술자리는 '더치페이'를 하기가 쉽지 않고, 그렇다고 얻어 먹자니 '직무관련성'이 걸려 관계자들과 술자리를 가지기 어려운 상황인 것.
지난해 영화인들로 발 디딜 틈 없었던 한 식당은 한산하기 이를데 없었다.
'원래 개막식인데 이렇게 사람이 없느냐'고 물으니 "올해는 좀 이상하다. 개막식이 제일 붐비고 바빠야 되는데 이 근방이 너무 한산하다. 영화인들이 보이콧한다는 얘기는 나도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고래고기' 등을 취급하는 고급 식당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환하게 식당 불은 켜져 있었지만 안에는 극소수의 손님들만이 자리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한적'을 넘어서 그야말로 '썰렁'한 분위기였다.
자정이 넘은 시각, 골목을 벗어나 해운대 해변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직 영업이 끝나지 않은 해운대 포장마차촌을 돌아보기로 했다.
태풍이 휩쓸고 간 탓인지 황량하기까지 한 기운이 감돌았다. 몇 집 건너 드문 드문 앉아 조용히 담소를 나누는 손님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손님을 맞지 못한 포장마차 주인들은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한 포장마차 주인은 "우리도 속상해 죽겠다. 태풍이 다 휩쓸어 갔는데 뭘 어쩌겠느냐"고 불만을 내비쳤다.
그래도 부산에 왔으니 해운대 해변을 만끽하고 싶어 숙소까지 걷기로 결정했다.
포장마차 주인의 말처럼 태풍 '차바'가 휩쓸고 지나간 해운대는 아직 복구가 끝나지 않은 흔적이 역력했다. 산책로와 모래사장의 경계에는 바람과 파도에 넘어 온 모래들이 울퉁불퉁 쌓여 있어 해변으로 넘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해변으로 넘어가길 포기하고 걷다 보니 미처 치우지 못한 청소도구들이 산책로 주변에 쌓여 있었다. 모래사장에는 복구 작업을 위한 포크레인들이 을씨년스럽게 멈춰 서 있었다. 가끔씩 깜깜한 밤하늘 위를 수놓는 폭죽만이 축제임을 잊지 않은 듯 시끄럽게 반짝였다.
얼마를 걸었을까. 복구작업 때문에 폐쇄된 산책로를 맞닥뜨렸다. 다시 인도로 올라가 숙소까지 걷는 길이 유독 길고 지루했다. 해운대에서의 첫날 밤, 아직 치유되지 못한 갖가지 상처들은 이곳 저곳에 널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