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이틀 더 쉬라'는 의사의 만류도 뿌리치고 자리를 털고 일어선 그는 곧바로 대전 현충원으로 향했다. 링스헬기 추락 사고로 숨진 조종사 묘비에 참배한 그는 1박 2일 일정으로 울산과 부산, 제주도의 수해 피해 지역 현장 점검에 나섰다.
그의 일정은 1시간 단위로 촘촘히 짜여졌다. 국정감사 기간임을 감안해 당직자는 대동하지 않았다. 국회를 방문하지 않은 그는 의원들에게 '복귀 문자'를 돌리는 것으로 인사를 갈음했다.
이 대표는 건강 상태를 감안할 때 당초 이번 주 말쯤 국회로 복귀해 다음 주부터 본격적인 업무를 수행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태풍 피해가 예상보다 심각한데다, 이 대표가 국감 보이콧으로 국회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던 것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중진 의원은 "이 대표가 국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큰 데다가 국민들이 수해로 고생하는데 병실에 가만히 누워있지 못하겠다고 했다"며 "당 대표가 움직이면 아무래도 복구에 속도가 붙기 때문에 현장에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당 대표로서는 사상 초유였던 단식 카드도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하는 등 '빈손 회군'에 집권당 수장으로서 체면을 구긴 점도 이 대표가 민생 현장을 먼저 선택하게 된 배경으로 지목된다.
당 관계자는 "평소 식사량이 많은 대식가인 이 대표가 일주일 동안의 단식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현재도 죽으로 식사를 하고 있지만 기력이 전반적으로 쇠약해졌다"고 말했다.
◇ 운신의 폭 좁아진 이정현, 민생 행보 이어갈 듯
이 대표는 이날 저녁 새누리당 부산시당에서 수자원공사와 한국전력공사 등 관계 기관과 함께 긴급 현장 당정 회의를 진행했다.
비박계를 중심으로 책임론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고육지책으로 선택한 이 대표의 민생 행보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리더십에 치명상을 입은데다 야당을 상대로 단식이라는 카드를 이미 소진한 이 대표의 운신의 폭이 좁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6일 부산에서 진행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의 한국마사회 국감에서 여당 의원들은 이 대표가 부산시당에서 진행한 긴급 당정 회의 참석을 권유받았지만, 개인 일정 등을 이유로 모두 참석을 거절했다.
당 핵심 관계자는 "국감 복귀 후유증으로 비박과 친박 모두 책임론을 전면적으로 거론할 힘이 모두 소진된 것 같다"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연말 예산정국 전까지 이 대표의 민생 행보는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