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개들에게 시민권은 없다

신간 '버려진 개들의 언덕'

'버려진 개들의 언덕'은 유기견 12마리의 삶을 묘사함으로서 인간 중심의 도시 문화 속에서 쉽게 버려지고 아무렇지 않게 폭력의 대상이 되는 버려진 개들의 비참한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대만의 자연·생태 문학가인 저자 류커샹은 101번지 골목길을 떠도는 개들을 관찰하면서 객관적인 연구자의 자세를 유지한다. 개들과 가까이 지내지고 않고 그들의 삶에 관여하지도 않는다. 덕분에 독자들은 도시에 버려진 개들의 참혹한 삶을 거르는 것 없이 날 것 그대로 마주하게 된다. 저자는 책 속 개들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들개에 대한 편견을 바꿔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들개는 다 비슷한 모습일 거라 생각하지만 책 속에서 개들은 삶을 마주하고, 기쁨을 즐기고, 다른 개들과 관계를 맺고, 위기를 극복하는 방식이 다 다름을 보여준다. 그 안에서 독자들은 12마리 개들 각자의 삶을 응원하게 된다.

이들에게는 함께 지내던 친구, 새끼,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영영 돌아오지 않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항시 배고픔과 불안에 떤다. 우리가 무슨 권리로 이들에게 이런 지옥 같은 삶을 강요할 수 있을까. 개들은 버려진 아이들처럼 길거리를 떠돌고, 돌봄을 받지 못하다 보니, 불량 청소년처럼 위협적으로 굴 때도 있지만 열등감에 빠져 자신감 없어 할 때가 대부분이다. 충성스러우면서도 단순한 개들은 잔인하게 버려지면 몸과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아 오랫동안 두려움 속에 살게 된다. 버려진 개들은 더 많은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존재일 뿐임을 책 속 12마리 개들이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20년 전 대만의 이야기이지만 현재 한국의 길 위에 사는 동물들의 모습과 똑같다. 유기견과 길고양이, 산 속의 들개... 주린 배를 채우지 못하고, 질병에 걸려, 차에 치여 죽고, 포획되어 시설에서 안락사로 죽어가는 동물들에게 도시는 가혹하다. 도시는 버려진 개들에게 살 권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버려진 개들에게는 시민권도 생존권도 없다.

길 위의 동물에 대해 장기간의 관찰과 분석도 없이 마구잡이로 포획해서 죽이기에 급급한 한국의 동물 관련 정책에 일침을 가하는 책이기도 하다. 들개 관련 부처와 언론은 행인을 위협한다며 들개를 폭력배처럼 무섭게 묘사하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않으려는 처사이다. 들개는 심각하게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는다. 그럴 힘도 능력도 없다.

실제로 버려진 개들은 어딜 가나 오해를 받고 위협을 당한다. 그러다가 때로는 위험을 피하지만 대개는 난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삶에 실패한다. 이 책은 책상에 앉아 관련 정책을 생산하는 자들에게 살아있는 자료를 전달한다. 사람들은 버려진 개들을 불결하고, 무리지어 다녀서 위험한 존재로 치부한다. 하지만 그들은 허기를 채우지 못해 멍한 눈으로 살기 위해 애쓰고 있을 뿐이다. 또한 그들에게 무리는 동료에게 돌봄을 받고, 협력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삶의 한 방편이다. 그들은 우리가 보호해야할 대상일 뿐이다.

류커샹 지음 | 남혜선 옮김 | 책공장더불어 | 256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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