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티켓은 김영란법의 선물 상한액에 맞춘 5만원 이하의 공연 관람권을 말한다. 그동안 문화 마케팅 차원에서 이뤄지던 기업 협찬이 줄어들면서 고육지책으로 나온 대안이다.
오는 12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지휘 거장 마리스 얀손스와 독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내한공연의 경우 최근 관람권 예매를 시작하면서 콘서트홀 2층과 3층 전체를 최하등급인 C석으로 조정하고 티켓 가격을 1장당 2만5천원으로 낮췄다. 이전에 비슷한 수준의 오케스트라가 같은 장소에서 공연했을 때 C석은 보통 5만∼7만원이었다.
특히 2층 좌석의 인하 폭은 매우 큰 편이다. 보통 2층은 R-S-A-B-C 등급으로 나뉘는데, 2층 전석이 C석으로 낮춰지면서 기존의 비슷한 공연 때 최고 30만원을 넘던 R석 자리 일부가 2만5천원에 풀리게 됐다.
이 공연을 준비하는 클래식음악 공연기획사 빈체로는 "상당한 손해가 예상되나 기업 협찬·후원이나 단체 구매에 지장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고민 끝에 이같이 결정했다"고 전했다. 기업이 VIP 고객 등에게 초대권 2장을 선물해도 5만원 이하가 되게 맞춘 '고육책'이라는 설명이다.
앞서 서울의 한 공연장도 김영란법 시행 직후에 열리는 공연에서 초대권용 좌석을 확보하기 위해 최저가인 3만∼4만원 좌석 비율을 소폭 늘렸다. 이 공연장은 내년도 공연 라인업을 정할 때 최저가 티켓 기준을 5만원으로 삼을 방침이다.
또 서울 소재의 공공예술단체는 티켓에 단체와 협찬사 이름을 병기하면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을 준수합니다'와 같은 안내 문구를 넣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공연계의 이런 움직임은 기업 협찬을 받아 공연 제작비를 충당하던 오랜 관행에 제동이 걸린 결과다.
그동안 기획사는 부족한 제작비와 공연 수익을 기업 협찬으로 채우고 기업들은 협찬금 가운데 20∼50%를 초대권으로 돌려받아 VIP 고객 관리나 문화 마케팅에 이용해왔다.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으로 5만원 이상의 초대권이 뇌물로 해석될 우려가 제기되면서 이 같은 '공생 관계'가 타격을 입게 됐고, 이에 기업 협찬이 끊길 것을 걱정한 업계에서 자구책으로 '김영란 티켓'을 내놓은 것이다.
실제로 협찬을 약속했다가 '김영란법 시행 후 상황을 좀 지켜보자'며 계약 확정을 미루는 기업들이 상당수 있다고 공연기획사들은 전했다.
이런 '김영란 티켓'이 공연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
얀손스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공연의 경우 일반 관객들은 초대권 확보를 위한 기획사의 티켓 가격 인하로 반사이익을 누렸다.
이 공연의 티켓 예매 시작일에 클래식 팬들 사이에서는 '2∼3층의 좋은 자리가 2만5천원에 나왔다'는 입소문이 나 C석 예매 경쟁이 일어났다.
하지만 기업 후원이 계속 위축되면 장기적으로는 티켓 가격이 올라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클래식음악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해외의 스타 아티스트를 초청하는 대형 공연의 경우 기업 후원금이 지출 일부를 충당해준 덕에 그나마 티켓 가격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협찬이 줄어든다면 일반 관객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공연예술 전반이 위축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또 다른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내년 초까지는 협찬기업이 정해져 있지만, 그 이후에 계획하고 있는 공연에서는 협찬사를 구하기 어려울 것 같아 걱정"이라며 "협찬이 줄어들면 제작비가 많이 드는 해외 유명 아티스트나 오케스트라 초청 공연을 기획하는 데 지장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초대권이 남발돼서는 안 되지만 관객 저변을 넓히는 측면도 있다"며 "김영란법의 취지에는 공감하나 공연 시장의 특수성이 고려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