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월 4일, 부산 낙동강변 엄궁동 555번지 갈대숲에서는 참혹한 모습의 시신 한 구가 발견됐다.
증거는 없었지만 목격자에 따르면 한 명은 키카 크고, 한 명은 작다는 범인의 특징은 그 시기 낙동강변에서 잇따라 발생한 여러 건의 강도 상해 사건들의 범인들과 매우 흡사했다. 악명 높은 이른 바 ‘엄궁동 2인조’가 저지른 또 다른 강력사건인 것으로 보였다.
엄궁동 2인조는 현장마다 지문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수사는 지체되는 듯 보였다. 그런데 사건 발생 2년 후, 인근 경찰서에서 엄궁동 사건의 용의자들이 전격 검거됐다.
한 명은 키가 컸고 다른 한 명은 키가 작아 엄궁동 일대 연쇄 강력사건 용의자에 대한 목격담과도 들어맞았다. 무엇보다 담당 수사관은 그 두 남자한테서 어떤 수상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체포된 2인조에 대한 조사과정은 이상했다. 10여 차례가 넘는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범행과 관련된 진술을 두 사람이 끊임없이 번복했다. 일관되지 않던 두 사람의 진술이 어느 시점부터 정리됐다.
최종 수사 결과, 검거된 두 사람 중 체격이 큰 최씨가 각목으로 피해자 박씨를 구타한 후 키가 작은 장 씨가 돌을 이용해 살해한 것으로 확인됐다. 두 사람은 살인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항소와 상고를 거쳐 대법원에서도 판결은 번복되지 않았다.
이들의 무죄를 확신하며 20년 전 재판 시작부터 변호를 맡았던 사람은 당시 부산에서 활동했던 문재인 변호사. 그는 장 씨의 시력이 장애에 가까울 정도로 나빴다는 사실은 최씨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수사과정에서 장씨를 엄궁동 살인 사건의 공범으로 지목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다른 사건 용의자로 먼저 체포된 최씨가 형사들로부터 이른 바 ‘공사’를 당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장씨는 이미 혐의를 인정했으니 최씨도 혐의를 인정하면 가혹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속임수, 일명 ‘공사’에 넘어갔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주장대로 그들은 수사기관의 가혹행위로 인해 허위자백을 했던 걸까? 그들은 어떻게 직접증거가 하나도 없는 사건에서 자백만으로 유죄판결을 받을 수 있었던 걸까? 만일 그들이 범인 아니라면 엄궁동 사건의 진범은 누구일까?
이번 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엄궁동 사건의 수사기록을 면밀히 재검토하고 당시 수사를 맡았던 형사들과 주변 인물들을 찾아 엄궁동 2인조의 23년 전 자백과 오늘의 고백 중 무엇이 그날의 진실을 가리키는지를 파헤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