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시행을 하루 앞둔 27일 저녁, 서울 광화문의 한 중식당에서 메뉴를 받아 적는 이모(44) 씨의 손놀림이 분주해졌다.
웅성거리는 손님들 이야기 소리에 주문을 잘 못 들었는지 이 씨는 연신 주문서를 지웠다 고쳤다.
이 중식당을 운영하는 이 씨는 "오늘 평소보다 50% 더 많은 손님이 가게를 찾았다"며 "3만 5000원짜리 저녁 코스에 나오는 음식들 중 손님과 상의해 3만원에 제공하는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입구 포스터에 적힌 '주류 4900원 무제한 리필'과 '김영란 세트' 도장을 보더니 곧장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이 식당 관계자 박모(33·여) 씨는 "법 시행에 맞춰 합리적인 가격에 음식을 제공했다"면서 "음식, 후식, 그리고 주류를 포함해 3만원이 넘지 않아 오늘(27일) 저녁에만 예약자가 80명이 넘는다"고 했다.
◇ 적자생존, '김영란세트 하나 정도는 있어야지...'
국회 앞 여의도의 한 일식집은 한창 바쁠 저녁 7시인데도 홀이 텅 비어있었다.
잠시 가게 앞에 멈춰선 사람들도 '참치회 7만원'이라고 적힌 입간판을 보더니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이 일식집 관계자는 "손님 한분이 '여기도 2만9000원짜리 김영란세트 하나 정도는 있어야하지 않겠느냐'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 뒤늦게 새로운 메뉴를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씨는 "정치권에서는 김영란법 때문에 저녁 약속을 잡지 않는다고 말하면 누구나 이해하는 분위기"라며 "당장 내일(28일)부터 잡힌 약속이 없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건배'를 외친 뒤 벌개진 얼굴로 화장실을 찾은 공무원 A(36) 씨도 "더치페이를 약속한 선·후배들과 김영란법 전야를 보내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법이 잘 지켜져 '특정인이 쏘는' 문화가 사라져야한다"고 말했다.
◇ 김영란법 전야 만끽파도
B 씨는 "오늘은 (김영란법 시행) 전야인데 약속이 없으면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농담을 던졌다.
광화문의 한 고급 중식당은 오랜만에 김영란법 전야 만석을 기록했다.
이 식당 관계자는 "손님들이 김영란법 시행 전날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비싼 메뉴를 시켰다"면서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2차 자리로 옮겼다"고 전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시작된 김영란법 혁명. 과연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