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의 악인들이 만나는 배경은 가상 공간인 '안남시'이고, 주인공인 부패경찰 한도경(정우성 분)은 악의 정점에 서 있는 안남시장 박성배(황정민 분)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박성배를 잡아 넣으려는 검사 김차인(곽도원 분)이 측근 한도경에게 어떤 제안을 하면서 일이 점점 꼬여간다. '아수라'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재개발이 필요한 '안남시'의 뒷골목들은 영화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가난한 이들과 범죄자들 그리고 약쟁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사는 이곳은 마치 무질서와 혼돈이 난무하던 홍콩의 '구룡성채'를 연상시킨다. 공간마다 누아르다운 어둡고 우울한 색채에 질척한 피칠갑이 더해져 그럴듯한 몰입감이 형성된다.
액션은 전적으로 배우들의 몫이다. 정우성의 빗속 자동차 추격장면처럼 영화는 초반부터 끝까지 비린 날 것의 액션을 곳곳에 배치해놨다. 철저하게 계산된 각 잡힌 액션이 없는 대신, 배우들은 온 몸으로 부딪치고 악에 받쳐 주먹을 휘두른다. 덕분에 군더더기 없이 통쾌하게 떨어지기보다는 잔상이 진하게 남는다.
완성되지 못한 악인 도경과 그를 둘러싼 각종 악인들은 인간의 힘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결말까지 질주한다. 점점 더 악하고, 강해질수록 보이지 않는 수렁이 악인들의 발목을 붙잡고 끌어 내린다.
'악인열전'이라고 해도 이들 모두를 '절대 악'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저 각자의 입장과 처한 상황에 맞춰 세상을 견뎌낸다. 다만 그 방식을 정의롭지 못한 방향으로 선택했을 뿐이다. 그래서 악인들이 폭주하고 파멸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인간의 나약한 내면이 드러나기도 한다.
신사다운 이미지를 갖고 있는 정우성의 거친 욕설이 다소 어색할 수는 있어도, 주연 배우 5인의 연기는 잘 어우러지는 편이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서로 얽히지만 실제로 끈끈하게 뭉쳤던 관계만큼이나 튀는 호흡없이 무난하다. 특히 가장 강한 강도의 악역을 맡은 황정민의 완급 조절이 돋보인다.
이런 류의 사나이픽처스 영화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아수라'에서도 여성 캐릭터들이 특별한 역할을 해내지는 않는다.
병상에 있는 도경의 아내는 도경을 향한 연민 혹은 협박의 도구처럼 쓰이고, 검찰팀의 단 하나 뿐인 여성 수사관은 미미한 존재감으로 일관하다가 박성배의 잔혹성을 더 돋보이게 하는 피해자로 전락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이라는 사자성어에 걸맞는 시점도 존재한다. 때때로 자극적인 색채는 무의미한 과대 포장으로 느껴지고 극도로 노골적인 표현방식은 잔인함을 위한 잔인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다소 부족한 절제가 아쉬움을 남긴다.
결코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악인 도경은 어쩌면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와 닮아 있다. 박성배와 김차인 사이에서 미끼처럼 소모 당하는 도경의 기색은 굴곡진 사회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현대인들의 피로와 다르지 않다.
'아수라'라는 제목에 얽힌 에피소드가 흥미롭다. 시나리오를 읽어 본 황정민이 '이거 완전 아사리판이네'라고 한 말에서 착안해 최종적으로 '아수라'라는 제목이 결정됐다고.
제목처럼 '아수라'는 세상이라는 혼란에 휩쓸려 끝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모든 불행을 세상 탓만 할 수는 없다. 그 가운데에서도 우리는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찾아간다. 결국 스스로 가둔 절망의 덫에서는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고,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아수라'의 공포는 악행이 아닌 섬뜩한 '책임'이다. 28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