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품고 나빌레라…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지진·화산 폭발에도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뚝심의 장소

야자수를 연상케 하는 나무들을 지나 시골마을에 들어섰다면 그곳이 족자카르타다. 헛헛한 도시에서 외로웠던 마음을 달래줄 생명수 같은 도시다. (사진=강민혜 기자)
일과 사람에 치여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거나 새로 충전할 힘을 얻고 싶다면 끈질긴 생명력의 도시 족자카르타(Yogyakarta)를 추천한다. 속세를 떠나고 싶지만 그래도 혼자는 무서워 시끌벅적한 사람들 속에서 생각을 전환하고 싶다면 족자카르타가 최적의 장소다.

야자수를 연상케 하는 나무들을 지나 시골마을에 들어섰다면 그곳이 족자카르타다. 헛헛한 도시에서 외로웠던 마음을 달래줄 생명수 같은 장소다. 인도네시아 자바(Java)섬 중앙부의 자와텡가(Jawa Tengah)주 하단에 위치한 특별구다.

자연재해 등 고난을 수차례 이겨내고 새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인 희망찬 장소라 그 땅을 밟으면 덩달아 기운이 오르는 것만 같다. 경주 지진의 기억과 맞물려서인지, 이 장소에 더욱 애착이 간다.

메라피 산. 화산재가 휩쓸고 간 마을에 남은 녹아내린 자전거의 모습이다. 뒤로 관광객들이 보인다. (사진=강민혜 기자)
족자카르타는 화산과 지진 등 수많은 자연재해를 겪은 피해 기억을 가졌다. 숙연해지려는 방문자가 무색하게, 이들은 그 기억을 오히려 재생산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정작 현지인들은 지진과 화산 폭발의 흔적을 경제활동을 다시 일궈낼 상징적 장소로 여기는 셈이다.

지진이 온다는 예고가 오면 석 달씩 텐트 생활을 이어간다. 그 땐 한 마을이 서로를 도와 상부상조한다. 타국에서 지원을 받으면 옆집의 기저귀를 사주고, 분유를 나눠 먹는 식이다. 자연이 주는 어려움에 시름하지만 두려워만 하기보다 함께하는 힘으로 이겨내는 모습에 더 익숙한 곳이다.

◇ 하늘이 내려다보는 보루부드르 사원

보루부드르(Borobudur) 사원 모형이다. 입구에 전시돼 있다.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이다. (사진=강민혜 기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보루부드르(Borobudur) 사원은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다. 수천년 전 누군가의 손에서 새긴 부처의 이야기를 현재도 만나볼 수 있다.

갑자기 쏟아진 굵은 빗줄기에 몸을 피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기자가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7일 내내 비가 왔다. 9월은 우기도 아니라 매우 특별한 현상이란다. (사진=강민혜 기자)
너무나 많은 이들이 방문해 훼손 우려까지 있다. 기자가 방문한 날 먹구름이 몰려와 꾸물거리던 날씨는 이곳을 찾은 이들이 아주 짧게 꼭대기를 엿볼 짬을 준 후 곧 장대비를 내린다. 이제 내려갈 때가 되었으니 발길을 재촉하라고 말을 건네는 것만 같다.

사원을 오르면 벽에 조각된 부처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출가 전후 이야기를 모두 담았다. 시간 부족 등의 문제로 제대로 복원하지 못한 부분도 눈에 띈다. (사진=강민혜 기자)
사람들을 서둘러 걸음을 재촉한다. 아기들도 맨발로 가파른 사원 계단을 걸어 내려간다. 꼭 하늘이 조정 한 번 하는 것만 같아 신기하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동그란 검은색으로 보여 신비할 게 분명한 이곳의 조각들은 유네스코에서 복원하며 시간, 재료 문제로 제대로 끼워맞추지 못한 부분도 일부 존재한다.

사원 중턱에서 만난 천진난만한 아기의 모습. 이곳 사람들은 낯선 이의 카메라에도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혼자 힘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는 모습이 앙증맞다. (사진=강민혜 기자)
현지인들은 시간을 들여서라도 제대로 맞추고 싶어했지만 협상이 쉽지 않았다. 유네스코 측에 문제를 제기할 법도 한데, 기자의 질문에 현지인은 한사코 "그들이 잘못한 게 아니"라고 손을 내젓는다.

◇ "화산 폭발? 나만 믿어"

아직도 불을 속으로 안고 요동치고 있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메라피 산(Mount Merapi·해발 2968m)에 가면 스릴 넘치는 지프투어를 즐길 수 있다.

활화산으로 지난 2006년 5월에도 폭발해 정부 차원의 대피령이 내려진 바 있다. 그러나 이 때 산의 수호신으로 통하던 무당(현지인은 그를 '할아버지'라고 불렀다)이 안전할 거라고 예언했다.

녹아내린 텔레비전의 모습. 가운데 접시형태의 기념물에는 'BUSAN KOREA'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현지인은 아마 집주인이 그곳 공장에서 일한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전했다. (사진=강민혜 기자)
고향을 떠날 수 없던 일부 사람들은 군인들이 트럭을 몰고 강제로 대피시키려 해도 이곳에 고집스레 남았고, 결국 이들을 대피시키려던 일부 대학생들과 함께 200여 명이 이 산에 묻히고 말았다.

그게 고작 10년 전쯤의 일이니, 이곳 사람들에게는 이 산이 아득하게 두려울 법도 한데, 정작 이곳은 그 무당의 죽음 이후 관광지로 더욱 번창하고 있다니 아이러니다.

현지인은 "그 할아버지는 화산을 자기가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해 유명인사가 되어 광고도 찍었고 방송 인터뷰도 여러 번 했다"며 "정작 그 자식들은 모두 대피했다"고 전했다.

◇ 화산 폭발 당시에 멈춘 시계…골격만 남은 집

멈춘 시계. (사진=강민혜 기자)
투어 과정에 화산재가 휩쓸고 지나간 마을을 볼 수 있다. 마을이었던 곳이 지금은 골격만 남았다. 폭발 당시에 멈춰버린 시계와 흘러내려 녹아버린 텔레비전이 참혹했던 모습을 전한다.


화산재로 뒤덮인 옷이 걸려 있다. (사진=강민혜 기자)
이 집의 거실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한 쪽 벽에는 부산 기념물이 걸려 있다. 현지인은 "아마 부산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전했다. 그 연유에 대한 궁금증을 더해 마음을 아프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프차를 타고 이곳을 오르내리는 코스는 분명 매력적이다. 가다보면 곳곳에서 집을 공사하거나 화산재를 수출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화산재가 필요한 곳에 수출하기 위해 작업 중인 인부들의 모습이다. (사진=강민혜 기자)
고향이라 돌아온 사람도 있단다. 돌아온 이유가 땅값이 싸기 때문이냐는 기자의 건조한 물음에 "그런 건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이곳의 아이러니를 더하는 부분은 또 있다. 꼭대기엔 과거 사용되던 대피용 벙커가 있는데, 화산재가 뒤덮으면 700도까지 오른단다. 결국 이곳에서 두 사람이 말라 죽었고, 무용지물이라는 목소리가 나와 현재는 쓰지 않는다. 아직도 열기가 남았다는데, 관광객에게 개방하고 있다.

벙커 내부. 칠흙같이 어둡다. 현재 관광객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사진=강민혜 기자)
수년이 흐른 지금은 고통 속에 말라 죽어갔을 이들의 흔적 그 위에서 활짝 웃으며 사진 찍는 이들이 있다. 그 앞엔 별다른 목적 없는 장식용 꽃을 판다. 애도를 표하는 의미냐고 묻자 관광청 직원 다나(Dana·31)는 손사레를 치며 "단순 장식용"이란다.

이런 생각을 전하자 관광청 직원 트퀴아(Tquia·28)는 이에 대해 "경제활동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 슬프게만 여길 일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 빗 속의 프롬바난 사원

프롬바난 사원을 배경으로 공연하는 배우들의 모습. (사진=강민혜 기자)
힌두신을 기리는 프롬바난(Prambanan) 사원을 찾은 첫 날도 비가 내렸다. 거센 빗물은 곧 시냇물처럼 도로를 메운다. 강물같은 도로 바닥 빗물을 보고있자니 걱정이 되면서도 철없는 아이마냥 즐거웠다.

힌두신의 이야기를 담은 공연이 폭우에도 야외에서 펼쳐졌다. 관객들은 우비를 쓰고 공연을 본다. 유명 아이돌 공연 저리가라다. 고작 7~8세로 보이는 아이도 춤을 추는데 그 모습이 미끄러운듯 위태롭다.

프롬바난 사원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공연 내용은 납치된 공주를 구하는 백마 탄 왕자가 나오는 전형적인 '옛날 얘기'다. 현대적 시각에선 누군가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으나 이 존중의 분위기에서 그걸 가지고 왈가왈부할 사람은 없다.

프롬바난 사원. (사진=강민혜 기자)
따갑게 쏟아지는 비에도 연주를 하고 춤을 추는 배우들이 그저 존경스러울 정도다. 이를 가만히 보는 관람객의 모습은 더 숙연하게 만든다.

프롬바난 사원은 보루부드르와 달리 걷는 길이 가파르진 않다. 프롬바난엔 힌두신들이 있고 저마다 만지면 부여되는 복이 부위마다 다르다.

두르가(Durga) 상의 얼굴과 가슴 등 특정 부위가 반들반들해졌다. 미인이 된다는 설이 있다. 다른 신상 일부는 지진으로 파손됐다. 코끼리 얼굴을 한 가네쉬(Ganesha)의 코는 만지면 지혜로워진다는 속설이 있다. (사진=강민혜 기자)
두르가(Durga) 상의 얼굴과 가슴 등이 관광객들의 손때를 타 반들반들해졌고 다른 신상 일부는 지진으로 파손됐다. 곳곳에 지진으로 훼손된 것들을 재공사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무너지면 짓고 또 무너지면 다시 복구하는 지난한 과정의 반복이다.

◇ 현지인이 보여주는 족자카르타…사연과 야시장

족자카르타의 야시장 입구. (사진=강민혜 기자)
족자카르타의 사람들도 특별한 사연을 품고 있다. 현지인도 사연을 품고 있다니 맞물린듯 더 흥미롭다.

족자카르타 주민 수지(Sussi·40)의 남편은 삼둥이 중 둘째다. 이들의 결혼에는 놀라운 뒷얘기가 숨어있다. 원래 그와 교제했던 남자는 삼둥이 중 막내였다. 잠시 떨어져 있던 사이 편지로 안부를 주고받던 이들은 재회 후 혼인했는데, 남편이 뒤바뀐 채였다.

실상은 이렇다. 결혼 생각이 없던 막내는 둘째 형에게 수지와 교제하라고 떠밀었던 거다. 남자친구가 삼둥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수지는, 당연히 동일 인물이라고 여겨 교제를 이어갔고 결혼했다. 이후에야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았단다.

사기결혼이라고 펄쩍 뛸 법도 한데 수지는 남편과 알콩달콩 살림을 꾸리며 아이도 낳았다. 아기가 아빠와 다른 형제들을 동시에 보면 자지러져 열이 날 정도라니 그 닮음새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족자카르타 야시장에서 만난 상인. 다양한 장신구와 지갑, 파우치 등을 팔고 있다. 아름답게 수놓아진 제품들이 오가는 발걸음을 붙잡는다. (사진=강민혜 기자)
족자카르타의 밤거리에선 신비한 여운을 남기는 음악에 흠뻑 빠져볼 수 있다. 걷기에 아주 매력적이다. 그 옛날 우리의 야시장이 역동적이었다는데,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까 싶다. 활기 넘치는 시장에서 값싸고 예쁜 소품과 바틱 의상을 구매할 수 있다.

꾸며진 게 아닌 상처를 엿볼 수 있다는 데서 낯선 자는 얕은 위로를 얻게 된다. 이국적이지만 현실과 그리 동떨어지지 않은 또다른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데서, 지친 당신에게 족자카르타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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