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대책위와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백 씨는 25일 오후 1시58분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외상성 경막하출혈과 급성신부전증으로 숨졌다.
백 씨의 가족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그의 임종을 지킨 것으로 전해졌다.
오후 3시 50분쯤부턴 시민 100여 명이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장례식장까지 가는 운구차를 엄호하는 도중 경찰과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백남기를 살려내라', '박근혜정권은 사죄하라' 등 구호를 외치며 경찰과 대치했다.
하지만 백남기대책위 측은 책임자 처벌 없인 백 씨의 장례식을 치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대책위 관계자는 "검찰의 부검 철회 및 정부의 책임자 처벌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진 빈소만 차리고 백 씨의 장례식은 치르지 않겠다"고 말했다.
현재 백 씨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층에 마련돼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박주민 의원과 표창원 의원 등 정계 인사들도 백 씨의 사망 소식을 듣고 빈소로 달려왔다.
박 의원은 "진상규명을 못한 상태에서 백 씨를 떠나보내 매우 죄송한 마음"이라면서 "한편으로는 진상규명에 나서지 않던 경찰이 백 씨 사망 후 병원을 에워싸는 걸 보니 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운을 뗀 표 의원은 "백 씨 생전에 전 경찰청장의 공식적인 사과와 정부고위책임자의 병문안이라도 이뤄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병원 측 시설보호 요청을 이행하는 경찰의 입장도 이해는 하지만 일반 상가 조문객과 다른 환자·가족들의 출입까지 통제하는 것은 공권력의 남용"이라며 경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오후 6시 20분쯤부터는 시민들의 조문행렬도 이어졌다.
한 시민단체 회원 한모(52·여)씨는 "백 씨마저 이렇게 떠나보내면 다음은 내 차례가 아니겠느냐"며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는 정권에서 우리 아이들이 살기 위해선 나서야한다"고 말했다.
백 씨의 사망 소식을 듣고 충남에서 달려왔다는 이모(65) 씨는 "피켓을 들고 출입하는 대학생들을 몸으로 제압하는 경찰들을 보니 정말 참담하다"고 말했다.
오후 6시 30분쯤 검시단이 장례식장에 도착해 정의당 윤소하 의원과 백 씨 측 변호사 등의 입회하에 검시가 진행됐다.
20분 뒤, 경찰은 비로소 장례식장 앞에서 경찰병력을 철수시켰다.
오후 9시 20분쯤 대책위는 검시 결과를 발표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검시는 46분간 진행됐고, 사인은 외상에 의한 뇌출혈이 80% 정도 인정됐다"고 전했다.
검시에 참석한 윤 의원에 따르면, 검찰은 부검의 필요성은 언급했으나 향후 유가족과 대책위의 뜻을 존중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가기로 했다.
이후 서울종로경찰서는 일단 정확한 사인을 확인하기 위해 부검을 위한 압수수색검증영장을 검찰에 신청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날 경찰은 서울대병원과, 시신을 부검하게 될 경우를 대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주변에 모두 45개 부대 3600여명의 경찰병력을 배치했다.
조문을 하기 위한 시민들의 줄은 늦은 밤에도 장례식장 현관 바깥까지 길게 늘어섰다.
앞서 백남기대책위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최근 백 씨의 혈압이 급격히 떨어졌고, 이뇨제를 투입해도 소변이 나오지 않아 의사들이 약물을 투여할 수 없는 위독한 상태였다고 밝혔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전진한 의사도 "백 씨가 입공호흡기에 연명하고 있는 상태에서 더 이상의 생명연장은 불가능하다"고 전한 바 있다.
백 씨는 지난해 11월 14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 참석했다가 경찰이 세워놓은 차벽 앞에서 물대포에 맞아 뒤로 넘어졌다.
백 씨는 사건 뒤 바로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뇌수술을 받았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사경을 헤매다 317일 만에 사망했다.
백 씨가 쓰러진 이후 시민사회단체들은 그의 부상 원인이 경찰의 과잉진압 때문이라고 주장해왔다.
또, 강신명 전 경찰청장과 구은수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7명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미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국가와 강 전 청장을 상대로 2억4천만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