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로 '우르르'…못 믿을(?) 학교폭력 실태조사

학교폭력 (사진=자료사진)
경기도 수원의 한 고등학교. 수업시간이지만 반 전체 학생들이 '우르르' 컴퓨터실로 몰려갔다.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고등학생 서모(17)군은 "설문조사를 할 때마다 수업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다 같이 가서 하는데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해도 체크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23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지난 19일부터 다음달 28일까지 올해 2차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 조사는 한국교육개발원에 위탁해 온라인으로 전국에서 동시에 진행되며, 대상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다.

하지만 전수조사를 통해 학교폭력의 실태를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실시되고 있는 학교폭력 실태조사가 참여율을 높이는 데만 급급해 형식적인 조사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사는 비밀 보장을 위해 가정에서 개인적으로 조사에 참여하도록 권장하고 있지만, 응답률이 교육청 평가에 반영되면서 일선 교육청들은 참여율을 높이도록 독촉하고 있는 실정이다.


상당수 학교들이 수업시간이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반강제로 학생들이 설문조사에 참여하도록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주제가 민감한 사안인만큼 설문조사를 할때 학생들이 보다 신중하게 기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실제 환경은 그렇지 못하다.

성남의 A중학교 허모(36) 교사는 "학교폭력은 같은 학년, 같은 학급에서 주로 발생한다"며 "공개된 자리에서 조사를 하면 어떤 학생이 마음 편히 답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더욱이 일부 학교들은 학교 이미지가 안좋아지는 것을 우려해 사전 교육이나 면담을 통해 학생들에게 허위 응답을 유도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시흥의 B중학교 이모(40) 교사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응답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교육부나 교육청이 참여율에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설문조사 과정이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학교 입장에서는 학교 폭력이 있는 학교로 알려지면 이미지에도 좋지 않기 때문에 사전 교육을 하기도 한다"고 귀뜸했다.

실제로 교육부는 지난 7월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을 근거로 학교폭력이 5년 연속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초중고 학생 전수조사에서 한 번이라도 학교폭력 피해를 경험한 학생이 2013년 9만4천명에서 올해 3만9천명으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학교폭력 심의건수는 오히려 2013학년 1만7,749건에서 2014학년 1만9,521건, 2015학년 1만9,968건으로 같은 기간 2,219건이나 늘었다.

매번 이러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지만 정작 교육부는 설문 결과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뚜렷한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특별히 크게 달라진 것을 없지만 학교 현장에 개별조사환경을 최대한 확보해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다"며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계속 개선 노력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교육계 전문가들은 학생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솔직하게 설문에 대답할 수 있도록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김동석 대변인은 "결국 실태조사는 객관성과 공정성, 신뢰성이 담보돼야 그에 맞는 처방과 대책이 마련되는 것"이라며 "단순히 데이터로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솔직하게 현실을 고백할 수 있도록 조사 방식의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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