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시행 D-2 "식당·손님 이미 적응했어요"

김영란법 맞춰 '가격 조정', 사정상 조치 못하는 곳도 많아

21일 저녁 여의도 일대 상가 풍경. (사진=김기용 기자)
21일 저녁 여의도 국회와 광화문 정부청사 인근 음식점은 평상시보다 한산한 모습이었다.

이날 취재진이 찾은 음식점들은 고객맞이와 함께 오는 28일 시행될 '김영란법' 맞이에 한창이었다.

◇ 연습 삼아 '김영란식' 계산하는 손님들…식당 '가격 낮추고 메뉴조정'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한정식집을 운영하는 허모(58·여) 씨는 최근 인당 4만원이던 대구탕과 갈치조림 정식을 3만원 아래로 낮췄다.

김영란법이 시행되기 몇 주 전부터 3만원 이하 음식만 찾는 손님이 부쩍 늘어서다.

허 씨는 "손님들이 (김영란법에 대비해) 연습 삼아 식사를 한다"면서 "그래도 손님수가 그대로다보니 매출이 줄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제공자와 공직자 등이 함께 하는 식사, 다과, 주류, 음료 모두 김영란법 관련 음식물에 포함된다.

서울 광화문의 한 한정식당에서는 손님들이 이미 '김영란법식'으로 돈을 내고 있었다.

이곳 요리는 찜닭, 떡갈비 등이 2만 1000원~3만 7000원 사이이지만 술을 추가하면 3만원이 훌쩍 넘어버린다.

점장 정모(38·여) 씨는 "3만원까지는 접대인의 법인카드로 결제하고, 나머지 금액은 개인카드로 결제하는 손님들이 많아졌다"면서 "(김영란법이) 아직 시행 전인데 손님들이 미리 습관을 들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광화문 인근에서 13년째 고급중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44) 씨는 이날 손님들이 불러주는 가격에 맞춰 주문을 받고 있었다.

3만원짜리 코스요리를 찾는 손님들이 늘어나자 기존 3만 5000원짜리 저녁 코스에 나오는 음식들 중 손님과 상의해 한두 가지를 제외해 제공하는 식이다.


이 씨는 "가게를 찾는 손님들 중 30%가량이 언론인이나 공무원"이라면서 "아예 2만 9000원짜리 '김영란 세트'를 출시할까 고민도 했지만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 "본사 지침 없어", "살기 힘들다" 가격 내리지 못하는 식당들

21일 저녁 광화문 일대 상가 풍경. (사진=김기용 기자)
형편이 어려운 상인들과 본사의 지침을 받는 대리점주들에겐 가격조정조차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여의도 지하상가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김모(47·여) 씨는 음식 가격을 내리는 대신 메뉴에서 소고기를 없앨 생각이다.

올해 폭염으로 재료값이 올랐고, 인건비와 임대료도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지금도 경제가 어려워 수익이 남지 않아 살기가 힘들다"면서 "1인분에 3만원이 넘는 소고기를 포기하고 돼지고기에 주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자체적으로 가격을 내리지 못해 다른 방법을 찾는 건 대리점도 마찬가지다.

광화문에서 소고기 음식 대리점을 운영하는 오모(57·여) 씨는 김영란법 대응책을 묻는 취재진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는 아직 본사에서 지침이 내려오지 않았어요"라고 외쳤다.

이곳은 가장 싼 고기도 1인분에 3만원이 넘어 김영란법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는 곳이다.

오 씨는 "본사 지침 없이 마음대로 가격이나 메뉴를 조정할 수 없다"면서 "일단 본사에 고객들의 동향을 보고하면서 조치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본사 관계자는 "아직까지 김영란법과 관련해 지침을 내릴 예정은 없지만 동향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식당업주와 손님 모두 나름의 생존법으로 새 법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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