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연일 언론에서 제기하고 있는 '비선실세 최순실 의혹'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단호하게 '정면돌파'를 하겠다는 의지로도 읽히는데요.
최순실 씨는 현재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설립과정에 개입해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습니다. 재벌 기업들이 두 재단에 자발적으로 돈을 냈다고 하고 있지만, 돈을 낸 시점이나 액수 등이 짜고 친 것 같은 '뒷맛'을 남기고 있습니다.
최순실 씨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다보니 2014년에 있었던 소위 '정윤회 문건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박관천 전 경정의 과거 발언도 새삼 주목받고 있는데요.
박 전 경정은 당시 검찰 수사 과정에서 담당 검사 등에게 뜬금없이 "우리나라의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 최순실 씨가 1위, 정윤회 씨가 2위,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여기저기에서 거론되는 최순실이 대체 누구길래,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비호를 할까.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최순실 씨를 이야기하려면 아버지 故최태민 씨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최태민 씨와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를 먼저 이해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최태민 씨의 이력을 여기에서 일일이 나열하지는 않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관계된 부분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김형욱 회고록'에 따르면 육영수 여사가 타계한 직후인 1974년, 최태민 씨는 박근혜 영애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내용인즉슨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나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 육여사가 꿈에 나타나 내 딸이 우매해 아무 것도 모르고 슬퍼만 한다면서 '이런 뜻'을 전해달라고 했다"는 겁니다.
여기서 '이런 뜻'이란,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딸 박근혜를 아시아의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서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육여사가 꿈에 나타나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고요? 삼척동자가 봐도 사기성이 농후해 보입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곱씹어보니 약간 소름이 돋는 측면이 없지는 않습니다. 최태민 씨의 말대로 어찌됐든 박근혜 영애는 지난 대선에서 아버지, 어머니의 후광속에 대통령이 됐고, '아시아의 지도자'가 된 건 사실이니까요.
어린나이에 갑작스레 어머니를 잃은 영애에게 당시 최태민 씨의 편지는 한줄기 '빛'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듬해인 1975년 3월, 급기야 청와대는 이런 편지를 올린 최태민을 불렀고, 인연을 맺게 됩니다. 이후 목사가 된(신학대학이나 교단이 인정하는 신학교에서 신학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에 목사라고 부르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최태민은 대한구국선교단을 설립하고 스스로 총재가 되는데요.
최태민 씨의 즉석제안으로 박근혜 영애는 대한구국선교단의 명예총재로 추대되었고, 이후 이 단체는 구국봉사단, 새마음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박근혜 영애는 갑작스런 육영수 여사 타계의 충격을 딛고 이 단체에서 명예총재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갑니다.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 레이디' 역할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 추모 영상 기록물인 '조국의 등불'을 보면 박근혜 영애의 새마음봉사단 활동이 비중있게 다뤄졌습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의 '항소이유서'에 보면 최태민 씨의 행적은 과히 칭찬받을 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최태민 씨와 관련한 '김재규의 항소이유서' 일부를 그대로 옮겨놓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국봉사단이라는 단체는 총재에 최태민, 명예총재에 박근혜 양이었는 바, 이 단체가 얼마나 많은 부정을 저질러왔고 따라서 국민, 특히 여성단체들의 원성이 되어왔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영애가 관여하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아무도 문제삼은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민정수석조차도 말도 못 꺼내고 중정부장인 저에게 호소할 정도였습니다. 본인은 안전국장을 시켜 상세한 조사를 시킨 뒤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던 것이나 박 대통령은 근혜 양의 말과 다른 이 보고를 믿지 않고 직접 친국(대통령의 심문)까지 시행하였고, 그 결과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였으면서도 근혜 양을 그 단체에서 손 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 양을 총재로 하여,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놓은 일이 있었습니다"
최태민 씨의 권력형 비리 의혹이 있었지만 해당 단체는 영애의 믿음과 보호 덕분에 건재했던 것입니다.
10.26 이후 이 단체는 강제 해산됐지만, 1983년 1월 육영재단에서 다시 두 사람의 활동이 재개됩니다. 영애는 이사장에 올랐고 최태민 씨는 막후 실세라는 평을 받았으니까요.
영애가 가장 힘들었을 때, 영애에게 위로와 희망을 이야기하며 멘토 역할을 했던 사람이 최태민 씨였고, 그의 딸이 지금 여기저기서 비선 실세로 이름이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최순실이었던 겁니다.
한때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됐던 정윤회 씨는 최순실의 남편이었지만, 2년 전 이혼으로 지금은 남남이 되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 씨와 최순실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느냐는 대통령이 되기 훨씬 이전에 '최태민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했던 박근혜 의원의 발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힘들었을 때 흔들리지 않고 바로설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분입니다. 의혹은 많이 제기되었지만 실체가 없었습니다. 한 가지라도 사실이었다면 내가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다만 대통령의 동생 근령 씨는 이에 대해 생각이 달랐던 것 같습니다. 육영재단 이사장을 언니로부터 넘겨받은 1990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진정코 저희 언니(박근혜)는 최태민씨에게 철저히 속은 죄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속고 있는 언니가 너무도 불쌍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으니까요.
대통령이 평생 고마운 분으로 느끼는 최태민 씨의 딸이 최순실입니다. 청와대가 '최순실 비선 실세 의혹'에 대해 "언급할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하는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눈치채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