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순서>
1. 우리 시대의 연극 저널리즘 / '검열언어의 정치학 : 두 개의 국민'
2. 포르노 시대 한가운데에 선 나를 보다 / '그러므로 포르노 2016'
3. 그들이 ‘안티고네’를 선택한 이유 / '안티고네 2016'
4. 주장이 구호가 안 되게 서사의 깊이 보장해야 / '해야 된다'
5. 2016년 우리는 <김일성 만세>를 볼 수 있는가 / '자유가우리를의심케하리라'
6. 불신, 이래도 안 하실 겁니까? / '불신의 힘'
7. 그는 검열하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겠지 / '15분'
8.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 것일까? / '광장의 왕'
9.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과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 / '이반 검열'
10. “내 정보는 이미 팔렸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 '삐끼ing', '금지된 장난'
11. ‘안정’이라는 질병에 대한 처방전 / '흔들리기'
12. '우리' 안에 갇힌 '우리' … 개·돼지 같구나 / '검은 열차'
13. '그때 그 사람'을 생각하는 일 / '그때 그 사람'
14. 극(極)과 극(劇) / '괴벨스 극장'
15. 그래도 행진하는 바보같은 예술을 위하여 / '바보들의 행진'
(계속)
지난 18일, 극단 몽씨어터는 연우소극장에서 '바보들의 행진' 이라는 이름의 '라디오 드라마'를 무대에 올렸다. 배우들의 연기를 코 앞에서 들으면서 장면을 상상하는 게 색달랐다. 여러 음향효과를 듣고 보는 재미도 있었다. 연극의 형식처럼 내용 또한 시종일관 유쾌했다. 그러나, 그 유쾌함 속에 '검열에 저항하는 바보같은 청춘'이라는 묵직한 메시지가 있었다.
연극 <바보들의 행진>은 1970년대가 배경이다. 당시 음악, 영화, 문학 등을 창작하던 작가들은 정부의 검열 하에 자유로운 창작 활동이 불가능했다. 연극은 그 때 벌어졌던 검열을 재연하며 오늘날의 검열을 묻는다.
연극 중반을 넘어서면, 국가 권력을 대신해 서슬퍼런 '삭제'의 날을 휘두르던 장 과장이 회심을 하게 된다.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한 감독과 술을 마신 이후부터다. 한 감독은 장 과장의 정체를 모른 채 그와 술을 마신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자유를 모르면 인간이 아니라 노예입니다." 여기서 장 과장은 거울을 보게 된다. 가족과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삶이라고 생각했으나, 실상은 정부의 노예였던 자신의 처지를 들여다본다. 이후 '인간 절단기' 장 과장은 거의 사라진다. '빨갱이' 누명을 쓴 한 감독의 누명을 풀어주고 검열 전 원본 필름을 구해주기 위해 애를 쓴다.
상황이 이 지경이니, 한국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은 그야말로 '바보짓'이다. 미국에서 천재 소리를 듣고도 굳이 모국으로 건너와 '빨갱이' 누명까지 뒤집어 쓰며 영화를 만드는 한 감독도 바보다. 그는 "여기 모두 다 바보 만드는 곳이야!"라며 절규한다. 그러나 바보 한 감독은 행진한다. "더 바보처럼, 더 미련하게"를 외치며 끝까지 검열에 저항한다.
'뭐 이런 더러운 날'이 꽤 오래 가고 있다. 아직까지도 검열이 행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 '더러운 날'에 '바보'같은 연극인들은 지난 6월부터 연극제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를 열었다. 5개월 간 스무 개의 공연이 진행되는 검열 비판 연극제다. 연극 '바보들의 행진'은 이 중 한 작품이다.
'바보들의 행진'은 1970년대 검열 사태를 오늘날로 소환한다. 5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라지지 않은 검열을 비판하고 풍자한다. 과거를 반면교사 삼는 일은 자주 있어도, 과거를 은유해 오늘날을 들여다보는 일은 얼마나 참혹스러운가. 이 참혹스러운 검열의 시대에 '바보'같은 예술인들은 오늘도 행진한다. 그렇기에, '이런 더러운 날'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하민지 / 한양대 일반대학원 영화이론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