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흔들리는 동해안 원전벨트, 정말 안전한가

유례없는 강진으로 하루아침에 폐허가 된 천년고도 경주. 천년을 지켜온 역사가 무색해질 정도로 도시는 지진의 상처로 누더기가 됐고,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정신적 지주가 돼 왔던 많은 문화재 또한 무기력하게 쓰러질 위기에 놓였다. 그런가하면, 원자력발전소 안전논란이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한반도 전체가 원전이라는 트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진피해로 인한 경주지역 주민들의 생활변화와 문화재 보존에 대한 재점검, 원전 안전 논란 등을 짚어 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피해 문화재 보수에 '돈' 논란
2. 지진 트라우마에 주민들 '생활이 바뀐다'
3. 흔들리는 동해안 원전벨트…정말 안전한가?
4. 지역 관광 경제 산업도 '와르르'


“지진나서 엄마랑 대피했어요. 지진이 또 안났으면 좋겠어요.”

경주에서 지진이 일주일 넘게 발생하고 있어 경북은 물론 전국에 지진 공포가 커져가고 있다.

21일 경주의 한 어린이집에는 10여명의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수업중 ‘지진’ 이야기가 나오자 아이들은 상기된 모습으로 앞다퉈 지난밤의 경험을 쏟아냈다. 어린아이들이 난생 처음 겪었을 지진 공포의 충격을 가늠할 수 있었다.

현진이는 “집이 흔들려서 무서웠다. 지진이 확 날까봐 무서웠다”고 말했고, 아인이는 “엄마가 대피해야 한다고 해서 밤에 밖에 있었다”고 했다.

다현이는 “이모집에 가서 잤다. 엄마가 지진이 나면 책상 밑에 숨어라 했다”고 말했고, 아이들은 “지진은 다시 안 생겼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강풍에 어린이집 창이 흔들리자 교실에 있던 아이들이 소리치며, 아래층으로 내려가려하는 소동에 애를 먹었다고 어린이집 교사 A씨는 전했다.

A씨는 “조그마한 흔들림에도 아이들이 민감하게 반응한다”면서 “또 다시 지진이 발생하면 지진 트라우마가 생길 아이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라고 염려했다.

경북 동해안은 경주 월성원전 6기, 울진 한울원전 6기가 가동 중이고 경주에는 방폐장이 있다. 또 영덕에 신규 원전 건설이 추진중이며, 울진에도 추가 원전 건설이 예정됐다.

경북 동해안은 세계최대 원진 밀집지역이지만, 지진이 잦아지고 강도가 점차 세지고 있어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아이들의 걱정과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무거운 맘으로 '한일 탈핵 평화 순례단'을 맞으러 영덕으로 향했다.

해안도로를 달리던 전세버스 1대가 영덕군 영덕읍 석리 입구에 멈춰섰다.

한국과 일본의 종교계와 반핵단체로 구성된 한일 탈핵 평화 순례단 30여명이 영덕천지원전 건설예정지를 찾았다.

버스에서 내린 순례단은 원전문제는 잠시 잊은 채 빼어난 경치에 탄성부터 자아냈다.

맑고 푸른 바다는 연신 파도를 해안가로 보냈고, 해안가 암석에 부딪힌 파도는 하얀포말을 쉴새없이 만들었다.

여기에 높은 가을하늘과 해안가에서부터 쏟아오른 야산의 나무까지 3박자를 갖춘 영덕 석리 해안가는 동해안 최고의 절경을 유감없이 뽐냈다.

한 순례단은 “멋진 집을 지어야 할 곳에 원전을 짓는다니 원전 문제를 떠나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고 전했다.

영덕핵발전소반대범군민연대 관계자는 “이곳은 영덕군이 자랑하는 ‘블루로드’의 중심으로 여기에서 축산항까지 구간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경치를 앞으로 볼 수 없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에 순례단의 ‘감탄’은 ‘탄식’으로 바뀌어갔다.

정부가 2012년 지질조사에서 양산단층대가 활성단층이라는 결론을 확인하고도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한·일 순례단의 ‘안타까움’은 ‘분노’로 변했다.

이곳이 활성단층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영덕 천지원전 건설 사업을 결정하고 추진했기 때문이다.

영덕핵발전소반대범군민연대 박혜령 위원장은 “국민을 속이고 거짓을 말하는 정부를 믿을 수 없다”며 “활성단층에 원전을 짓겠다는 것은 경북 동해안 지역민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 아니냐”고 소리를 높였다.

이어 “용역 기간과 천지원전 예정부지 확정 등을 고려했을때 활성단층인 것을 알고도 부지를 선정한 것으로 밖에 볼수 없다”며 “영덕원전 건설 사업을 백지화 하고 기존원전도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즈코 아리요시(일본·61)씨는 “한국에도 지진대가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한국이든 일본이든 지진이 나면 안 좋은 영향을 받는다는 걸 알아야 하고 특히 원전은 더 이상 지어져서는 안된다”고 조언했다.

이에대해 정부와 한수원은 일본 후쿠시마와 같은 대지진이 발생해도 국내원전이 일본원전보다 안전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수원 관계자는 “언론에서 곧 큰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보도하는 바람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며 “원전은 일반건물과 차원이 다르게 지어지는 만큼, 지진이 났을 때 원전건물이 제일 안전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원전의 내진성능을 현재 6.5에서 7.0까지 견딜 수 있는 보강작업을 오는 2018년 4월까지 마무리할 방침이다.

경주와 영덕의 원전 현장을 잇따라 다녀오는 7번 국도길.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석양에 오버랩 되며 동해안의 푸른 파도로 밀려왔다.

순간 아이들의 미래를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단순 시민사회단체들의 몫일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온 국민이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한 조그마한 노력을, 늦었지만 지금부터 준비해야한다는데 아무도 토를 달아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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