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꾸 내 이름들이 회자된다.
특히 어디선가 '개혁'이란 말이 나오기만하면 국회의원과 내가 언급된다.
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단 말인가.
내 나이는 올해 예순이다. 1956년 10월 22일 제정된 검사정원법을 기준으로 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공자가 말한 이순(耳順)의 나이.
이순이 되면 생각하는 것이 원만하여 어떤 일을 들으면 곧 이해가 된다고 한다.
나는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어떤 일을 들으면 대충 이해가 되기도 한다.
나에게는 전가의 보도와도 같은 '수사권'이 있다. 이건 오로지 대한민국에서 나에게만 주어진 권한이다. 가끔 경찰이나 다른 기관에서 나눠갖자고 했지만 한번도 뺏긴 적이 없다.
기소독점과 기소편의도 빼놓을 수 없다. 형사사건의 경우 오직 나만이 기소할 수 있다. 또 내 판단에 따라 특정 사건을 기소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나는 '검사동일체의 원칙'으로 움직인다. 검사는 하나다. 태생적으로 윗사람 눈밖에 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고등고시 사법과 시험을 통해 선발됐다. 1963년 이후부터는 사법시험을 통해 채용했고 2012년부터는 로스쿨이 생겨서 점차 대체되고 있다.
1956년 검사정원법과 함께 내가 태어날 당시 정원은 190명. 이후 조금씩 몸집을 키웠고 1990년대 1,000명을 돌파했다. 지금은 2,121명이고 2019년 까지 2,292명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다.
임용 후 평검사가 되면 일반직 공무원 3급에 해당하는 대우를 받는다. 월급은 수당을 제외하고 약 276만 원 정도. 야근이 많아서 수당까지 받으면 초임검사 때도 월 400만 원에서 500만 원 정도 된다.
조직 내에서 직급은 단 두 가지. 총장과 검사만 있다. 실제로는 검찰총장, 검사장, 차장검사, 부장검사, 부부장검사, 평검사로 나눌 수 있다. 대다수는 평검사이고 부장검사로 올라갈수록 인원은 줄어든다.
진급해서 검사장이 되면 차관급으로 대우받는다. 현재 2,112명이 조금 넘는 정원에 차관급은 50여 명 정도. 11만 명의 경찰조직에 차관이 경찰청장 1명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많다. 당연히 고위공무원 비율이 다른 부처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나도 태어날 때부터 잘나갔던 것은 아니다. 한국전쟁 직후 대한민국의 실세는 군부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서부터 노태우 전 대통령까지. 1990년대까지는 군부와 안기부가 많은 것을 쥐락펴락했다. 나도 열심히 일했지만 주목받지는 못했다.
민주화가 되고나니 세상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더이상 군부를 신뢰하지 않았다. 이 틈을 잘 이용했다.
나는 민주화 직후 노태우 대통령이 퇴진 위기에 몰린 1991년 분신 정국을 유서대필 사건으로 처리하면서 정권의 신임을 받기 시작했다. 아마 그때 이후로 안기부 그늘에서도 벗어난 것 같다.
국민에게도 조금씩 인지도를 높여갔다. 1993년에는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하며 훗날 모래시계 검사로 알려지기도 했다. 1996년에는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을 법정에 세워 국민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인지도만큼 신뢰도가 따라가주질 못했다.
2010년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2011년 벤츠 여검사, 2012년 성접대 검사, 조희팔 수사 검사, 2013년 별장 성접대 검사.
이뿐이겠는가. 2014년에는 해결사 검사가 등장했고 제주에서 공연음란행위도 했다.
2015년에는 성추행·성희롱 검사로, 2016년에는 브로커 검사, 사위 검사, 동창 스폰서 검사로 구설수에 계속 오르내리고 있다.
이 때문인지 내부자들, 나쁜놈들 전성시대 같은 영화는 더이상 픽션이라고 보고 어려울 정도가 됐다. 현실과 너무 흡사하기 때문에.
하지만 나를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
나는 일반공무원과 달리 징계령이 아닌 검사징계법에 의해서만 처벌 받을 수 있다. 검사징계법은 검사징계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사실상 외부인사의 참여가 배제된 폐쇄적인 구조다. 한마디로 나를 검사하거나 수사할 수 있는 외부 장치는 없다.
검사징계위원회가 열린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대부분 경징계로 끝난다.
물론 문제가 아주 심각해지면 옷을 벗기도 한다. 하지만 변호사로 개업해 제2의 삶을 시작할 수 있다. 돈도 많이 벌 수 있다. 전화 한통 해주고 수억원을 받기도 한다.
최근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지적하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를 만들려고 한다. 공수처는 내가 아닌 독립된 수사기관에서 나를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는 것인데 당연히 반대다. 전형적인 옥상옥(屋上屋) 아닌가.
요즘은 좀 잠잠하지만 경찰도 심심하면 수사권을 나눠 가지자고 한다. 대한민국 형사법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것인데, 대혼란이 불가피해 반대다.
내가 누구인가.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은 영광스러운 사람 아닌가?
'검사 선서'에 다짐했듯 나는 정의와 인권을 바로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 지키는 사명을 부여받았다.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
이게 내 본모습인데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는 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