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여정훈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운영자)
◆ 여정훈>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그럼 여정훈 씨는 일을 못하세요?
◆ 여정훈> 네.
◇ 김현정> (웃음) 많이 못하세요?
◆ 여정훈> (웃음) 얼만한지는 모르겠지만 못하는 건 확실합니다.
◇ 김현정> 아니 무슨 일에 종사하세요?
◆ 여정훈> 사실 지금은 정규직 직업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상태고요.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그룹을 만들기 전에 한 단체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다가 퇴사를 했습니다.
◇ 김현정> 그런데 일을 못하면, 일터에서 자기 일을 잘 못하면 보통은 좀 더 잘하기 위해서 갖가지 노력을 하지 않습니까?
◆ 여정훈> 네, 그렇죠.
◇ 김현정> 그런데 여정훈 씨는 그런 노력을 하는 대신에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드신 거예요?
◆ 여정훈> 최대한 일을 잘해 보려고 했는데요. 그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스스로 되게 자괴감을 느낀 거죠, 사실은.
◆ 여정훈> 거의 모든 직장인들이 다 겪는 그런 일일 거예요. 예를 들어서, 회의에 들어가서 열심히 혼난다든지, 기획서를 올렸는데 이게 뭐가 잘못됐는지 얘기는 안 해 주고 잘못했다고만 하는 거예요.
◇ 김현정> 아, 잘못됐는지 얘기는 안 해 주면서 잘못됐대요? (웃음)
◆ 여정훈> 사무실에서 한 번은 상사가 '정훈 씨 일에 소질이 없는 거 아니야?' 이렇게 물어보셔서 '네, 그런가 봅니다'라고 대답을 했어요.
◇ 김현정> 아니, 아니, 잠깐만요, 잠깐만요. 지금 굉장히 담담하게 말씀하시는데 이게 지금 충격적인 얘기잖아요, 직장인한테.
◆ 여정훈> 그런데 사실은 다들 듣고 살 걸요?
◇ 김현정> 다들 듣는 얘기다?
◆ 여정훈> 혹은 눈빛으로든 행동으로든 느껴봤을 거다, 직장인이라면?
◆ 여정훈> 네, 그럴 겁니다.
◇ 김현정> 그리고 나서는 나 같은 사람이 없을까 하고 커뮤니티를 만드신 거예요?
◆ 여정훈> 그리고 퇴사를 하고 나서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거예요. 제 개인 담벼락이죠. 그래서 '저는 일을 참 못하는 사람입니다'라고 자조적인 글을 올리기 시작했어요. 그랬는데 거기 댓글이 달리기 시작한 거죠. '어, 나도 못하는데?', '어, 나도 그런데?'라는 사람들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해서 처음엔 장난 삼아서 그룹을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5명, 6명 그렇게 시작했는데 그게 이상하게 호응을 얻었어요.
◇ 김현정> 지금 몇 명이에요?
◆ 여정훈> 지금은 8000명 좀 넘는데요. 9000명이 안 되는 사람들이 가입되어 있습니다.
◆ 여정훈> 아마 다는 아니지 않을까요? (웃음) 감시하러 오신 분들도 있는 것 같고요.
◇ 김현정> 내 부하직원이 있나 없나 감시하러 온 분들, 몇몇까지 해서 8000여 명? (웃음)그렇군요. 이게 언제 만들어진 거죠?
◆ 여정훈> 대략 2년? 2년이 좀 넘었습니다.
◇ 김현정> 그럼 그분들이 서로 모여, 모여서 하소연도 하고 상담도 해 주고 이러는 거예요?
◆ 여정훈> 상담이 얼마나 길어지는지는 모르겠는데요. 그냥 자기 얘기하는 거죠.
◇ 김현정> 그렇게 경험담 나누다 보면 치유가 돼요?
◆ 여정훈> 네. 가장 치유를 받은 사람은 사실 저죠. 제가 위로를 받은 거죠. 아마 다들 그럴 거예요. '나만 빼고 아무 문제 없이 사네?' 이렇게 생각하기 쉽거든요. 이런 얘기를 누군가 시작함으로써 실상은 다들 똑같다는 걸 알게 되거든요. 그러면 마음이 편해지는 효과가 있죠.
◇ 김현정> 어떤 유형의 글이 가장 많이 올라옵니까?
◆ 여정훈> 실수에 대한 이야기들이에요. 예전 사연들인데요. 결제 받을 서류에 0을 하나 덜 넣었다든지 명령어를 잘못 입력해서 회사 서버를 날렸다, 이런 큰 실수들도 있고요.
◇ 김현정> 정말 실수 안 해 본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 여정훈> 그렇죠. 능력의 차이가 있잖아요, 사람마다. 누구나 잘할 수 있는 것들이 다른데 못하는 것들을 더 부각시키게 되는 것 같아요.
◇ 김현정> 맞아요, 맞아요.
◆ 여정훈> 그럴 때 이제 한 사람의 ‘일못’이 탄생을 하는 거죠.
◇ 김현정> ‘일못’? 일 못하는 사람의 줄임말입니까?
◆ 여정훈> 줄여서 그렇게 부르고 있더라고요. 어느날 보니까 서로를 그렇게 부르고 있었어요. 그래서 객관적으로 잘하느냐 못하느냐보다 마음의 문제가 큰 것 같아요. 검사 받아야 한다라는 그 압박감? 좋은 결과를 얻어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일 못함’을 문제로 만드는 것 같아요.
◇ 김현정> 실제로 보면 참 준수하게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고 있는데도 스스로를 우리가 너무 못살게 굴고 있는 게 아닌가 저는 그 생각도 꼭 해 봐야 될 것 같아요. 제가 보니까요. 이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도 말고도 최근에는 유사한 유니온이 많더라고요. 그렇죠? 어떤 거 보셨어요?
◆ 여정훈> 개그 못하는 사람, 운동 못하는 사람. 그런 모임들이 생겼었죠.
◇ 김현정> 또 요리 못하는 사람 유니온, 연애 못하는 사람 유니온도 있던데요? 참 뭔가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고 보면?
◆ 여정훈> 네. 그렇죠.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좀 하셨으면 좋겠어요. 일 못함으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은 혼자가 아니고 정말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나를 지나치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 고민을 가지고 산다는 걸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 김현정> 그런데, (‘일못 유니온’분들은) 일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부끄러워하지는 않으세요?
◆ 여정훈> 그게 일을 잘해야만 하는 분위기에서는 부끄러울 수도 있는데 서로 다 그렇다는 걸 아는데 뭐가 부끄럽겠어요.
◇ 김현정> 하기는 우리가 숨을 필요가 없어요. 좀 더 당당하게 ‘다 못한다.’ 이런 생각으로, ‘나만 못하랴?’ (웃음) 이런 생각으로 좀 스트레스 덜 받으면서 이 험한 세상 헤쳐갔으면 좋겠습니다.
◆ 여정훈> 맞습니다. (웃음)
◇ 김현정> 여정훈 씨. 하여튼 일을 못해 주셔서 감사해요. 여정훈 씨가 일을 못했기 때문에 이런 훈훈하고 서로 치유가 되는 보듬어주는 커뮤니티가 생긴 게 아닌가 싶어서 감사드리고요.
◆ 여정훈> 네, 결과적으로 저도 감사합니다.
◇ 김현정> 힘내시고요. 오늘 고맙습니다.
◆ 여정훈> 네, 감사합니다.
◇ 김현정> 화제입니다.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의 여정훈 씨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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