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폭음을 들었어요. 둘째 아들과 함께 모든 걸 생생히 보고 말았어요. 미군이 죽였다면 이해를 하겠어요. 한국군은 그날 도대체 왜 그랬나요?”
베트남 남부 디엔반현 퐁니·퐁넛 마을의 주민 응우옌쑤(Nguyen Xu, 1929~2015) 씨의 질문을 들었을 때, 고경태 기자(현 <한겨레> 신문부장)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자신이 그런 것도 아닌데, 마치 자신이 저지른 일 마냥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지 않았을까.
미 해병 제3상륙작전부대 소속인 본(J. Vaughn) 상병은 한국군이 들어간 뒤 총성과 폭음이 울리고 화염이 솟아오르는 것을 목격했다. 1시간 반 뒤 무전 명령을 받고 상관인 실비아 중위와 함께 마을로 들어간 본 상병은 처참한 광경을 마주한다.
조용히 사라질 역사가 세상에 드러난 것은 2000년이었다. 그해 6월 1일 기밀해제 된 문서를 고경태 기자는 11월 23일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을 통해 최초 보도한다.
이듬해 4월 고 기자는 본 상병이 찍은 사진을 들고, 퐁니·퐁넛 마을을 방문했다. 마을 주민들에게 사진 속 주검을 보여주며, 이름은 무엇인지, 가족은 누구인지, 당시 사건의 앞뒤 정황은 어떠했는지를 조사했다. 주검 속 누군가의 아들, 엄마, 누이, 오빠, 형, 삼촌, 이웃들이 기억을 더듬으며 입을 열었다.
고 기자는 총 6회 퐁니·퐁넛 마을을 찾아갔다. 1968년 2월 12일 ‘그날’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였다. 이어 한 맺힌 비극을 가슴 속에 품고 사는 ‘그날 이후’의 주민들을 사진에 담았다. 살아남은 자들을 통해 ‘그날 이전’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전시는 크게 3개 장면으로 나뉜다. ‘그날 이전’, 희생자들의 일상의 기록과 본 상병이 기록한 ‘그날’,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의 모습과 증언이 담긴 ‘그날 이후’다.
전시 첫날인 9일 오프닝 행사에서 고 기자는 말했다.
“베트남 언론 <뚜오이쩨>에서 ‘진실이 상처를 치유한다’고 제목을 거창하게 달아줬습니다. 저는 진실이 상처를 치유할 거라고 생각하고 이 일을 한 것은 아닙니다. 단편적 취재를 하고 나서 아무도 나서지 않아,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자 하는 욕심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들이 불편하고, 고통스럽고, 비극적입니다. 비극 이후에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으니 이야기는 전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베트남사람이지만 한국군이 참전하고 학살한 사실을 몰랐습니다. 봉사활동에 참석한 뒤 알았습니다. 한국분들이 학살의 진실을 베트남과 한국에,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알려주시고, 매년 베트남까지 가서 봉사뿐 아니라 상처받은 사람들 위로해주고, 유가족에게 사과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베트남 국민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줘서 고맙습니다.”
한편, '그날'의 퐁니·퐁넛 마을 주민 학살 정황을 <한겨레>가 1999년부터 수차례 보도했지만, 국방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유사한 작전은 없었다"며 부인했으며, 여전히 같은 입장이다.
전시 문의 : 02-738-0738
*영상편집 : CBS노컷뉴스 김원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