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두고 각자의 셈법에 빠진 정당들, 강력한 대통령제, 양당이 아닌 3당 체제 등의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선진화법' 때문에 '쪽수 밀어붙이기' 불가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20대 국회 개원 첫 날 세월호 특조위 활동 기한 연장을 들고 나왔고 123명 의원 전원이 참여한 세월호법을 1호 법안으로 냈다. 국민의당도 4·13 총선 직후 세월호 특조위 활동기한 연장을 가장 먼저 이슈화하며 중점법안으로 발표했다.
야권의 핵심 추진 법안이었던 셈이지만, 세월호 특조위 활동기한 보장은 요원하다. 새누리당은 선진화법을 이용해 안건조정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선진화법 상 안건조정을 신청하면 안건조정위원회가 구성돼 조정이 완료될 때까지 최장 90일간 상임위 차원의 논의를 진행할 수 없다. 조정위 의결정족수는 재적 조정의원의 2/3이상의 찬성이라 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의결할 수 없는 구조다.
결국 여야 입장 차이를 고려할 때 새누리당과 합의가 없으면 조정이 이뤄지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더민주는 "말이 안건조정이지, 사실상 특조위 활동 기한 연장을 하지 말자는 것"이라며 새누리당이 선진화법의 취지를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급기야 더민주와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3당이 지난 8월 회동을 갖고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기한 연장과 사드대책특위 구성, 검찰개혁특위 구성 등 6개의 공조 현안을 정하며 여당을 압박하고 나섰다.
또 야 3당이 계속된 공개발언을 통해 협조를 요청하고 있지만 여야 의견 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결국 지난 19대 국회와 마찬가지로 선진화법이 여야 간 대화와 협치가 부재한 상황에서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는 도구로만 악용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불법과 부실로 얼룩진 대우조선 사태 규명을 위한 구조조정 청문회(서별관회의 청문회) 증인채택 과정에서는 정부여당의 '제 식구 감싸기'가 비판을 받았다.
우리 경제와 민생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만큼 구조조정 청문회는 가까스로 여야 합의로 열리게 됐지만, 증인 선정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 실세들의 이름이 거론되자 다시 교착상태에 빠졌다.
야당은 이른바 '서별관 회의'에서 대우조선해양 4조 2천억원 부실지원을 결정했다는 의혹을 받은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과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의 청문회 출석을 요구했지만, 새누리당의 거센 반대로 홍 전 행장 한 명만 증인으로 채택하는데 그쳤다.
정작 청문회가 열리자 홍 전 행장은 출석조차 하지 않았다. 홍 전 행장은 휴직계를 내고 외국에 나간 뒤 행적이 묘연한 상태다. 결국 핵심 증인들이 모두 빠진 '부실 청문회'란 비판 속에 막을 내렸다.
장관 인사청문회에서도 협치가 실종된 독선과 아집은 마찬가지였다.
특히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 등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은 부적격 판정을 내렸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해외에서 전자결재를 통해 임명을 강행했다.
김 장관은 농협에서 파격적인 금리로 돈을 빌려 고급 빌라를 사고팔아 거액의 이득을 챙기고, 용인의 93평 아파트에 7년동안 전세금 1억 9천만원만 내고 거주해 특혜를 누렸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문제없이 임명된 것이다.
이로 인해 야권에서는 구속력 없는 인사청문회 제도 자체를 손봐야 한다는 의견까지 제기됐다.
전통적으로 여권에 유리한 사드 등 안보 이슈에서도 협치 대신 힘겨루기만 계속됐다.
사드 비준 동의안에 대한 문제와 안보 관련 여야정협의체 구성 건 역시 제기됐지만 박 대통령은 "(안보는) 근본적으로는 대통령 중심으로 결정되는 사안"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용인대 최창렬 교수는 "안보와 같은 여야를 초월하는 의제에 있어서 국회가 행정부 수반에게 목소리를 내는 것이 사실상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면서 "(대통령이) 안보에 대해 아무런 협의없이 '대통령이 결정하는 것'이란 사고를 갖는 것은 매우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한 더민주 재선 의원은 "새누리당이 여소야대 국면에서 '강(强)대 강(强)'전략을 고수하면서 입법부 수장인 정세균 의장 집무실을 점거하는 등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화와 타협이 가능하겠나"라고 덧붙였다.
'여소야대' 구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로 목소리를 모으지 못하는 야권 자체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란 분석도 있다.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매번 중요한 현안에 대한 목소리에서 묘한 온도차를 보였다는 것이다.
예컨대 서별관 회의 청문회 증인을 두고 여야가 입장차를 보일때 국민의당은 더민주와 합심해 여당을 압박하는 대신 새누리당과 더민주를 함께 비판하고 나섰다.
국민의당은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을 겨냥, "추경안 심의와 서별관회의 청문회의 증인 협상을 즉각 재개해야 한다"고 압박하면서 "증인채택도 중요하지만 추경 처리도 중요하기 때문에 양당 사이에서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여러 고민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선 정국을 앞두고 국민의당은 제3당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자체 논리를 개발하고, 더민주는 외연확장에 힘을 쏟으며 분명한 입장을 정하지 못하다보니 두 당의 공조는 더욱 힘들어진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더민주 관계자는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강하게 노선을 정하려 해도 서로 전폭적 힘 실어주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이럴 때일수록 강하게 밀어붙이는 야성을 보여야 한다는 당내 의견들도 있지만 여당 눈치 뿐 아니라 국민의당 눈치까지 보다보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