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사일로 이펙트'가 왜 발생하는지 추적하고, 우리가 사일로에 갇히기 전에 어떻게 사일로를 활용할 수 있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한 해법을 제시한다. 독자는 각 장에서 사일로와 관련한 실패와 성공담을 만나면서 우리가 어떻게 사일로를 바라보고 극복해야 하는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유쾌한 리듬으로 전개되는 저자 질리언 테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개인과 조직, 나아가 사회 시스템 속에 숨겨진 사일로의 문제를 명징하게 이해하게 된다.
9.11 테러가 발생한 지 442일, 미국은 테러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한 초당파적 위원회를 구성한다. 사건의 전말을 밝힌 567쪽의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250만 쪽의 관련 서류를 분석하고, 1200명을 인터뷰하고, 19일간의 청문회와 160명의 공개 진술을 들어 작성된 보고서였다. 9ㆍ11보고서에서 강조한 대목이 있다. 점(點)을 선(線)으로 잇지(connecting the dots) 못하는 국가 시스템. 테러를 예고한 조각조각들의 정보를 연결하지 못했고 관련 부처 간의 칸막이를 깨지 못해 발생한 참사라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도 다를 게 없었다. 세월호 침몰 훨씬 이전부터 여객선의 증축, 과적, 조타기 고장, 부실 점검 같은 여러 징후(點)가 있었지만 그걸 선으로 연결해 사고 가능성을 예견하는 지혜와 상상력이 부족했다. 사고 현장을 진두지휘하거나 총괄책임이 있는 핵심 인물들은 서로 다른 위치에서 각자의 업무만 바라보느라 실상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들이 관장하는 부처들 역시 따로 움직였다. 이후 대책본부가 10개나 생기고 컨트롤타워를 만들었지만 공무원들은 소속 부처의 보스를 위해서만 일했고 보스들은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따로 놀고 있었다. 점을 선으로 연결하지 못해 발생한 대한민국호의 침몰, 그것이 세월호의 본질이었다.
다양한 점을 이어라(Connecting the dots).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졸업식 축사로 유명해진 말이다. 9.11, 세월호, 구의역, 세계 금융 위기 같은 커다란 국가 재난이나 사고에서부터 소니와 페이스북의 같은 기업조직의 흥망성쇠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구조적 시각과 접근이 필요하다고 흔히들 이야기한다. 문제점과 ‘구조개혁’ 같은 정답을 너무 잘 아는 우리는, 하지만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한 결과만 남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많은 대책회의와 조직과 브리핑과 책임자와 협의체가 생기지만 각자의 업무에만 몰두할 뿐, 문제라는 커다란 그림의 변화와 해결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사일로 이펙트'의 저자 질리언 테트가 발견한 '우리를 눈 멀게 하고', '조직의 변화와 혁신을 가로막는' 주범 '사일로'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점과 점 사이 선을 보지 못하고 모두 칸막이 속에만 갇힌 채 아등바등하고 있는 것이다.
책의 전반부에 나오는 소니는 사일로에 갇혀버린 대표적인 사례다.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기업으로 불렸던 소니의 수많은 조직들은 각자의 폐쇄적인 환경에 갇혀 무의미한 경쟁에만 함몰했다. 그들은 다가온 위기와 혁신의 기회들을 발견하지 못했고 이후 끝모를 쇠락을 맞고 있다. 2008년 경제 위기 이전 전문가 집단을 대표하는 UBS와 런던 정경대 경제학자들이 벌여놓은 내부지향적이고 맹목적인 판단들, 그 밖에 마이크로소프트와 제너럴 모터스, 백악관, 영국 국민건강보험, BBC, 브리티시 페트롤륨 등도 사일로 관리에 실패한 사례들이다.
하지만 책 후반부에는 사일로를 통제하고 활용해 조직의 혁신을 이끈 사례가 같은 비중으로 소개된다. 대표적인 기업이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은 '문가 집단의 함정'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사회공학 실험을 단행했다. 페이스북의 직원들은 조직의 문제를 더 큰 그림에서 고민하고 함께 해결해나가는 능력과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또한 이 책에는 다른 분과의 의사들이 같은 환자를 중복 치료하는 관행을 깨고 협동진료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든 클리블랜드 클리닉, 데이터 전문가를 채용해 검거율을 획기적으로 높인 시카고 경찰국, 사일로를 역이용해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고 이익을 극대화한 블루마운틴 캐피털의 사례도 소개된다. 사일로를 넘어서 정보와 사람의 새로운 연결을 꾀한 세계 혁신의 현재를 만날 수 있다.
책 속으로
우리는 물리적, 사회적 환경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맹목적인 존재가 될 필요는 없으며 때때로 개인은 우리의 세계를 조직하는 다른 방법을 상상할 수 있다. 부르디외처럼 경계를 뛰어넘어 외부인의 시각을 가진 내부인이 된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_1장 「외부인의 시각을 가진 내부인」
스트링거는 구조조정을 시도할 때마다 이와 비슷한 저항에 직면했다. 수년 동안 소니는 제품 라인과 사업 부문을 문어발식으로 확장해왔다. 1000개 이상의 전자기기를 생산했고 그중 대다수는 독립된 특허 기술을 기반으로 작동되었다. “저희 집에는 소니의 전자기기가 35개 있습니다. 배터리 충전기도 35개 있고요.”
_2장 「소니를 몰락시킨 사일로의 저주」
사일로 문제는 그리스 신화의 히드라, 즉 머리가 여럿 달린 뱀 형상의 괴물처럼 보였다. 때때로 은행은 사일로를 제거하곤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 문제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할 무렵 그 문제는 다시금 고개를 쳐들었다. 분산화는 언제나 존재하는 위협이었고 비단 UBS만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거대 금융기관의 골칫거리였다.
_3장 「UBS 최고의 전문가들이 눈뜨고 당한 서브프라임 사태」
경제학자들은 지켜볼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것, 다시 말해 ‘실물’ 경제 통계학의 모형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 세계 외부에 존재하는 하찮은 경제에 대해서는 살펴보지 않았고 다른 영역들을 연결시키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경제학을 금융과 분리하는 습관이 깊이 뿌리내린 탓에 수많은 경제학자들은 그 현상을 거의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자신들이 세운 수학 방정식의 세부 사항을 연구하는 데 시간을 투자할 뿐, 자신들이 사용한 분류 체계에 대해서는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이 분류 체계가 설정한 경계를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_4장 「영국 여왕을 당혹시킨 ‘똑똑한 바보들’」
그들이 고안한 데이터 지도는 일반적인 범죄 발생 가능 지역에 관해 중기 예측을 잘 제시했을 뿐 아니라 때로는 단기 예측에도 뛰어난 면모를 보였다. “어느 날 우리는 [살인 사건이 발생할 것 같은] 목표 지역을 확인했습니다. 목표 목록을 경찰 측에 보낸 지 1분 뒤에 저는 총격이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렇게 이상한 일은 처음 겪어봅니다. 사건이 정확히 우리의 목표 지점 가운데 한 곳에서 일어났거든요.”
_5장 「시카고 경찰국의 빅데이터 혁명」
여러 회사들이 페이스북에서 개발한 사일로 소탕 전략을 이리저리 변형해서 활용했다. 구글과 애플의 직원들은 해커톤을 개최했고 직원들에게 순환근무를 지시했다.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공동 오리엔테이션과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자는 생각은 널리 번져나갔다. 사옥을 하나의 도구로 활용해서 직원들이 서로 부딪히고 협동하도록 만들자는 개념 역시 IT업계 안팎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가령 제조기업인 3M은 여러 분야에서 신중하게 선별된 전문가들로 구성된 연구 실험실을 운영하는 것에서 자부심을 느꼈다. 또한 구글은 직원들이 서로 자주 부딪히게 만드는 시설들을 창의적으로 설계했다.
_6장 「페이스북의 사일로 소탕 작전」
코스그로브는 의사들이 건강을 생물학적 혹은 감정적 차원에서 바라보지 말고 두 가지 관점을 동시에 취해주기를 바랐다. 환자들이 경험하는 의료 행위에는 두 가지 측면이 고루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의사와 달리 대다수의 환자는 의학과 감정을 구별하지 않았다. “의료 행위의 질을 판단하는 환자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설사 환자들이 저를 지켜보더라도 제가 훌륭한 외과의사인지 아닌지 알지 못할 겁니다.” 코스그로브가 말했다. “하지만 환자들은 자신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잘 압니다.”
_7장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창조적 파괴」
블루마운틴의 사례는 사일로가 UBS를 무너뜨린 사례 혹은 사일로가 잉글랜드 은행 소속 경제학자들의 추측을 조롱한 사례와 효과적으로 대조를 이룬다.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고무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사일로를 좋아합니다.” JP모건의 고래 거래로 인한 혼란이 가라앉자, 펠드스타인이 곧 이렇게 말했다. “아니, 적어도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사일로를 좋아합니다. 그 덕분에 돈을 벌 수 있으니까요
_8장 「블루마운틴 캐피털이 사일로를 가지고 노는 법」
질리언 테트 지음 | 신예경 옮김 | 어크로스 | 384쪽 |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