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책을 인문학의 시선으로 들려주다

신간 '과학을 읽다', 정인경 지음

독자와 좋은 과학책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책 '과학을 읽다'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워낙 유명해서 일단 사두기는 하지만 쉽게 읽어나가기는 쉽지 않은 이런 과학책들을 인문학의 시선으로 들려주며 과학적 통찰에 이르게 하는 길을 안내한다. 과학에서 통찰을 얻기 위해서는 인간의 삶과 철학을 폭넓게 살펴볼 필요가 있기에 역사와 철학의 문제로 이야기를 시작해서 우주, 인간, 마음(뇌과학)의 세계로 점차 확장해가는 방식을 취한다.

뉴턴, 갈릴레오, 다윈, 재레드 다이아몬드, 칼 세이건, 스티븐 호킹, 리처드 도킨스, 프랜시스 크릭, 샘 해리스 같은 과학자들의 대표 저서는 물론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비트겐슈타인 같은 철학자들의 대표작과 롤랑 바르트, 이탈로 칼비노, 조지 오웰, 프리모 레비 등의 문학작품까지 두루 소개한다.

문과와 이과를 두루 섭렵한 저자는 이제 인문학과 과학은 반드시 융합 학문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그런 만큼 이 책은 문과와 이과를 놓고 선택의 고민을 하는 학생은 물론 평소 과학을 어렵고 멀게만 느껴온 성인 독자와 이공계라는 전문영역에 갇혀 인문학적 감수성을 도외시한 과학 분야 종사자들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통합적 사고의 미학을 보여준다.

과학저술가 정인경 박사는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우리는 흔히 수학을 자연과학의 한 분야로 생각하지만 저자는 수학이 인문학이라고 말한다. 수학은 인간의 뇌에서 나온 대표적인 상징추론이며 인간의 생각 속에서 그려낸 가상세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그렇기에 그는 문과와 이과의 벽을 넘어 통합적 사고를 해야 할 뿐 아니라 삶에 밀착된 공부여야만 가치가 있음을 강조한다.

“과학이 시인의 마음을 갖는다면, 다시 말해 과학과 인문학의 거리를 좁혀 과학기술이 인간적인 방향으로 발전한다면 우리는 더 좋은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런 만큼 과학의 가치를 알고 과학기술의 방향성을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이제 과학은 과학자들의 연구실에서 나와 세계의 고통에 눈물을 흘리고 응답해야 한다. 그래야 과학이 우리 삶에서 하찮은 것이 아니라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지식이 된다.” (11쪽)

“우리가 과학 공부를 하는 목표는 지식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지식이 왜 중요한지를 알고 자신의 삶과 연결해서 생각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 예컨대 우주와 지구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해하고 지속 가능한 세계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 이런 것이 과학 공부의 목표다. 나는 ‘인간은 진화했다’나 ‘마음은 뇌의 활동이다’와 같은 과학적 사실은 지식이 아니라 통찰이라고 생각한다.” (12~13쪽)

이어 저자는 과학적 사실을 단순한 지식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마음으로 느껴야 좋은 ‘배움’임을 강조한다.


“과학을 느끼는가? 과학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움직인다면 그보다 더 좋은 ‘배움’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과학의 전문성이라는 높은 벽을 허물고 인문학적 감성으로 다가서려고 노력했다. 각 장을 시작할 때 과학책이 아닌 문학작품을 배치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롤랑 바르트, 이탈로 칼비노, 조지 오웰, 프리모 레비의 작품을 통해 인간의 삶에서 끌어낸 문제의식에서 과학을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나는 이 책에서 시험 공부할 때 달달 외웠다가 다 잊어버리는 과학이 아니라 마음으로 진지하게 느끼고 생각하는 과학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누구든 마음을 열면 역사(삶), 철학(앎), 우주, 인간, 마음이라는 큰 그림에서 자신이 서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 충분히 보일 것이다.” (16~17쪽)

저자는 왜 이토록 과학의 중요성을 피력하는 것일까? 과학(기술)은 단순한 도구이기 이전에 실재하는 세계를 설명하는 ‘앎’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21세기에는 우주론이나 진화론 같은 진리를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하고, 칼 세이건의 말처럼 과학의 최우선적인 목표는 생명을 지키는 일이며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인류의 목표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책 속으로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에서 인류의 역사를 진화의 과정에서부터 그려냈다. 생물학적 종으로 인간이 되기까지의 역사와 문명을 건설하고 인간적인 삶을 추구한 역사를 하나로 연결해서 살펴보았다. 우리는 생물학적 인간에서 철학적 인간, 문명적 인간으로 성장했지만 인간의 생물학적 멸종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과학자들은 현재까지 지구에 존재했던 모든 생물종의 99.9퍼센트가 멸종했다고 추정한다. 이 지구에서는 멸종하기보다 살아남기가 훨씬 더 어려운 숙제인 것이다. (91쪽)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과학은 공허한 진리가 아니다. 『논리철학 논고』에 나오는 통찰들, ‘세계는 그저 있는 것이다’, ‘세계에는 목적이나 가치가 없다’ 등은 스티븐 호킹의 우주론이나 다윈의 진화론에서 입증되고 있다. 우리는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을 넘어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데 과학은 모든 가치판단의 토대가 되는 사실을 제공한다. 21세기의 과학은 철학자의 직관이 닿을 수 없는 우주에서 인간의 마음까지 설명할 수 있는 범위를 점차 확장하고 있다. (151쪽)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지구와 생명의 가치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그 생명의 경이로움을 우리에게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과학의 최우선적인 목표는 생명을 지키는 일이며 이것 또한 인류의 목표라는 것이다. 시선을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두지 말고 우주로 향하면 과학의 미덕이 보인다. 과학은 우주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밝혀주는 가장 믿을 만한 지식이다. 우주의 관점에서 과학을 공부하고 앎을 확장하면 지금껏 가지고 있었던 삶의 가치가 달라진다. (210~211쪽)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의 지적 능력이 자기 복제자들이 일으키는 최악의 이기적인 행동을 막을 수 있다고 내다보았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들의 독재에 대항할 수 있다.” 이 말은 우리가 유전자의 생존기계라고 해서 전적으로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비유하자면 유전자는 중력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중력의 지배를 받고 살고 있지만 중력의 법칙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용해서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고 우주 탐사를 하고 있다. 우리는 얼마든지 핵무기 개발이나 환경파괴와 같이 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벌어지는 세계의 문제를 직시하고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283쪽)

인문학자들의 생각에 따르면, 역사는 인간이 끊임없이 목적과 이상을 세우고 실현시키려는 과정이었다. 인간은 자유, 인권, 정의, 평등과 같은 가치를 통해 역사와 사회를 이끌고 지탱해왔다. 도정일은 평등과 같은 정치적 이상, ‘이웃을 사랑하라’는 종교의 가르침, 올바름을 추구하는 윤리가 없었다면 인간 사회는 망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문학자들은 물론 우리가 그동안 믿어왔던 가치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자유, 인권, 정의, 평등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허구였다고 말이다. 인간이 만든 가치들은 결국 생물학적 인간의 뇌에서 나온 것들이다. 1장에서 살펴보았듯 호모 사피엔스는 실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상징추론의 능력이 있다. 이러한 호모 사피엔스의 특별한 능력은 신화와 종교 같은 허구를 창조했고, 이것을 바탕으로 국가와 같은 거대 조직을 건설했다. 집단의 상상력으로 제조된 신화가 인간에게 소속감을 주고 협력관계를 맺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286~287쪽)

앞으로 뇌과학은 철학이나 인문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인간의 뇌를 이해한다는 것은 학문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제공한다. 일례로 인문학에서 탐구했던 아름다움과 행복,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자. 그동안 우리는 아름다움과 행복, 옳고 그름이 미학이나 예술, 도덕을 통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아름다움과 행복, 올바름이 실재하는 것일까? 다시 말해 이러한 가치들이 인간과 상관없이 외부세계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아름다움과 행복, 올바름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뇌가 느끼는 것이다. (337쪽)

정인경 지음 | 여문책 | 376쪽 |17,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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