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파나마 국민도 홍수환·카라스키야 잊지 못해"

[차량 동승 인터뷰] 홍수환-카라스키야 17년 만에 재회

9일 오후 서울 홍수환 스타복싱 체육관에서 홍수환 한국권투위원회(KBC) 회장(왼쪽), 1977년 링에서 맞붙었던 복서 파나마의 엑토르 카라스키야가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박종민기자
"17년 만에 만났는데 어제 본 사람 같아요. 허허"(홍수환)
"잃어버린 형제를 찾은 느낌이에요. 오늘 만남을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카라스키야)

지난 9일 오후 서울 대치동의 복싱체육관에서 광화문으로 이동하는 차량 안. 17년 만에 재회한 홍수환(66) 한국권투위원회(KBC) 회장과 엑토르 카라스키야(56) 의원은 50여 분간 쉴새 없이 이야기꽃을 피웠다.

파나마의 국회의원이 된 카라스키야는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초청으로 지난 4일 방한해 국회, 외교부, 비무장지대 등을 방문하는 빡빡한 일정 가운데 홍수환과 만남을 가졌다.

둘의 인연은 1977년 11월 2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파나마에서 열린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페더급 초대 타이틀전에서 홍수환은 2라운드에서 다운을 4차례 빼앗겼지만, 3라운드에서 회심의 왼손 훅 한 방으로 KO승을 거뒀다. 4전 5기 신화의 탄생 순간이다.

기적같은 역전승과 충격적인 패배, 교차하는 환희와 절망. 39년이 흐른 지금, 둘은 그 경기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발휘한 경기였어요. 예술 작품 같았죠."(홍수환)
"졌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둘 다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그 경기 덕분에 저희는 친구가 됐고, 파나마와 한국이 좀 더 가까워졌어요."(카라스키야)

9일 오후 서울 홍수환 스타복싱 체육관에서 홍수환 한국권투위원회(KBC) 회장(오른쪽), 1977년 링에서 맞붙었던 복서 파나마의 엑토르 카라스키야가 만나 포옹하고 있다. 박종민기자
아마추어 전적 32전 32승, 프로 전적 11전 11승 11KO를 달리던 복싱 신성에게 이날 패배는 뼈아팠다. 카라스키야는 이후 내리막길을 걷다가 1981년, 21살의 나이(통산전적 18승 5패 16KO)에 은퇴했다.


하지만 정치에 입문한 다음 구청장과 시장을 거쳐 2014년부터 자신의 고향(산 미구엘리토)에서 국회의원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카라스키야는 "당시에는 그날 패배가 너무 슬펐지만 지나고 보니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그날 패배로 다른 삶의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정치에 발을 들였고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다"며 "의미없는 실패는 없다. 실패는 성공의 기반"이라고 강조했다.

둘은 복싱을 통해 건강한 삶을 얻고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다고 했다.

"복싱을 한 덕분에 건강하게 살고 있어요. 국민들이 복싱 좀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홍수환)
"복싱은 순수해요. 링 위에서는 격하게 싸우지만 링을 내려오면 친구가 되죠. 끈기와 겸손함의 가치를 배웠어요."(카라스키야)

홍수환과 카라스키야 뿐만 아니라 한국과 파나마 국민도 그날 경기를 잊지 못한다. 둘은 서로의 나라를 방문했을 때 자신을 알아보고 크게 반겨준 국민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1978년 8월 19일 서울에서 황복수와 경기한 후 38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은 카라스키야는 "한국의 경제적 번영과 발전상이 놀랍다"며 "한국에서 '정'을 느꼈다. 많은 사람이 그날 경기를 기억하고 있더라"고 했다.

카라스키야가 "홍수환은 한국이 가난했던 시절 국민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준 스포츠 영웅"이라고 하자 홍수환은 "한국에서 카라스키야 인기가 나보다 많다"고 웃었다.

9일 오후 서울 홍수환 스타복싱 체육관에서 홍수환 한국권투위원회(KBC) 회장(왼쪽부터), 1977년 링에서 맞붙었던 복서 파나마의 엑토르 카라스키야, 황복수가 재회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종민기자
1999년에는 국내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홍수환이 파나마로 건너가 카라스키야를 만났다. 홍수환은 "공항에서부터 반겨주더라. 오래 전 시합을 기억해줘서 고마웠다"고 했다. 카라스키야는 "길가는 시민들이 홍수환을 알아보고 박수를 쳤다"고 웃었다.

둘은 내년에도 만남을 계획하고 있다. 홍수환이 "내년 11월 26일은 '4전5기 경기' 40주년이다. 내가 파나마로 가든, 카라스키야가 한국으로 오든 꼭 다시 만나자"고 하자 카라스키야는 "의정활동 비회기 기간(10월 31~1월 31일) 한국에 올 수 있다"고 화답했다.

"다시 만날 때 링에서 겨뤄 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카라스키야가 "한 번 계획을 세워보겠다"며 웃자 홍수환은 "난 안 해"라고 손사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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