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초년 기자가 폭행위기 ''조선'' 기자 구했다

"전경버스 탈취" 한 마디 했다가 시민들에 곤욕

한밤중 촛불집회 현장에서 시민들에게 둘러싸여 곤욕을 치르고 있던 조선일보 부장급 기자가 경향신문의 한 초년병 여기자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나게 돼 화제가 되고 있다.

"논조가 마음에 안 든다고 기자를 폭행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경향신문 기자의 설득 끝에, 3백여 명의 시민들은 조선일보 이 모 부장을 둘러싼 지 1시간 만에 돌려보냈다.

▶ 전경버스 ''탈취''…한 마디가 시민들 자극

사건의 발단은 사소했다.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5일 밤 11시 30분쯤, 조선일보 이 모 부장은 서울 신문로 금강제화 앞에서 휴대전화를 하면서 "시위대가 전경버스를 탈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들은 몇 명의 시민들은 "전경버스 끌어내는 게 왜 탈취냐"며 항의했고, "혹시 경찰 프락치 아니냐"는 물음이 터져 나왔다.

이에 이 부장은 "기자"라고 말했지만, 시민들은 "어느 신문기자냐", "혹시 조중동 아니냐"며 순식간에 이 부장을 에워쌌다.

이 부장이 "조선일보"라고 답하자, 시민들은 "직접 보니 우리가 빨갱이냐?"며 항의하는 등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 "신분증 요구할 권리 있나" 즉석에서 토론회 벌어져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한택근 변호사는 "여러분이 바라는 것이 뭔지 우선 말해보자"며 흥분한 시민들을 진정시켰다.

시민 300여명은 "우선 앉자"며 한택근 변호사의 제의에 따라, 이 부장 주위로 빙 둘러앉았다.

한택근 변호사는 "경찰이 신분증을 요청할 때도 근거를 대야 하는데, 촛불 집회 참가자가 이 부장에게 정확한 신원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근거가 뭐냐"고 앉아 있는 시민들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이에 한 시민이 일어나 "조선일보 식으로 말하겠다"면서 "저기 서 있는 사람은 기자가 아니라 북한에서 내려온 간첩일지 모르니 신분조사가 필요하다"고 답하자, 나머지 시민들은 박수와 환호로 호응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결국 이 부장은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한 변호사에 말했고, 한 변호사는 이 부장을 돌려보내려고 했다.



▶ 경향신문 기자 "내가 신분 보증하겠다" 시민들 설득

사태가 진정되는 듯 했지만, 이 부장이 자리를 뜨려고 하자 시민 1백여명은 이 부장을 따라가며 "그냥 보낼 수 없다" "돌아가면 폭도들이 폭행했다"고 할 것 아니냐고 했고, 일부 시위대는 욕설까지 서슴지 않았다.

결국 이 부장은 얼마 못가 인근의 한 호프집으로 몸을 피했다. 하지만 시위대 100여명은 호프집 문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이때, 상황을 지켜보던 경향신문 임 모 기자가 나섰다.

임 기자는 시민들에게 "나는 경향신문 기자"라며 신분증을 보여준 뒤, 이제 "조선일보 기자를 돌려보내주자"고 시민들을 설득했다.

하지만 일부 시민들은 "저 사람 신분증도 못봤다"고 했고, 또 다른 시민들은 "혼을 내주겠다"고 소리쳤다.

이에 임 기자는 "조선일보 기자가 지금 신분증을 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조선일보 측에 전화해 신분을 확인보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임 기자는 실제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조선일보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 부장의 신원을 확인해줬다.

또 마지막까지 화가 풀리지 않은 시민들에게는 "이러면 안 된다. 신문 논조가 마음에 안 든다고 기자를 때리면 촛불집회에도 손해"라고 시민들을 설득했다.

결국 민변 관계자들까지 임 기자의 설득을 거들면서, 조선일보 이 부장은 시위대에 둘러싸인 지 1시간여 만에 회사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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