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를 시작으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사흘간 이어진 대표연설에서 박근혜 정부 성과와 한계, 그리고 남은 임기 1년 반 동안 과제들을 역설했다.
세 사람의 대표연설은 박근혜 정부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와 국회 파트너로서 대(對)여 대야 관계설정, 그리고 내년 대선을 앞둔 정치공학 등으로 차별됐다.
청와대 대변인 출신으로 친박(친박근혜) 대표주자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특권 내려놓기와 호남연대론 카드를 꺼내들었다. 호남 출신 새누리당 대표라는 확장성을 갖춘 만큼 역대 정권의 '호남홀대론'을 사과하며 정치적 동지 관계 재설정을 제안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반기문 추대론으로 대표되는 충청과 호남을 묶어 정권재창출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분석이 당장 나왔다.
이 대표는 "호남과 새누리당이 얼마든지 연대정치 연합정치를 펼칠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유력한 대선주자가 없다고 호남이 변방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다. 호남도 주류정치의 일원이 돼야한다"고 호남 민심을 자극했다.
안보는 보수를 표방하며 호남에 기반을 둔 국민의당 일부 의원과는 빠른 시간 안에 정치적 동맹도 가능하다는 연대론 가능성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이정현 대표는 국회의원 특권에 대한 공분을 강조하며 국민들의 돌아선 마음을 어루만지려는 시도도 했다. 이 대표는 "많은 국민들은 나라를 해롭게 하는 국해(國害)의원이라고 힐난한다"며 "헌정 70년 총정리국민위원회를 설치해 혁명적인 국회개혁에 나서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불가피성과 노동개혁 법안 처리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20대 국회 집권여당의 첫 대표연설에 야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 대표의 반정치적 반의회주의적 발언은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끊임없이 반복한 국회심판론과 궤를 같이한다는 지적이 일었다.
야당은 이정현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의 관심 법안의 처리 필요성만 강조했을 뿐 우병우 민정수석이나 '부적격' 장관 임명강행 등에 대한 현안 언급은 없었고, 세월호 특조위 기간연장이나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통렬한 반성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대표 취임 열흘만에 국회 단상에 오른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시종일관 경제와 민생을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민생경제 논의 영수회담을 제안하는 등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한 의지를 다졌다.
추 대표는 "대한민국 경제가 비상시국인 데 컨트롤타워가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대한민국 주력 산업을 다 까먹고 있다"며 "민생경제 전반을 다룰 경제 영수회담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국무총리 산하에 '가계부채 비상대책위원회' 구성도 제안한 추 대표는 민생경제 회생 키워드로 공정임금과 조세개혁을 꼽았다.
하지만 우병우 수석 사태나 청와대의 '오기' 인사에는 이렇다할 언급을 피했다.
추 대표는 사드반대 당론 여부 결정을 둘러싼 세간의 관심을 의식한 듯 "사드는 북한의 미사일로부터 국민 안전을 책임지지 못하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무용지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사드배치 반대 당론 결정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사드반대를 당론으로 정한 국민의당은 같은 야당임에도 불구하고 추 대표의 연설을 이례적으로 혹평했다. 민감한 정치현안을 비껴간 데다 이렇다할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진단을 내렸다.
국민의당 손금주 수석대변인은 "경제위기와 가계문제 진단은 긍정적이지만 현재의 격차와 불평등, 그리고 미래의 인구절벽 등에 대한 비전이나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며 "특히 정치권의 반성에 침묵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9단'답게 시종일관 박근혜 정부의 실정을 언급하며 야성을 불살랐다.
연설 초반부터 "눈과 귀를 닫고 독선과 불통으로 분열과 갈등만 키우고 있다" "국회를 무시하고 신 보도지침, 언론 통제로 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며 직격탄을 퍼부었다. 민생경제와 노사갈등, 역사왜곡, 외교실책, 남북갈등 등 사회 여러 분야의 분열과 반목의 책임은 결국 박 대통령에게 있다고 비판했다.
각종 의혹이 제기된 청와대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해서는 "우병우 뇌관을 제거해야 대통령도 성공하고 국정운영도, 국회도, 검찰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며 해임 결단을 다시한번 강조했다.
검찰개혁에 대한 각오도 다졌다. 박 위원장은 "검찰은 국민과 야당 수사에서는 면도칼을 들이대고 자신의 비리에는 늑장 수사, 늑장 감찰의 무딘 칼을 대고 있다"며 "묵묵히 일하는 99%의 검사들을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반드시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드배치에 대한 반대 입장을 재확인한 박 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 필요성도 언급했다.
전날 같은 야당으로부터 혹평을 받은 더민주는 박지원 위원장의 연설에 아쉬움을 표했다.
더민주 박경미 대변인은 "박 위원장의 현안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백화점식 나열에 그친 점은 아쉽다"며 "화려한 상차림에도 불구하고 정작 메인요리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경제가 비상상황인 만큼 보다 긴급한 민생문제부터 해결해나가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 3人3色 화법도 제각각 '호소형' '단호형' '비유형'
이정현, 추미애, 박지원 등 각당 수장들의 대표연설은 내용은 물론 화법에서도 큰 차이를 보였다.
이 대표는 본인 특유의 서민적 호소력으로 정치연대를 강조했고, 추 대표는 '추다르크' 다운 무게감으로 민생경제를 외쳤다. 박 위원장은 '정치9단'답게 각종 비유를 들며 현 정부를 비판했다.
세 사람 모두 사드를 언급했지만 내용과 수위는 달랐다.
이 대표는 "안보 문제인 만큼 초당적으로 협력해달라. 대승적 결단을 눈물로 호소한다”고 했다. 추 대표는 "강풍정책과 외교무능이 만들어낸 패착"이라고 규정했고, 박 위원장은 "대한민국 사드 갈등은 전적으로 정부 책임"이라고 단언했다.
경제정책에서도 3당은 큰 온도차를 보였다.
이 대표는 노동개혁법 등 경제활성화법 처리로 경제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접근했지만, 추 대표는 법인세 정상화, 가계부채 문제 해소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중부담-중복지'라는 한국형 복지모텔 마련을 강조했다.
전기요금 논란에 대해서는 "폭염에 따른 전기요금에 새누리당이 앞장서서 긴급 예산을 편성한다"(이정현), "영혼 없는 쇼일뿐 정부가 나서서 전기요금 약관을 즉시 개정하라"(박지원) 등으로 신경전을 벌였다.
화법도 달랐다. 이 대표는 호소형으로 감정적 표현을 많이 섞었다. "안타깝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퍼주기식 복지는 나라를 구렁텅이로 몰아간다" "황제 정치놀음" "도와주십시오" 등이 대표적이다.
추 대표는 이 대표와 달리 무게감 있는 강경한 어조로 구사했다. "경제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언급에서는 단호했고, 한진해운 법정관리로 촉발된 물류대란을 지적할 때는 격앙됐다. 소득양극화의 심각성을 말할 때는 목소리가 갈라졌다.
박 위원장은 비유를 많이 활용했다. 정치철학자 루쏘의 발언을 인용해 "국민은 선거일 하루만 주인이고 일년 내내 노예"라고 언급하거나 "정치는 곱셈의 마법과 같이서 정치 수준이 '0' 이면 경제가 일류라도 '0'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