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는 지난 2일 차기이사장 선임을 위한 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한데 이어 5일에는 거래소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모집공고를 냈다.
정관에 따르면 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사외이사 5명과 상장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 추천 상장사 대표 2명, 금융투자협회 추천 2명으로 구성하도록 돼 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모든 절차는 정관과 규정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수 이사장의 임기만료는 9월말이고 이사후보추천위원회 규정은 이사장 임기만료 한달 전까지는 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도록 돼있다.
하지만 앞으로 한달도 채 안남은 기간에 모든 공모절차를 마치기는 무리임에 틀림없다.
"서류심사와 사실확인, 면접, 인사검증, 주총승인 등의 일정을 감안하면 한달 안에 모든 절차를 마치기는 물리적으로 힘든 것이 사실이다"라고 거래소의 다른 관계자는 말했다.
최 이사장의 임기만료가 예정돼 있었던 것인 만큼 선임절차를 보다 일찍 시작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도 이사장 임기만료 막판까지 몰리면서 이사장 선임절차를 진행하게 된 것은 무슨 까닭일까.
거래소 관계자는 거래소의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에 전력을 다하느라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이것은 이사장 선임절차를 진행해야 하는 부서와 지주회사 전환 추진부서가 한 부서이기 때문에 일리가 없진 않지만 변명으로는 좀 약하다.
이사장 선임절차 진행과 지주회사 전환은 얼마든지 분리해서 추진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다 사실에 가까운 것은 지주회사 전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짓기 위한 최경수 현 이사장의 연임론 등장으로 보인다.
최경수 이사장이 연임으로 간다면 공모절차를 길게 가져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연임론은 "달리는 말의 기수는 바꾸지 않는다"는 식으로 최경수 이사장이 지금까지 지주회사 전환의 기치를 들고 앞장서 달려온 만큼 곧 임박한 지주회사 전환문제를 매듭지을 때까지 최이사장이 연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논리다.
정관에 따르면 3년의 임기를 마친 이사장은 1년 단위로 연임할 수 있도록 돼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현 이사장이 연임할 경우에도 공모 절차를 거쳐야 하고 다른 응모자와 경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 이사장이 연임에 나선다고 하면 현 이사장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이사장을 뽑는 이사후보추천위원 9명 가운데 5명이 사외이사이고 사외이사는 이사장 편에 가깝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연임의 명분인데 최경수 이사장의 연임론은 나름대로 설득력을 가진 만큼 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 충분히 제기되고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래소는 연임론을 당당하게 내밀지는 못하고 있다..
결정적인 이유는 아직도 윗선에서 방침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거래소가 공공기관 지정에서 풀려나 이사장 선임은 정관에 따라 이사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주총에서 승인하는 것으로 끝나게 돼 있지만 실제로는 아직도 윗선의 의지와 힘이 작용하고 있다"며 "그것을 거슬러서 선임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여러가지 문제로 정신이 없어 거래소 이사장 선임 문제도 신경 쓸 여가가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비단 거래소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다른 공공적인 성격을 가진 금융기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사장 선임 문제와 관련해서는 현재까지는 윗선에서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으로 안다. 선임절차를 진행하면서도 이사장 연임문제 등에 대해 명확히 말을 해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라고 말했다.
공공기관지정에서 해제된 민간기업인 거래소가 차기이사장 선임과 관련해 여전히 청와대의 눈치를 보면서 주체적으로 헤쳐나가지 못하는 형국이다.
이것이 거래소만의 탓은 아니다.
거래소는 지난 2008년 초 이명박정부 출범 당시 이정환 이사장이 청와대의 뜻에 거슬러 이사장에 선임된 뒤 공공기관에 지정되고 감사원과 금융감독당국의 감사를 받는 등 혹독한 시련을 겪은 바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8년 전 경험에 비춰볼 때 거래소가 법과 규정을 앞세워 이사장 선임절자를 주체적으로 진행해 나가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법과 규정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 지주회사 체제로 바꾸고 상장까지 계획하고 있는 거래소에 걸맞게 이사장 선임 관행도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