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인을 이해하는 게 곧 연대의 시작 아닐까?
- 한국사회의 가장 큰 惡? 타인에 대한 폭력!
- 타인에 대한 이해는 곧 상상력의 문제일수도
- 다양한 인간 군상 그린 소설 통해 상상력 확장 필요해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6년 9월 5일 (월) 오후 7시 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은희경 작가
◆ 은희경> 네, 안녕하세요.
◇ 정관용> 지금까지 장편 몇 개, 단편집 몇 개?
◆ 은희경> 총 13권인데요. 아마 반씩?
◇ 정관용> 반, 반.
◆ 은희경> 네, 그런 것 같아요.
◇ 정관용> 바로 그런 점에서 꾸준히 장, 단편을 왔다 갔다 쓰시는 대표적 작가로.
◆ 은희경> 네, 꾸준하긴 해요. (웃음)
◇ 정관용> 왜 그러세요? 장편과 단편이 다 나름 재미가 있으세요?
◆ 은희경> 네. 굉장히 다른 장르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단편소설은 약간 정물화 같은 느낌? 그런 것이고. 장편소설은 풍경화라고 할까요? 그래서 뭔가 제가 생각하고 있는 어떤 근본적인 생각의 변화, 아이디어 이런 건 단편에 쓰고요. 딱 이야기로 쓰고 싶을 때가 있어요. 여러 가지 복잡한 이야기로. 그럼 장편 쓰고. 대부분은 장편 쓰고 다음에 또 단편집 내고 이렇게 되는 것 같아요.
◇ 정관용> 방금 언급하신 근본적 생각의 변화는 단편에 실린다?
◆ 은희경> 네.
◇ 정관용> 상식적으로는 큰 장편, 심지어 대하소설 이런 것 속에서 자기의 생각과 사상, 철학, 문명론 이런 게 다 녹아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을 했는데 의외인데요? 단편이 생각의 변화를 보여준다?
◆ 은희경> 단편이 훨씬 좀 실험적이고요. 그리고 가장 또 뭐랄까.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첨단.
◇ 정관용> 아, 알겠습니다.
◆ 은희경> 제가 지금 도착한 사유라고 할까요? 그런 것에 더 동기부여가 돼요.
◇ 정관용> 그러니까 끝까지 검증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어? 이건 이런 것 아닐까?’ 싶을 때 단편을 쓰신다?
◆ 은희경> 네. 그런 것도 있어요. 장편은 충분히 많은 이야기가 안정이 돼야지 쓸 수 있으니까요.
◇ 정관용> 아, 이해가 됩니다. 이번 단편집은 그럼 어디에 도달한 생각입니까? (웃음)
◆ 은희경> 제가 2년 전에 단편집을 또 냈기 때문에 그 이후에 쓴 단편 6편이고요. 그 이전 제 단편집하고 성격이 안 맞아서 놔뒀던 것들, 그런 게 두 편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 표제작이 된 ‘중국식 룰렛’은 8년 전에 썼던 거고요. 그리고 뒤에 있는 것들은 지난 2년 사이에 쓴 것들입니다.
◇ 정관용> 2년 사이에 쓴 것들이고. 그래서요, 거기서는 어디에 도달한 생각을 주로 담으셨던 것들입니까?
◆ 은희경> 글쎄요. 최근 작이 어쩌면 가장 저의 최근 근황이라고나 할까요? 그럴 수 있는데. 어떻게 설명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 소설이 전의 소설에 비해서 좀 연대감?
◇ 정관용> 사회적 연대감?
◆ 은희경> 그렇죠. 연대감 그리고 제 소설은 그렇게 표현했어요. 우리는 어차피 부조리한 세상의 어둠을 피해서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겠지만, 우리 인간이. 하지만 뒤에서 어떤 다정한 부력이 우리를 안아줄 거라는.
◇ 정관용> 지탱해 주고 있다.
◆ 은희경> 네, 그런 생각을 좀 해 봤어요, 이번 소설에서는.
◇ 정관용> 삶이 힘들어도 누군가 옆에서 나를 붙들어준다?
◆ 은희경> 그렇게도 표현할 수 있고 아무튼 조금 빛이 있어요. 빛을 두고 싶었어요. 등 뒤에 있는 빛의 웅덩이 같은 거?
◇ 정관용> 그게 누구예요? 사람입니까?
◆ 은희경> 우리들이 그렇게 서로를 알고 이해해야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 정관용> 힘든 우리들?
◆ 은희경> 네.
◇ 정관용> 우리들이 서로서로 붙잡아줘야 된다, 이런 거?
◆ 은희경>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소설을 쓸 때 ‘이런 걸 내가 확실히 알고 있으니까 이걸 말해야지’ 이런 것보다도 ‘나는 도대체 모르겠는데 이것 좀 질문해 보자’ 그런 생각으로 쓰기 때문에 어떤 결론인지 확실히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어쨌든 소설을 쓸 때 그 문제에 아주 많이 빠져들었고 거기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고민했다.
◇ 정관용> 독자들이 느껴야죠, 그걸 가지고.
◆ 은희경> 네.
◇ 정관용> 지금 6편의 소설 중에 보니까 남성이 주인공이고 화자인 소설이 더 많아요.
◆ 은희경> 네.
◇ 정관용> 원래 그렇게 하십니까?
◆ 은희경> 네. 좀 그래요. 지금까지 소설에도 남자 화자가 훨씬 많아요.
◇ 정관용> 왜 그렇죠? 남자를 잘 아세요?
◆ 은희경> 그럴 때는 남자 입장에서 쓰는 게 아니라 그냥 인간 대표를 남자로 두는 거예요.
◇ 정관용> 아.
◆ 은희경> 그러니까 특별히 어떤 여성문제라거나 사회적인 그런 거일 때 이 주인공은 꼭 여자여야 된다, 심리적으로 보더라도. 그럴 경우가 아니고는 보통의 이야기를 쓸 때는 좀 남자 주인공으로 얘기를 하는 게 일단은 쓰기가 편해요.
◇ 정관용> 그 보통의 이야기의 화자이고 주인공인 남자들은 이 책에서도 보면 ‘중국식 룰렛’의 남자는 ‘나는 운이 없는 남자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남자이고. ‘대용품’에서는 ‘나 자신은 다른 사람의 대용품에 불과하다’ 이렇게 말하는 남자고. 어찌 보면 그렇게 막 잘나가는 남자 이런 게 아니고 세상에 치이고 좀 보잘 것 없고 그냥 보통 그런 남자들이거든요.
◆ 은희경> 네. 여자 주인공도 마찬가지고요. 제 소설은 조금 이렇게 되고 싶다는 사람이 안 나오고 왜 이렇게 돼버렸을까, 그런 사람들이 주로 나와요. 그럴 때는 남자주인공이 꼭 어떤 남성성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어떤 한 사람이 인간으로서 이야기를 풀어가기가 더 쉬워서 그렇게 남자화자를 대표로 세운 것일 뿐이에요.
◇ 정관용> 그래서 ‘난 이렇게 힘들다’, ‘난 이렇게 운이 없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결국은 그 사람들도 뒤에서 떠받혀주는 뭔가가 있다?
◇ 정관용> 이번에는 불운의 연대입니까, 그러면?
◆ 은희경> 조금... 불운, 너무 비극적이에요. (웃음)
◇ 정관용> (웃음)
◆ 은희경> 그런데 어쨌든 간에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 타인을 이해한다는 게 연대의 시작이라는 그런 생각도 좀 해봤어요.
◇ 정관용> 네가 운이 없으면 나도 없고, 이렇게 공감하는 것.
◆ 은희경> 네. 그리고 술 얘기에서 썼지만 천사가 2%를 가져간다고 해도 맛있는 술에서만 가져가는 게 아니라 모든 술에서 가져가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공평한 것 같아요.
◇ 정관용> 위스키를 숙성시키다 보면 2% 정도 증발돼 나가는 것, 그걸 천사가 먹는 것이다. 이렇게 보통 표현하는 지금 그걸 말씀하시는 거죠?
◆ 은희경> 네.
◇ 정관용> 그런데 그건 좋은 술이나 나쁜 술이나 똑같아요? 2%가?
◆ 은희경> 네.
◇ 정관용> 그런 게 운이 없는 겁니까, 그러면? 2% 뺏기는 게?
◆ 은희경> 그러니까 자기가 생각할 때 ‘나는 왜 운이 없을까. 다 뺏기고’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뭐랄까요. 제가 설명하기는 좀 어렵지만 어쨌든 간에 그냥 자기 선택이라는 게 중요하고 자기가 보는 자기 인생이 중요하다는 그런 뜻도 될 것 같아요.
◇ 정관용> 자기 선택. 자기가 보는 자기 인생.
◆ 은희경> 네.
◇ 정관용> 이런 말이 또 나옵니다. ‘별의 동굴’이라는 소설에 ‘기준을 낮게 잡으면 낙천적이 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욕망을 조절하면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이런 표현. 이런 게 자기 선택, 자기가 보는 자기 인생 이건가요?
◆ 은희경> 조금 그건...
◇ 정관용> 눈높이를 낮춰라, 이건가요?
◆ 은희경> 아니, 그게 지금 이 주인공의 결론이 아니에요. 그렇게 살아왔지만 그래도 이 사람이 안전지대에서 머물 수는 없어요. 그런 사람에게도 결국 더 어떤 험난한 선택을 해야 될 상황은 오거든요. 아무리 저런 식으로 나는 그냥 크게 바라지 않는다. 나는 이 정도 자존심 살리면서 그냥 이렇게 살겠다. 이렇게 해도 어차피 운명은 피할 수 없어서 우리가 그것마저도 포기해야 되는 순간이 온다는 이야기였어요. 그래서 그렇게 생각했던 주인공이 결국은 그것 때문에 무너지는 것.
◇ 정관용> 그래요. 이런 건 없을까요? 남의 잣대에 비추어서 나는 왜 이렇게 무능할까. 내지는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없을까. 모두가 그런 상실감과 아픔 같은 것들을 다 조금씩 갖고 있단 말이에요.
◆ 은희경> 네.
◇ 정관용> 그런데 거기서 ‘그래, 여기서 만족하고 눈높이를 낮추자’ 이런 선택만 가지고도 답이 안 된다. 이런 말씀이시잖아요.
◆ 은희경> 그렇죠.
◇ 정관용> 그럼 아예 가치관과 생활세계 자체를 바꿔서 남이 생각하는 기준이 아니라 자기의 어떤 행복 이렇게 나가는 그런 건 없을까요?
◆ 은희경> 그러니까 사실 거기까지가 제 이전의 소설 색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세상을 못 바꾸니까 내 생각을 바꾸고 나의 어떤 관점을 바꾸고.
◇ 정관용> 나라도 행복하게.
◆ 은희경>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그렇게 생각한 사람에게 그렇다고 해서 안전하지는 않다는 얘기를 이번 소설에서는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건 결국 악을 두둔하는 것밖에 안 됐어요. 지금 우리를 자꾸만 구속하고 있는 그런 불합리한 세계를 강화시켜주는 것밖에 안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좀 솔직해지는 소설이었어요, 그 ‘별의 동굴’에서는.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살았던 게 정말 내가 그래서인가. 나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이랬던 게 아닌가.
◇ 정관용> 맞아요. 자기 혼자 행복 이렇게 하면 사실 시대의 방관자가 되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게 결국은 악을 두둔한다.
◆ 은희경> 네.
◇ 정관용> 은희경 작가에게 한국사회의 가장 큰 악은 뭡니까?
◆ 은희경> 타인에 대한 폭력이죠. 그러니까 타인을 하나의 그 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내 질서로 타인을 자꾸 재단하는 것.
◇ 정관용> 독단, 독선 이런 것.
◆ 은희경> 네. 그런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개인을 존중해 주지 않고 결국 어떤 식으로든 폭력적인 상황이 되는 것 같아요.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 정관용> 그걸 어떻게 극복할 수 있죠, 그런데? 안 되나요?
◆ 은희경> 글쎄요. 제 생각에는 소설을 많이 읽으면 될 것 같은데.
◇ 정관용> 그래요? 소설을 많이 읽으면 생각이 바뀌어요?
◆ 은희경> 글쎄요. 다는 아니지만 한 가지 방법은 된다고 저는 생각해요. 왜냐하면 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상상력의 문제일 수 있다는 봐요. 그러니까 상상력이라고 하면 무슨 우주를 상상한다거나 미래를 상상하는 이런 것도 물론 조금은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 타인의 지금 생각과 마음과 그런 걸 이해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걸 이해를 도와주는 것이 그야말로 인간학인 소설이 아닌가.
◇ 정관용> 소설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을 하고 그것도 아주 정형화된 형태로 등장을 하고 그 인간들은 한 명, 한 명이 나름의 역사와 나름의 세계관과 나름의 문명에 대한 통찰과 이런 걸 다 반영하잖아요.
◆ 은희경> 그렇죠.
◇ 정관용> 그 사람들,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을 한 번 생각해보면서 읽으면 타인을 보는 눈이 넓어진다?
◆ 은희경> 네.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니까 소설 주인공들은 소설 등장인물들은 어디까지는 전부 나와 비슷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선택을 하거든요, 대부분. 그래서 그런 어떤 나와 다른 선택을 하는 것 자체가 그걸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사람에 대한 인간을 보는 유연함 이런 것이 좀 깊어지지 않을까.
◇ 정관용> 그게 관용의 정신이죠.
◆ 은희경> 그렇죠.
◇ 정관용> 제 이름이 관용이듯이. (웃음)
◆ 은희경> 네. 유도하시는 것 같았어요. (웃음)
◇ 정관용> 소설을 통해서 그렇게 독단, 독선으로 타인을 폭력을 가하는 그런 사회적 악도 조금씩 조금씩 허물어버릴 수 있다고 믿는다?
◆ 은희경> 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 정관용> 이번 소설집에도 다들 칙칙한 사람들 많이 나오지만 그 사람들이 그래도 뭔가 뒤에서 뒷받침해 주는 어떤 연대.
◆ 은희경> 네. 무슨 어떤 진짜 실제적인 연대라기보다도 일단 이해받는다는 것 자체가 이 세계가 나와 연대하고 있다는 게 아닐까 싶어서 누군가에게는 이해받는 어떤 그런 설정을 많이 했어요.
◇ 정관용> 여기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누군가에게 이해 받습니까?
◆ 은희경> 그러니까 등장인물들 대체로 이해받기 어려운 인물들이에요.
◇ 정관용> 그런데 이해 받아요?
◆ 은희경> 네.
◇ 정관용> 그거 중요하죠. 은희경 작가를 제일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 은희경> 찾아봐야겠어요. (웃음)
◇ 정관용> 갑자기 안 떠오르시나 봐요?
◆ 은희경> 아니, 무슨 상황별로 다르니까요. 어떤 연대라는 게 진짜 굉장히 다양한 연대가 있는 것 같아요. 모든 연대를 같이 하는 건 그것도 또 폭력 같아요.
◇ 정관용> 다르죠, 다르죠. 삶의 영역별로 가족이 차지하는 영역, 친구가 차지하는 영역 다 다르죠.
◆ 은희경> 네.
◇ 정관용> 그래도 많이 이해받고 계신 거죠?
◆ 은희경> 네. (웃음)
◇ 정관용> 누군가는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다. 이번 단편집에서는 거기까지.
◆ 은희경> 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다 이해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
◇ 정관용> 그런 사람들을 좀 일찍 만나고 주변에 많이 만난 사람은 정말 행운인 사람들인 거고.
◆ 은희경> 그렇지만 관계는 늘 변하거든요.
◇ 정관용> 물론 변화하지만.
◆ 은희경> 그래서 일찍 만나서 행운이라는 말은 조금 위험한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을 딱히 정해줘서 그 사람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모든 관계를 만들어가는 거니까.
◇ 정관용> 그렇죠.
◆ 은희경> 그래서 그런 사람을 찾지 말고 이 관계의 유연성을 가지라는 그런 소설이 아닌가 싶어요.
◇ 정관용> 알겠습니다. 관계의 유연성까지. 아까 은희경 작가께서 하신 말씀을 제가 그냥 받아서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생각에 대해서 궁금해 하고 그것을 소설을 통해서 읽어보고 자기 생각을 넓히고 서로를 좀 허용하는, 이해하는 그런 문화가 앞으로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커져가기를 기대해보겠습니다.
◆ 은희경> 정말.
◇ 정관용> 그래야 소설가 분들도 좀 먹고 살기 쉬워지죠. (웃음)
◆ 은희경> (웃음)
◇ 정관용> 오늘 나와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네, 감사드립니다.
◆ 은희경> 네, 감사합니다.
◇ 정관용> ‘중국식 룰렛’ 들고 오신 은희경 작가였습니다.
[CBS 시사자키 홈페이지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