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의 무모하지만 위대한 여정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선정한 세계에서 세 번째로 아름다운 곳, 로포텐 제도에서 펼쳐진다. 그곳에는 거대한 그린란드상어가 헤엄치고 있다. 노르웨이 피오르에서 북극에 걸쳐 깊은 바닷속을 헤엄쳐 다니는 원시 생물인 그린란드상어는 세상에서 가장 큰 육식상어다. 최근 연구 결과로 400년 이상을 산다고 알려졌으며 몸길이는 8미터까지 자랄 수 있고, 무게가 1톤 이상 나가며, 사람까지도 질식시키고 환각을 일으키는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다.
“다음 주 일기예보 확인했어?”
7월의 어느 날, 날씨를 묻는 것에서 긴 여정은 시작된다. 두 남자는 오래전부터 특정한 날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애타게 기다린 건 노르웨이 북쪽, 베스트피오르에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다. 바람 한 점 없는 상태를 로포텐 사람들은 ‘초월적 고요’라고 부른다. 간절히 기다려온 초월적 고요의 바다 위에서 두 남자는 북대서양 가장 깊은 곳을 헤엄쳐 다니는 그린란드상어를 기다린다.
두 남자의 상어 프로젝트는 단순한 상어잡이가 아닌 그들의 꿈을 향한 여정이다. 저자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바다에서 거친 파도에 휩싸이면서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바다를 북유럽 문학 특유의 섬세한 필체로 담아냈다.
이 책은 바다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담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신화와 문학은 물론 시와 과학, 역사, 생태학, 소설, 신화를 넘나들며 바다를 언어로 표현했다. 바다 위에서 겪는 아름답고도 세찬 모든 순간을 담아낸 그의 열정은 한 문장 한 문장을 거쳐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책을 가득 메우고 있는 시적이고 서정적인 어구들은 모두 인생에 있어 중요한 물음들이다. 저자는 우리의 근원이 된 그릇과도 같은 바다, 심연의 끝까지 파고들며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간다.
이 책에는 랭보의 시 '취한 배', 허먼 멜빌의 《모비딕》, 조지 오웰의 《고래 뱃속에서》, 쥘 베른의 《해저 2만리》 등 우리에게 익숙한 문학 작품을 비롯해 신화, 천문학, 철학, 노르웨이의 역사, 미지의 바다와 북극을 탐험했던 이들의 기록 등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담겨 있으며, 그것들은 또 다른 모습으로 두 남자의 도전을 투영해준다.
향유고래와의 조우, 베스트피오르에서 맞닥뜨린 거대한 범고래 떼, 겨울 대서양에서 펼쳐지는 세계 최대의 대구잡이 축제의 향연은 우리의 심장을 격하게 만들기도 하고 인간의 이기심으로 수족관에서 평생을 보내는 고래들, 인간의 무관심 속에 사라지는 수십만 마리 이상의 바다 새와 동물의 씁쓸한 현실은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든다.
모비딕을 쫓는 에이허브 선장처럼 거대한 바다로 모험을 떠난 두 남자는 과연 그린란드상어를 잡을 수 있을까?
책 속으로
바다는 점점 더 세게 나를 끌어당겼다. 어렸을 때 신기해하고 감탄하며 호기심을 가졌던 많은 것이 청소년기에 이르면 대개 그 매력을 잃고 만다. 그러나 나에게 바다는 점점 더 크고 깊고 환상적인 대상이 되었다. 어쩌면 바다에서 생을 마감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부터 여러 세대를 건너뛰어 그런 갈망이 내게 유전된 것일지 모른다. 후고가 계획한 일에는 나를 확 잡아끄는 어떤 매력이 있었다. 당시에는 몰랐고 어쩌면 지금도 확실히 알 수 없는, 기껏해야 시야의 끄트머리에서 깜빡거리며 어둠을 찢는 등대의 회전하는 빛만큼만 알 수 있는 매력. 나는 그때 할 일이 아주 많았지만 주저 없이 대답했다.
“좋아, 바다로 나가 그린란드상어를 잡자.”
_p.25~26 중에서
우리는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거울처럼 맑은 물 위에 있다. 어쩌다 한 번씩 이렇게 바람 한 점 없는 상태를 로포텐 사람들은 ‘초월적 고요’라고 부른다. 우리가 떠 있는 바다의 깊이는 500미터다. 하얀 물 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해초 사이에 바다연어, 어패류, 대구, 명태 그 외 수많은 어종이, 특히 알에서 깬 어린 물고기들이 산다는 걸 우리는 안다. 해초 숲 밑으로 150미터, 200미터까지 더 내려가면 그곳의 물이 모든 빛을 삼켜버린다. 물이 얼마나 맑고 깨끗하든 상관없이. 수명을 다하기 직전의 낡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빛을 닮은 흐릿한 광채만이 멀리서 감지된다. 약 500미터 깊이에서는 완전히 깜깜하다. 광합성조차 불가능해 식물은 살 수가 없다. 바로 그곳에 그린란드상어가 산다.
_p.51~52 중에서
몇백 미터 앞까지 다가갔을 때, 후고는 그것도 아니란 걸 알아차렸다. 참거두고래라면 마땅히 있어야 할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았다. 또한 떼가 아니라 거대한 한 마리였다. 나는 아주 잠깐 속으로 생각했다. 혹시 잠수함이 아닐까, 하고. 후고는 긴장한 듯 보였다. 그는 다양한 고래 종류를 소개하는 머릿속 카탈로그를 열심히 뒤졌고 그러는 동안 시선은 고정되고 입이 살짝 벌어졌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을 때 후고가 큰 소리로 외쳤다. “향유고래!”
우리 앞에 보이는 것은 이빨이 있는 고래 중에서 가장 큰 고래의 등이었다. 우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가자 향유고래는 몸을 잔뜩 웅크렸다. 30미터쯤 떨어졌을 때 고래는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뿜어내고 머리부터 잠수했다. 꼬리지느러미와 엉덩이가 수직으로 물 위로 솟았다가 바닷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_p.63 중에서
깊고 검은, 짭조름한 바다가 눈앞에서 부서졌다. 냉정하고 무심하게. 동정심 하나 없이. 바다는 혼자서도 잘 산다. 우리가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는다. 우리의 희망에도, 우리의 두려움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우리가 바다를 어떻게 평가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바다의 어둠에는 압도하는 힘이 있다.
_p.207 중에서
이곳 노르웨이에서도 우리는 바다를 괴롭힌다. (중략) 지구의 어떤 유기체도 산호초보다 오래 살지 못하는데, 뢰스트 섬 앞에 있는 산호초는 팔천오백 살은 족히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몇백 년 전 인간이 주장했던 지구의 나이보다 조금 더 많다. 산호초 숲에 생물들이 우글거린다. 아주 오래전부터 어부들은 이것을 알았다. 최대 5미터까지 클 수 있는 거대한 붉은색 혹은 분홍색의 이른바 ‘풍선껌산호초’ 숲에서 수많은 물고기와 바다동물들이 먹이와 피난처를 얻는다. 그러나 트롤어선이 쇠사슬이 박힌 트롤망으로 바다 밑바닥을 훑으면 산호초 숲은 순식간에 파괴된다. 산호초 숲은 만선을 보장하지만 그게 마지막이다.
_p.262 중에서
한참을 바다 밑바닥에 누워 있은 후 나는 해초 숲의 작은 빛을 떠나 계속 헤엄쳤다. 마침내 나는 바다의 눈으로 세계를 보았다. 브라운크랩이 바위 틈새에 끼어 집게를 위로 뻗었다. 나는 그것을 틈새에서 꺼내 다시 제자리에 놓아주고 계속 헤엄쳤다. 까나리 같은 작은 물고기 떼가 모래를 파고들었다. 불가사리들이 조심스럽게 작은 암석 표면을 수색했다. 작은 물고기들과 결코 서식지를 떠나지 않을 위장한 생물들이 해초 숲에 우글거렸다. 잠수복을 입었는데도 물이 느껴졌다. 비단처럼 부드러웠다. 나는 조류가 약한 곳에서 헤엄치며 휘청대는 해초 사이로 들어갔다. 태초의 무중력 상태, 바다의 흐름에서 나는 물이 된다. 바닷물 한 방울이 된다.
_p.313 중에서
모르텐 스트뢰크스네스 지음 | 배명자 옮김 | 북라이프 |344쪽 | 1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