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설보다 이야기의 변용과 해석에 관심을 가진 것도 결국 '삼국지'가 가지는 욕망의 배치 때문이다. 중국에서 만들어져 한국과 일본에 전래되어 수용되면서 삼국의 이야기는 자국의 정치ㆍ문화적 상황에 따라 변하고, 새롭게 이해되었다. 여기에는 시대마다 다른 욕망들이 뒤엉켜 있었고, 나는 이러한 욕망을 관찰하는 것이 소설을 읽는 것보다 재미있었다. …… 오랜 시간 그 모습을 바꾸면서 한중일 문화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는 '삼국지'를 둘러싼 주변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흥미에서 집필한 것으로 중국을 만들고, 일본을 사로잡고, 조선을 뒤흔든 책 이야기이다.
― 본문 10∼11쪽, 〈지은이의 말〉에서
진수의 '삼국지'부터 '삼국지' 최종 개정본인 '모종강평본'에 이르기까지 '삼국지'가 만들어진 과정을 통해 중국의 역사와 이를 둘러싼 문화의 흐름에 대해 기록했다. '삼국지'는 어느 한 개인의 창작이 아니라 역사서와 수많은 서적들 그리고 예인들의 입에 오르던 이야기 대본 및 거리의 이야기 등이 모여 만들어진 집단적 저작이다. 이처럼 민간에 유전되던 삼국의 이야기는 대부분 촉한에 대한 동정적 일화들로 주희 이후 거론된 성리학적 정통론이 결합되어 소설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면서 중국을 만든다. 게다가 오랜 기간 동안 북방 오랑캐의 남침에 괴로움을 겪었던 사람들은 이 소설이 가지는 정통론을 통해 민족의식까지 고취했다.
'삼국지' 수용 과정에서 삽입된 일본의 역사 정통론과 무사도 그리고 일본풍으로 변한 '삼국지'가 어떻게 전시 체제하에서 전쟁에 동원되었는지에 대해 서술했다. 에도 시대 초기에 유입되어 역사서로 분류된 '삼국지'는 일본의 남북조 시대의 흥망성쇠를 그린 군기 소설인 '다이헤이키太平記'의 유행과 함께 일본어로 번역되었고, 여기에 일본풍의 삽화가 삽입되면서 일본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삼국의 이야기가 일본 전통 인형극인 조루리로 만들어지면서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무사적 충의가 강조된다. 이후 중일전쟁 시기 신문에 연재된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는 가독성과 재미를 높이는 한편 전 시대부터 이어져 오던 충의를 공고히 해 자신들의 침략 전쟁을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했다.
조선에서는 유입 초기 유자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유행하게 된 이유와 한글로 번역되어 유통되면서 만들어진 우리만의 독특한 '삼국지'그리고 이후 이 소설이 어떻게 식민지 조선인에게 희망을 주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선조 대에 유입된 이 소설은 괴탄하고 잡스러운 책이라는 비난과 함께 성리학적 정통론과 역사를 배울 수 있다는 긍정적 시각이 맞물리면서 유행한다. 임란 이후 세워진 관제묘와 호란 이후 대두된 대청복수론이 '삼국지'확산에 기폭제가 되어 왕실은 물론 민가의 부녀자들까지 베껴 쓰고 낭독하고 빌려 읽는 등 조선을 뒤흔든다. 한글로 번역된 '삼국지'는 상업적으로 유통되면서 축약과 개작을 거쳐 독특한 우리만의 소설로 만들어졌고, 일제강점기 신문에 연재된 한용운의 '삼국지'는 영웅을 갈망하는 식민지 조선인을 위안해주는 동시에 항일 민족의식도 고취해주었다,
이은봉 지음 | 천년의상상 | 336쪽 |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