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iN] "스마트 줄자요? 아이디어 고갈된 대기업에서는 불가능하죠"

스마트 줄자 '베이글'로 135만달러 펀딩에 성공한 베이글랩스 박수홍 대표

[스타트업iN]은 벤처 정신으로 똘똘 뭉친 혁신과 기술, 아이디어를 가진 희망 스타트업과 당찬 모험가들을 찾아가는 코너입니다. [편집자 주]

(사진=베이글랩스)
'스마트 줄자'를 만들어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화제가 된 스타트업 베이글랩스(Bagel-Labs)의 박수홍 대표를 만나기 위해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를 찾았다.

크라우드 펀딩 한달 여 만에 무려 135만달러(약 15억원) 모금에 성공한 스타트업 베이글랩스의 좁은 사무실에 들어서자 빼곡한 책상과 의자, 벽 곳곳에 붙여놓은 스마트 줄자 스토리보드, 일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여느 스타트업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스마트 줄자' 대박 행진에 몇 명 안 되는 직원들이 눈코 뜰 사이 없이 바빠져 대부분 자리를 비운가운데 박 대표도 바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은 노컷뉴스 인터뷰 외에도 국내 모 대기업 관계자와의 미팅과 모 국회의원의 방문일정이 잡혀 있었다. 26일에는 미래부와 교육부, 국방부, 중소기업청이 공동으로 개최한 창업경진대회 '도전! K-스타트업 2016'에서 대상을 수상해 대통령상과 상금 2억원을 거머쥐었다.

손발이 부족할 정도로 바빠진 베이글랩스 박수홍 대표를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만났다.


'스마트 줄자' 베이글을 만든 베이글랩스 박수홍(32) 대표. 박 대표는 민사고를 졸업하고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기계공학과 응용수학을 전공한뒤 영국 캠브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재원이다. 미국 등 현지상황에 대한 이해도가 큰 것이 장점이다. 삼성코닝정밀소재에서 4년간 근무한뒤 창업에 뛰어들었다.
▶스마트 줄자 ‘베이글’의 성공적인 데뷔를 축하한다. 먼저 베이글랩스에 대해 소개해 달라.

= 베이글랩스는 기존 기계적으로 측정하고 종이에 쓰고 다시 잊혀져가는 것을 디지털화 하는 작업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사물의 길이를 기반으로 인터넷과 연결해 데이터화 하는, 혁신적인 길이 측정 인더스트리 커머스(Industry Commerce)를 꿈꾸는 회사입니다.

직원은 대표이자 엔지니어인 저를 포함한 엔지니어 2명, 디자이너 1명, 전략기획 1명, 마케팅 1명 등 모두 5명입니다. 처음에는 4년 정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015년 7월부터 아이템 개발에 착수해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아 1년 정도 알고 지내던 디자이너 1명을 영입해 창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때만 해도 회사 이름도 없이 ‘스마트 줄자 팀’이었죠. 이후에 초기 투자금으로 엔지니어를 영입했고, 전략기획과 영업담당은 다른 회사를 다니던 고교 후배들을 만나 회사의 큰 비전을 설명하고 설득한 끝에 영입할 수 있었습니다.

스마트 줄자 아이템으로 정부지원 프로그램에 지원해 상을 두 번 받았고 올해 1월 본격 사업을 위해 베이글랩스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초창기에는 SBA(서울산업진흥원)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가 글로벌 진출을 목표로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스타트업 지원 전문기관인 ‘K-ICT 본투글로벌센터’ 프로그램에 지원하면서 여기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로 입주하게 됐습니다.


▶크라우드 펀딩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135만달러를 펀딩 받았다. 해외에서도 흔치 않은 결과라며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는데, 크라우드 펀딩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 사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얻는 것이 많다. 단순하게 보면 첫 번째, 유통시장은 제품을 출시하면 3~6개월 뒤에 돈이 들어옵니다. 제조산업 특성상 기반이 없는 스타트업 입장에서 양산 시스템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펀딩은 선금을 즉시 받을 수 있어 스타트업에게는 매력적입니다. 두 번째는 스타트업은 홍보가 많이 되어야 하는데 자체 웹사이트나 아마존에 직접 제품을 내놓는 것으로는 효과가 약합니다. 이러한 킥스타터나 인디고고와 같은 글로벌 펀딩 사이트를 통해 언론매체나 바이럴 트래픽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죠.

세 번째는 이를 통해 사전에 고객의 피드백이나 시장의 반응을 통해 시장성을 검증해볼 수 있습니다. 좋은 제품이라고 생각하고 이 정도는 생산해야 한다고 해서 일단 5만대 찍어냈다가 시장성이 없으면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 리테일 시장에 나가면 어느 국가에서 어떤 소비자에게 팔렸는지 알 수 없지만,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를 통해서 즉시 확인할 수 있고, 인터널(internal) 메시지나 업데이트 상황, 각종 정보를 고객과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뛰어납니다. 그런 부분에서 강점이기 때문에 시장에 앞서 크라우드 펀딩에 먼저 내놓게 된 겁니다.


해외 산업전시회에 참가해 바이어들에게 베이글 제품을 설명하고 있는 박수홍 대표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하면서 바쁜 일정을 보낼 것 같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 현재 킥스타터를 통해 주문받은 물량을 약속대로 좋은 품질로 양산해 안정적으로 배송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푭니다. 그리고 2017년 CES에 내놓을 새로운 스마트 줄자를 계획 중에 있습니다. 자세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전문가용 버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스타트업의 고민은 역시 자금이다. 초기 투자는 얼마나 받았나? 실리콘밸리 등 해외투자도 받을 수 있을텐데?


초기 중소기업청 팁스(TIPS·민간주도형 기술창업지원사업)를 통해 운영사인 퓨처플레이로부터 1억원을 투자받았습니다. 투자금을 통해 추가 인력을 확보했고, 다양한 제품에 대응하기 위한 R&D를 진행 했습니다. 현재는 추가 투자를 받기 위해 여러가지 고민 중이지만, 주문받은 제품을 양산해 선적하는데 최우선 집중하고 있습니다.


▶해외 기업이나 바이어들의 관심을 뜨거울 것 같다. 해외로부터의 투자 제의는 없나?

= 현재 미국과 유럽 등 다양한 대륙의 디스트리뷰터(distributor)로부터 200여개의 제안을 받은 상태입니다. 대부분 각 지역의 유통 네트워크나 주요 현지기업과 연결되어 있으니 함께 일해보자는 내용인데, 워낙 제안이 많은데다 현재 우리 상황에서는 일일이 이를 검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각 대륙별로 실사도 벌여야 하고 직접 만나 설명을 들어야 해서 우선 선별작업 중입니다.


▶박수홍 대표의 이력이 궁금하다. 어떻게 창업을 시작하게 됐나?

= 1985년생으로 우리나이로 올해 32살입니다. 민족사관고등학교를 나왔고 대학은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기계공학과 응용수학을 전공했습니다. 아무래도 전공이 스마트 줄자를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27살에 영국 캠브리지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땄고, 이후 한국에 들어와 병역특례(병역대체제도 산업기능요원)로 삼성코닝정밀소재에서 4년간 직장생활을 했는데요, 병특이 끝나고 한달 후에 회사를 그만 뒀습니다. 지금 나이에,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창업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최근 창조경제라고 해서 창업 국가지원 프로그램이 상당히 많습니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스타트업 열풍이 조금 가라앉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하루빨리 흐름을 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사를 다닐 때 틈틈이 만든 컨셉트 아이디어로 특허를 취득하고 바로 창업에 뛰어들었죠. 초반에는 자금이 없어 퇴직금 받은 것을 많이 소진했는데,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경제적인 도움이 됐습니다. 현재 스마트 줄자와 시스템 애플리케이션에 관한 특허를 2개 보유하고 있고, 4개는 출원 중에 있습니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135만달러 모금에 성공한 스마트 줄자 베이글. 2017 CES에서 훨씬 진화된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역시 미국 등 해외시장에 밝은 엔지니어 출신이라 다른 것 같다. 특허까지 보유하고 있다니 일반 스타트업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부분들까지 아주 빠르게, 좋은 제품을 준비한 것 같다. 아무래도 한국 기업문화 특성상 엔지니어가 회사의 리더 역할까지 하기 어렵지 않나?

= 대기업은 아무래도 아이디어가 고갈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리더는 톱다운(top-down) 방식이어야 하는데, 바텀업(bottom-up)인 경우가 많습니다. 스타트업은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의사결정이 빠르고 아이디어 실행능력이 뛰어납니다. 얼마 전에 공구를 만드는 유명 글로벌 대기업 관계자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너희들 다음 로그(log)가 뭐냐? 뭐 할거냐?’고 묻길래 ‘우리가 그것을 왜 오픈하냐?’고 되물었죠. ‘우리는 2017년 CES에 새로운 라인업을 내놓을 것이다. 3개월이면 충분히 프로토타입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더니, 이 관계자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더라고요. 그것이 베이글랩스의 장점입니다.

하지만 제가 대표이자 엔지니어다보니 고민이 많이 됩니다. 디자이너와 늘 의견조율이 문제거든요. 상품은 디자인적인 관점에서 매우 핵심적인 디자인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또 엔지니어는 제품 설계에 들어가는 기능이 이것이 꼭 필요하다 주장하는 경우가 분명 있거든요. 문제는 엔지니어가 디자이너의 영역을 침범하는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제품이라는 것이 가격-디자인-기술이 항상 붙어 다니기 때문에 고민이 됩니다. 대표는 모더레이터(moderater)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엔지니어 겸 대표인 저에게 필요한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내놓은 스마트 줄자 ‘베이글’을 보면,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는데, 가격과 줄자의 측정거리가 다소 짧은 것 같다. 언제 일반에 출시되나?

= 현재 버전은 5m까지 측정이 가능합니다. 초기 시장 진입을 위해서는 너무 비싼 가격은 부담이 되기 때문에 부품 라이브러리를 조금 더 적게, 저렴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현재 베이글에는 초음파센서가 달려있습니다. 가격이 저렴한 대신 정확도와 거리에서 제한 있습니다. 엔지니어 입장에서는 정확도와 거리측정이 뛰어난 레이저센서를 탑재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가격이 너무 고가여서 제품의 단가가 상승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소비자의 눈높이가 중요하니까요. 현재 베이글의 리테일(일반유통) 가격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10만원대가 되지 않을까 예상하는데요, 내년 상반기말쯤 일반에 출시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출시된다면 먼저 미국에 출시될 것 같습니다. 2017 CES에서 전문가용이라고 할 수 있는 향상된 기능의 스마트 줄자 버전을 내놓는 등 다양한 라인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베이글랩스는 철저하게 미국 등 해외시장을 목표로 준비한 것처럼 보인다. 미국시장에 중심을 둔 이유가 있나? 아무래도 미국과 영국에서 공부하고 경험했던 것이 영향을 끼쳤나?

= 우선 인더스트리(industry) 규모는 미국과 국내의 경제규모에서 상당한 차이가 납니다. 스마트 줄자에 대한 미국의 호응도가 더 높은 것도 있는데, 미국의 인건비는 비싸서 직접 만들고 정비하는 DIY(Do It Yourself) 문화가 일반적으로 정착됐습니다. 스마트 줄자가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매력적인 시장 요소죠. 베이글랩스는 미국의 전시회와 킥스타터에 런칭을 하면서 이국적인 요소는 철저히 배제했습니다. 현지에서 베이글랩스가 한국 스타트업이라던가 다른 이국적인 느낌이 들지 않도록 했어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포장할 때는 그들의 것으로 나가야합니다.

저희같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신생 한국 스타트업이 현지 시장에 좋은 제품을 내놓아도, 아무리 좋은 기술에 관대한 미국이라 해도 미국 이외의 외국 업체라고 하면 일단 현지 시장에서는 쉽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저희 같은 바다 건너에 있는 신생 스타트업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인맥과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정보를 파악합니다. 미국에서는 사람을 보고 신뢰를 평가하는데, 한국에서 좋은 대학을 나왔어도 그들의 시각에서는 레퍼런스가 약합니다. 미국사람이 한국사람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방법이 별로 없죠. 현지 투자자들이 대하는 방식은 한국과는 매우 다릅니다. 그들의 코드에 잘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대비해 미국법인을 만들었고 그들의 이질적인 시각이 배제되도록 했죠. 물론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대학교 교수님과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 소개받은 자문가, 또 현지 커뮤니티 활동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현지인의 감성적·행동적 정보를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요.


베이글랩스 박수홍 대표(오른쪽)와 직원들. 박 대표를 포함한 엔지니어 2명, 디자이너 1명, 기획전략 1명, 마케팅 1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공'이라고 단언하기는 이를 수 있지만, 제품에 대한 시장의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다른 의미의 '성공'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짧은 시간에 성공할 수 있었던 노하우가 있다면 말해 달라.

= 많은 스타트업이 시장조사에 많은 부분을 치중합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시장에 먼저 부딪혀보고 피드백을 받아 빠르게 적용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완벽만 강조하다가 시장에서 외면당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몇 개월 프로젝트를 시도해보다 포기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발생한 문제를 두들기고 그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개선하는 노력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베이글랩스도 최종 제품을 내놓기까지 몇 십개의 버전이 나왔고, 최상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 노력을 했습니다. 당장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밀려나선 안 됩니다.

각종 전시회에 제품을 출품하면서 고객과 바이어들의 관심사항을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시장조사는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아무래도 제가 엔지니어 백그라운드가 있다는 점에서 빠르게 실행할 수 있었던 점도 있지만, 실리콘밸리에서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는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의 사고와 방식에 대한 이해도 필요합니다. 미국이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는 다양성이 있어도 현지화에 필요한 것을 거기서 살아보지 않고는 알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거기에 맞는 전문가를 영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베이글랩스의 미래 계획에 대해 말해달라

= 베이글랩스의 궁극적인 목표는 길이 정보를 인터넷과 연결해 데이터화 하는 것입니다. 길이 정보의 빅데이터 에코시스템(생태계)를 만드는 것이죠. 일례로 데이터 정보에 태그 값을 입력하면 2D 평면도를 쉽게 그릴 수 있습니다. 실제 치수를 이용해 VR(가상현실)로 구성이 가능합니다. 신체 치수로는 렌더링 정보화해 패션정보로 활용할 수 있고요. 기계적인 측정 뿐 아니라 애플이케이션을 이용해 다양한 길이 정보가 모이고 다양한 산업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혁신을 불러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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