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백혈병 산재 엇갈린 판결…왜?

공정별 유해물질 여부가 판단 갈라

(사진=자료사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했다가 급성 백혈병과 악성 림프종이 발병해 숨지거나 투병 중인 근로자들 일부가 끝내 산업재해를 인정받지 못했다.

함께 소송을 제기했던 고 황유미, 이숙영씨는 원심에서 급성 골수성 백혈병 발병 원인이 작업환경의 유해성 등 업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돼 판결이 확정됐지만, 나머지 근로자들은 상고심에서도 증거가 부족하다고 법원이 판단하면서다.

각 공정마다 급성 백혈병이나 악성 림프종을 유발할 만한 유해물질이 있었는지가 법원의 판단을 가른 기준이됐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30일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했던 고 황민웅씨의 아내와 투병중인 김은경, 송창호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등을 지급하지 않기로 한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에서 원고 등이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의뢰한 근로자들에 대한 개별 역학조사와 산보연의 전체 반도체 사업장 근로자에 대한 2008년도 역학조사, 삼성전자 등이 고용노동부 권고로 의뢰한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위험성 평가 등을 근거로 한 원심 판결을 받아들인 것이다.


먼저 1997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황씨는 기흥사업장에서 회로를 여러 층 쌓기 위해 실리콘 원판인 웨이퍼를 평탄하게 만드는 공정(평탄화)과 뒷면을 연마하는 공정(백랩)에서 근무하다 2004년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이듬해 숨졌다.

대법원은 “황씨가 평탄화와 백랩 공정에서 취급한 연마제에는 암을 일으킨다고 할 수 없는 비결정질 실리카 정도가 포함돼 있을 뿐이고, 일부 공정에서 아르신(삼수소화비소)이 검출됐지만 그 양이 극히 적다”며 “노출 정도가 백혈병을 유발하거나 진행을 촉진할 정도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김씨는 1991년 입사해 절단‧절곡 공정에서 근무하다 96년 퇴사한 뒤 2005년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송씨는 1993년 입사해 도급공정에서 근무하다 5년 뒤 퇴사했고 2008년 악성 림프종 진단을 받았다.

대법원은 이들에 대해서도 “절단‧절곡 공정에서 취급한 화학물질들이 급성 골수성 백혈병과 연관성이 밝혀진 게 없다”거나 “도금 공정에서 다룬 납, 주석, 황산 등이 악성 림프종을 유발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증거부족으로 판단했다.

이들이 각 공정에서 다룬 화학물질을 질병 원인과 직접적으로 연관 짓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상당한 인과관계가 반드시 직접증거에 의해 증명돼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해당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취업 당시 건강상태, 기존 질병의 유무, 종사한 업무의 성질과 근무환경 등 간접사실에 의해 업무와 발병 사이의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정도로는 증명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삼성전자 반도체 근로자의 백혈병 발병과 관련해 내린 첫 판결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반도체 사업장 근로자들이 담당한 공정과 구체적인 업무 내용에 따라 유해물질에 노출됐는지 여부와 노출 정도를 개별적으로 판단하고, 근로자들의 취업 당시 건강상태와 기존 질병 유무 등을 종합적으로 봐 업무와 발병의 인과관계를 다르게 판단한 원심 판결을 확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황유미, 이숙영씨는 원심에서 급성 골수성 백혈병 발병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 뒤 근로복지공단이 상고를 하지 않아 2014년 9월 판결이 확정됐다.

당시 서울고법 행정9부 판결에 따르면, 두 사람은 습식 공정의 세척작업 중 웨이퍼에 묻어있던 감광제 속 벤젠과 세척에 사용된 불산, 감광제에 포함된 화합물이 반응해 생기는 산화에틸렌 등에 노출됐다.

확산 공정에서 사용되거나 발생하는 비소, 포스핀, 옥시염화인, 황산 등과 이전의 감광 공정에서 제대로 제거되지 않은 감광제 속 벤젠도 발병 원인과 연관이 있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법원은 이와 함께 외부 공기를 재순환 공기와 혼합해 작업장에 공급하는 환기시스템상 다른 공정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도 있었고, 방사선 노출도 있었다고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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