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회장의 시신은 이날 오전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북한강변 산책로에서 운동을 하던 마을 주민에 의해 발견됐다.
옷 안에서 이 부회장의 신분증이 발견됐고 인근에 세워진 에쿠우스 차량 안에서는 유서가 나왔다.
그는 은퇴 이후를 염두에 두고 주말마다 이 지역을 찾아 휴식과 충전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은 전날 정상적으로 업무를 본 뒤 퇴근했고 오후 8시30분쯤 자신의 아파트에 도착해 경비실 직원과 만나 "입원했던 아내가 곧 병원에서 퇴원할 것 같다"며 웃으며 농담 섞인 대화를 나눴다.
이어 오후 9시∼10시쯤 점퍼에 반바지 차림으로 "운동하러 간다"며 외출한 뒤 가족과 연락이 끊겼다.
이 부회장은 가족과 롯데 임직원 앞으로 남긴 A4용지 4장(제목 1장) 분량의 유서에서 "롯데 비자금은 없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또 가족에게 "그동안 앓고 있던 지병을 간병하느라 고생 많았다. 힘들었을 텐데 먼저 가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어 롯데 임직원들에게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먼저 가서 미안하다"고 말한 뒤 "신동빈 회장은 훌륭한 사람이다, 신 회장을 믿는다"며 끝까지 신 회장에 대한 충성심을 보였다.
이 부회장은 오너인 신동빈 회장에 이은 롯데그룹 2인자이자 대를 이은 최측근 가신이다.
롯데그룹의 컨트롤타워인 정책본부의 수장인 정책본부장으로서 황각규 운영실장(사장), 소진세 대외협력단장(사장)과 함께 정책본부 3인방으로 그룹 경영 전반을 총괄해왔다.
1947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경북대사대부고와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를 졸업한 뒤 1973년 롯데호텔에 입사해 43년간 롯데그룹에 몸담아온 골수 롯데맨이다.
1987년 그룹 주력계열사인 롯데쇼핑으로 자리를 옮겨 1997년에는 대표이사를 맡았고 이후 20년간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하며 국내 500대 기업 중 최장수 CEO에 오르기도 했다.
2011년 오너 일가가 아닌 인사로는 처음으로 롯데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의 복심으로 보필해오다 2007년 신 총괄회장의 아들 신동빈 회장에게 정책본부장을 물려받은 뒤 형제간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신 회장을 지지하며 신 회장의 오른팔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롯데그룹은 비보를 접하고 큰 충격에 빠졌다.
롯데그룹은 이날 아침 이 부회장의 자살 소식을 보도로 접한 뒤 양평경찰서로 임직원을 급파해 사실 관계 파악에 나섰다.
이날 오전 이 부회장의 검찰 출두를 앞두고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나가있던 롯데 정첵본부 관계자들은 급히 양평으로 향했다.
한 관계자는 "전혀 조짐이 없었다. 너무나 충격적"이라고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또다른 관계자도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일이…"라며 충격을 떨쳐내지 못했다.
롯데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롯데의 산 역사이자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내부 신망이 높았다"면서 "검찰 수사에 대한 심리적 압박이 컸던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부회장은 철저하고도 합리적인 경영 스타일과 직원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로 신뢰와 존경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빈 회장은 이날 출근 직후 보고를 받고 거의 말을 잇지 못한 채 비통해한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그룹은 입장자료를 통해 "평생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롯데의 기틀을 마련하신 이인원 부회장이 고인이 되셨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운 심정"이라며 "빈소 마련 등 장례 절차에 대해서는 준비가 되는대로 알려드리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