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집권당 대표의 줏대 없는 딴청

"우병우 수석과 관련한 논의는 없었나요?"-기자
(기자가 아닌 다른 사람을 바라보며) "반갑습니다"-이정현 대표
"우 수석 거취 문제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죠?"-기자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지 않자) "사람이 많이 타 무거워서 그런가?"-이정현 대표

(사진=청와대 제공)
이쯤 되면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언행은 줏대 없는 눈치보기 딴청이다.

이정현 대표는 22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관련한 기자들의 집요한 질문 공세에 동문서답으로 일관했다.

적어도 우병우 수석 관련 의혹과 거취 문제에 있어 이 대표는 집권당의 대표다운 소신이나 줏대를 보여주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줏대'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의 처지나 생각을 꿋꿋이 지키고 내세우는 기질이나 기풍이다.

이른바 '우병우 블랙홀'로 국정이 마비되다시피한 상황에서 집권당 대표마저 대통령 심기를 거스르는 얘기를 애써 회피한다면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각에서는 이 대표가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침묵은 아니다. 침묵은 권력이나 불의에 맞선 항거의 또 다른 표현 방식이자, 어떠한 말보다 더 강력한 의지의 표출 형태인 것이다.

이정현 대표는 새누리당 대의원과 책임당원의 투표, 여기에 일반 국민여론조사 결과를 합쳐 당선됐다.


따라서 이 대표는 새누리당 당원은 차치하고서라도 자신을 지지했던 국민을 외면하거나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국민들의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를 가감없이 대통령에게 전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진박(眞朴·진짜 친박)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정종섭 의원은 "청와대 수석은 대통령의 팔과 같고, 우병우 수석의 사퇴는 몸통(대통령)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 정무·홍보수석을 지낸 이정현 대표도 정 의원의 말에 동의하는지 묻고 싶다. 또 자신이 표방한 '섬기는 리더십'의 대상이 대통령인지 국민인지도 묻고 싶다.

이정현 대표가 핵심 현안에 대해 딴청을 부리며 무소신으로 일관한다면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말처럼 이 대표는 대통령의 비서이고, 새누리당은 '박근혜 총재 체제'가 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우병우 파문'이 한 달 넘게 계속되는 동안 서울의 잠 못드는 열대야 현상도 30일째를 기록하면서 국민들에게 이중 삼중의 피로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더 큰 걱정은 폭염은 이번 주말쯤이면 수그러든다는데 우병우 파문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청와대가 우 수석과 관련한 의혹 제기를 '부패 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의 식물정부 만들기'로 규정한 데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야권의 우병우 수석 해임 공세에 맞서 이철성 경찰청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한다는 방침이기 때문이다.

이정현 대표가 할 말을 하지 못하면서 청와대가 새누리당 대신에 야3당과 힘겨루기에 나선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검찰은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우 수석과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고소, 고발 건에 대한 동시 수사에 착수했다.

다만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핵심 실세' 우병우 수석이 직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진행되는 검찰 수사인터라 얼마나 공정하게 이뤄질 지는 의문이다. 당장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 57명은 오는 25일 청와대 앞에서 우 수석 해임 촉구 결의대회를 갖기로 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지난 2014년 7·30 재보선에서 이정현 의원이 당선되자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이 의원을 업어주면서 국민을 업어드리는 자세로 일하자고 강조했었다.

과연 지금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국민을 업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국민의 마음을 엎어 버린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뒤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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