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는 20일(현지 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골프코스(파71 · 6245야드)에서 펼쳐진 '2016 리우올림픽' 골프 여자부 마지막 4라운드에서 버디 7개, 보기 2개로 5타를 줄였다. 최종 합계 16언더파로 정상에 올랐다.
전날까지 11언더파 2타 차 1위였던 박인비의 기세는 최종 라운드에서도 이어졌다. 전반 홀에서만 보기 없이 버디만 4개를 잡아냈다. 2위 펑산산(중국)에 5타 차까지 앞섰다. 3라운드까지 공동 2위였던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는 제자리걸음으로 3위로 내려섰다.
살짝 위기도 있었다. 10번홀에서 박인비가 보기를 범하면서 11번홀까지 버디를 잡아낸 펑산산에 3타 차로 간격이 좁혀졌다. 그러나 13번홀에서 8m 장거리 버디를 잡아내 4타 차로 벌리면서 쐐기를 박았다.
박인비는 14번홀 보기와 15번홀 버디를 맞바꾸면서 13번홀 보기를 범한 펑산산, 공동 2위로 다시 추격해온 리디아 고와 격차를 더 벌렸다. 17번홀 버디는 사실상 금메달을 확정한 위닝샷이었다.
무려 116년 만에 올림픽에서 부활한 여자 골프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00년 프랑스 파리 대회 이후 21세기 들어 첫 올림픽 챔피언의 영예를 누렸다.
리디아 고는 마지막 18번 홀에서 버디를 낚아 11언더파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10언더파를 기록한 펑산산은 동메달을 차지했다.
▲김샌 男 골프와 달리 女 골프 '스타워즈' 승리
사실상 진정한 의미의 올림픽 골프 금메달리스트다. 파리 대회와 남자 골프가 마지막으로 나섰던 1904년 세인트루이스 대회는 출전 국가가 각각 4개와 2개에 불과했다. 당시는 골프가 스포츠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터라 출전국이 많지 않았다. 말이 올림픽이지 골프는 사실상 '동네 운동회' 수준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은 다르다. 특히 남자부와 달리 여자 골프는 세계 최고수들의 진검승부가 펼쳐졌다. 1900년과 달리 진짜 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는 승부였다.
대회 우승을 차지한 저스틴 로즈(영국)는 금메달을 따내면서 세계 랭킹이 11위에서 9위로 올랐다. 정상급 선수들의 대결로 보기에는 살짝 아쉬웠다.
그러나 리우올림픽 골프 여자부 경기는 다르다. 세계 랭킹 1위 리디아 고를 비롯해 에리야 쭈타누깐(태국), 브룩 헨더슨(캐나다), 렉시 톰슨(미국)에 박인비까지 톱5 선수들이 총출동했다.
6위 김세영(23 · 미래에셋), 8위 전인지(22 · 하이트진로), 9위 양희영(27 · PNS창호) 등 태극낭자들까지 가세했다. 그야말로 여자 골프 '별들의 전쟁'이었다. 116년 만의 올림픽 챔피언이 되기 위한 이들의 열정은 남자와는 차원이 달랐다.
▲골프 역사상 최초 올림픽 제패한 그랜드슬래머
무엇보다 박인비는 골프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을 제패한 그랜드슬래머로 남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남녀 골프를 통틀어 메이저대회 4개를 제패하는 그랜드슬램과 올림픽까지 우승을 거둔 선수는 박인비가 유일하다.
박인비는 이미 아시아인 최초 미국프로골프투어(LPGA) 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업적을 남겼다. 박인비는 지난해 8월 LPGA투어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2013년 크라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 US여자오픈까지 그랜드슬램의 위업을 달성했다. 역대 7번째였다.
이런 의미에서 박인비의 골든 슬램 달성은 하늘도 도운 위업인 셈이다. 116년 만의 올림픽 챔피언이 되기 위해 전 세계 최고의 골퍼들이 총출동한 이유다.
▲부상도 막지 못한 '여제의 등극'
여기에 박인비는 부상 후유증을 이겨내고 업적을 이뤄 더욱 값졌다. 당초 박인비는 올 시즌 허리와 왼 엄지 인대 부상 등으로 제대로 실전을 치르지 못했다. 2위였던 세계 랭킹도 5위까지 떨어졌다. 때문에 박인비가 올림픽을 포기할 것이라는 예상도 적잖았다.
그럼에도 박인비는 올림픽 출전을 선언했다. 오랫동안 품어온 꿈인 데다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일 생애 다시 못 올 수도 있는 기회였다. 박인비는 "올림픽 출전은 저의 오랜 꿈이자 목표"라면서 "국가를 대표하는 일인 만큼 부상 회복 경과를 두고 오랜기간 깊이 고민해온 끝에 출전을 결정했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박인비는 116년 만의 올림픽이라는 부담과 부상 후유증을 극복해냈다. 오히려 가장 큰 무대에서 엄청난 집중력으로 최고의 경기력을 펼치며 여제의 명성을 확인했다.
리디아 고가 최근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지만 116년 만의 올림픽 챔피언이 되기에는 살짝 부족했다. '여제' 박인비의 위엄이 더 커보이는 이유다. 무려 116년을 기다려온 '골프 여제의 즉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