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목회자는 공공신학자여야 하는가?

신간 '목회자란 무엇인가'

한 똑똑한 학생이 찾아와 장래에 관한 조언을 구했다. 조던(가명)은 신학을 더 공부할 것인지 교회에서 일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박사 과정에 입학할 정도로 성적이 좋은지 확신하지 못했다. “제발 내가 목회자가 될 만큼만 똑똑하다고는 말하지 마세요”라고 그는 부탁했다. 케빈은 그의 말에는 목회자가 고집스러운 2류 지식인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케빈은 의로운 분노를 추스르고 생각을 정리하느라 한참을 보낸 다음 이렇게 대답했다. “유감스럽지만 당신은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혜와 기쁨이 넘치는 열정이 필요합니다.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약간의 지능과 그것을 짜낼 능력만 있으면 됩니다. 안타깝게도 당신은 학자가 될 수 있을 뿐 목회자가 될 자격은 없는 것 같습니다. 목회는 학문보다 훨씬 더 어렵습니다.” _11쪽

신간 '목회자란 무엇인가'(원제: The Pastor as Public Theologian)의 첫머리에 실린 이 일화에서 보듯, 목회자의 성격과 정체성, 역할에 관한 오해가 퍼져 있다. 사회와 교회에서는 물론 신학생과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그러하다. 목회자란 무엇인가? 교회 지도자? 교인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자? 이런저런 교회의 일에 헌신하게 하는 동기부여자? 실제로 목회자는 이와 같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 밖에도 조직 관리자, 행정가, 감독, 영감을 불어넣는 사람, 끊임없이 터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 최근에는 지칠 줄 모르는 혁신가 혹은 창의적인 공상가로서 일하도록 요구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에 따르면 목회자가 맡은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하나님 앞에서 백성을 중재하는 신학자가 되는 것이다. 교회에는 상황에 맞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써 회중이 일과 생의 마지막에 관한 결정, 정치 참여, 오락의 선택 등 삶의 모든 양상에 관해 신학적으로 사고하도록 도울 수 있는 목회자들이 필요하다. 성서에 비추어 세상을 읽어내고 회중을 지혜와 샬롬, 인간 번영의 길로 이끌 수 있는 목회자들이 필요하다.


이 책은 성서가 그려내는 목회자상과 교회사의 주요 인물, 기독교 신학에 기초하여, 목회자들에게 그들의 회중과 공동체 안에서 공공신학자의 역할을 하라고 촉구한다. 목회자가 누구이며 무슨 일을 하는지를 이해하는 관점에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할 뿐만 아니라 긍정적 대안을 제시한다. 목회자는 본래 신학자였고 교회사의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러했다. 나아가 “교회사에서 가장 탁월한 신학자들 대부분은 교구의 목회자들이었다.” 때문에 목회자를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유기적 지식인’인 ‘목회자-신학자’로 이해하고 그 상을 그려내는 것은, 새로운 무엇을 제안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잃어버린 전망을 되찾는 일이다.

먼저 1장에서는 성서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이끄는 역할을 맡았던 ‘제사장’, ‘예언자’, ‘왕’이 어떻게 묘사되는지를 검토하고,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신학적 특성이 오늘날의 목회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본다. 2장에서는 목회직의 신학적 성격의 본보기가 되거나 이에 관해 글을 쓴 인물에 특별히 초점을 맞추어서, 교회사 안에 있는 풍성한 목회자-신학자 전통을 살펴본다. 3장에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음’에 대해 일관성 있으며 문화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하고자 하는 시도인 조직신학에 초점을 맞추며, 실체(reality)와 이해,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건덕(建德)의 사역이라는 신학의 3중적 사역을 제시한다. 4장에서는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 일을 담당하는 장인에 비유하여 목회직을 설명하는데, 특히 설교와 교리문답, 주의 만찬 집례, 사람들을 조직하여 복음의 진리를 드러내는 사랑의 사역을 행하게 하는 일 등 목회자-신학자의 실천적 사역에 초점을 맞춘다.

목회와 신학이 분리된 현실에 우려를 표하며 두 영역을 통합한 존재인 ‘목회자-신학자’라는 정체성을 강조하는 저자들로서는 당연하게도, 신학의 목적, 신학교의 존재 이유를 짚어보는 데도 한 절을 할애하는데, 이는 신학교의 운영이나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맡은 이들뿐 아니라, 신학교에 재학 중이거나 신학교 진학을 계획하는 이들 역시 귀 기울여야 할 내용이다(3장 마지막 절). 또한 이 책의 결론에서 밴후저는 책에서 논의한 내용을 ‘공공신학자로서의 목회자에 관한 55개 논제’로 요약해내는데, 이는 오늘날 교회에 절실히 필요한 ‘목회자-신학자’의 성격을 정리하고 그 사명을 일목요연하게 담아낸 비전 선언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이것은 자신의 소명적 장자권을 ‘경영기법, 전략계획, 리더십 강좌, 심리요법 따위의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린’ 목회자를 향한 준엄한 비판이기도 하다.

각 장의 말미에 수록된 ‘목회적 관점’에는 현직 목회자들의 성찰과 조언이 담겨 있다. 국내 독자에게도 잘 알려진 코닐리어스 플랜팅가, 케빈 드영을 비롯한 이들 기고자들은 각 장에서 다루어진 내용들을 목회 현장에서 적용할 때 고려할 점들을 일러주고, 자신들이 직접 겪은 문제들에 관한 경험담을 들려준다. 여기에는 목회를 위해 공부가 필요하다는 점을 교인들에게 어떻게 납득시킬 것인가, 공부와 목회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을 것인가 하는 점부터, 설교자에게 소설을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점, 기술, 죽음과 같은 주제에 대한 성찰, 논쟁적인 문제를 다루는 시험 사례로서 인간의 기원과 진화를 둘러싼 문제를 교회에서 다루어본 이야기와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이 책은 목회자가 ‘공공신학자’라고 주장한다. 공공신학은 ‘공적 광장 안에서 이루어지는 공적 광장을 위한 신학’, 다시 말해 특정한 신조나 신앙고백이 우위를 점하지 않는 열린 토론장에서 ‘폴리스’, 즉 공공의 관심사를 다루는 신학이라는 것이 표준적이고 통상적인 이해인데, 저자들은 이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공공신학을 이해하고 해석한다. 즉, ‘공공(public)’의 라틴어 어원(‘성인 주민'을 뜻하는 'pubes’와 ‘사람들’을 뜻하는 ‘populus')에 주목하면서 공공신학을 ’사람으로 이루어진 신학‘으로 규정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그분 안에서 사귐을 실천하는 곳은 어디나 ’교회‘라고 부르면서 공공신학의 초점을 ’그리스도가 기억되고 기념되고 탐구되고 전시되는 공적 공간‘인 하나님의 백성에 초점을 맞춘다. 목회자의 책무는 회중이 ’그들이 부르심을 받은 그런 존재가 되도록‘ 돕는 것이다(48쪽). 기존의 공공신학 논의에 아쉬움을 가졌던 목회자라면 이 책의 주장을 실마리 삼아 공공신학자로서 나름의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으로

일부 독자들은 우리의 전망이 너무 이상주의적이라고 반론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목회자들은 너무 바쁘거나 여러 한계 때문에 우리가 주장하는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우려를 이해한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시간이나 에너지, 타고난 지능이 아니라 전망과 우선순위라고 생각한다. 신학은 목회직에서 사치품이나 (자동차 가죽 시트처럼) 추가적인 선택사항이 아니라 (운전대처럼) 표준적인 필수요건이다. _58쪽

목회자-신학자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도록 도움으로써 인간 상황 자체를 다룬다. 목회자-신학자는 기분을 바꿔주는 약이 아니라 기분을 바꾸는 현실, 즉 하나님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게 하셨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도 부활할 수 있다는 복된 소식을 제공함으로써 영혼을 치유한다. _184쪽

목회자가 방어해야 할 진리는 하나님의 존재가 아니라 십자가의 지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았다”고 분명히 말한다(빌 1:16). 복음의 진리를 변호하기 위해 천재가 되거나 기적을 행해야 하는가? 서론에서 나는 제자들이 천재가 아니며 목회자도 천재가 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변호해야 하는 것은 이론이 아니라 지혜이며, 지혜는 실천된 지식이다. 우리는 이론적 증거가 아니라 실천해 보임으로써 지혜를 ‘증명’한다. _296쪽

케빈 밴후저 , 오언 스트래헌 지음/ 박세혁 옮김/ 포이에마/ 359쪽/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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