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kg급에서는 국내에 적수가 없었다. 182cm 장신에서 나오는 발차기로 전국체전에서 대학부-일반부를 거치며 2010년부터 3연패를 달성했다.
다만 73kg급은 올림픽 체급이 아니었다. 67kg 초과급으로 출전이 가능하지만, 한국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여자 67kg 초과급에 선수를 배정하지 않았다. 체격 조건에서 불리하기 때문. 대신 57kg급과 67kg급을 선택했다. 오혜리가 처음 올림픽 출전에 도전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오혜리가 나서는 67kg급에는 황경선이 버티고 있었다. 황경선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오혜리는 베이징 올림픽 최종 선발전에서 탈락해 황경선의 훈련 파트너 역할을 했다. 올림픽 꿈은 무산됐지만, 황경선의 금메달에 힘을 보탰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때는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선발전 2주를 남기고 다쳤다. 오혜리가 부상으로 탈락한 사이 황경선은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이처럼 오혜리는 훈련 파트너, 또는 2인자였다.
무엇보다 국제대회에서 이상하게 약했다. 오픈 대회를 제외하면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우승이 없었다. 2011년 경주 세계선수권 은메달(73kg급)이 최고 성적이었다. 아시안게임에도 나가본 적이 없었던 탓에 '국내용'이라는 꼬리표까지 따라다녔다.
오혜리는 2014년 춘천시청에 입단하면서 다시 검은 띠를 조여맸다. 오혜리는 "선수 생활을 여기서 끝낼 것이 아니니 않는가. 더 큰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세계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2015년 세계선수권에서 73kg급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그 해 월드그랑프리에서는 67kg급 정상에 올랐다. 이후 67kg급 올림픽 랭킹 4위로 당당히 2016년 리우 올림픽 출전권을 손에 넣었다.
오혜리는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목표는 무조건 1위"라면서 "한국 여자 태권도의 위력을 보여주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스물여덟,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처음 밟은 올림픽 무대.
오혜리는 시원한 발차기로 메달을 목에 걸었다. 오혜리는 20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아레나3에서 열린 태권도 여자 67kg급 결승에서 하비 니아레(프랑스)를 꺾고 세계 정상에 섰다.
훈련 파트너, 2인자, 국내용이라는 설움을 모두 털어낸 금메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