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계획된 구성이 아닌, 갑작스러운 교체와 결합. 메달 기대주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약 1년의 짧은 시간 기쁨과 슬픔이 교차한 밀고 당기기 끝에 소중한 결실을 맺었습니다.
둘은 18일 밤(한국 시각) 브라질 리우센트루 4관에서 열린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탕위안팅-위양(중국)을 2-0(21-8 21-17)으로 완파했습니다. 둘 모두 첫 올림픽 메달입니다.
이번 대회 한국 배드민턴의 처음이자 마지막 메달이기도 합니다. 당초 대표팀은 이번 대회 최소 금메달 1개 이상의 목표를 세웠습니다. 남자 복식 세계 1위 이용대-유연성(30 · 수원시청)에 대한 기대감이 컸습니다.
여기에 세계 3위 김사랑(27)-김기정(26 · 이상 삼성전기)와 혼합복식 세계 2위 고성현(29 · 김천시청)-김하나(27 · 삼성전기)도 금메달 후보로 꼽혔습니다. 단식에서도 여자 세계 7위 성지현(26 · MG새마을금고)과 남자 8위 손완호(28 · 김천시청)도 잘만 하면 메달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하지만 믿었던 이용대-유연성이 8강에서 세계 12위에 충격의 패배를 안았습니다. 고성현-김하나와 김사랑-김기정 역시 8강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성지현, 손완호 등도 줄줄이 8강에서 고배를 마시면서 분위기가 심각해졌습니다. 리우에서 대표팀에게는 악몽과도 같았던 8강이었습니다.
사상 첫 노 메달의 위기감이 엄습해왔습니다. 대표팀은 배드민턴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92 바르셀로나 대회 이후 2012 런던 대회까지 빠짐없이 메달을 캐냈습니다. 금메달 6개, 은 7개, 동 5개로 나름 효자 종목에 분류됐습니다. 그런데 리우에서 대위기를 맞은 겁니다.
정경은-신승찬은 아픔을 딛고 동메달을 따내 한국 배드민턴의 메달 명맥을 이었습니다. 경기 후 정경은은 눈물을 흘리며 감격을 누렸습니다.
이후 인터뷰에서 둘은 아쉬움을 털어놓으면서도 홀가분한 마음도 들려줬습니다. 언니 정경은은 "일단 끝나서 너무 기분좋고 동메달이라도 따고 갈 수 있어 감사드린다"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값진 메달"이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신승찬도 "4강전은 아쉬웠다"면서도 "많이 힘들었는데 (동메달 결정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고 나와 메달도 딸 수 있어 기분 되게 좋다"고 후련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배드민턴 선수단의 대회 첫 메달. 이용대, 유연성 등 선수들은 이날 경기장을 찾아 열띤 응원으로 마지막 남은 희망 정경은, 신승찬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동료들의 응원이 동메달 스매싱의 속도를 조금은 높여줬을 겁니다.
정경찬은 "다들 힘든 과정을 겪고 고생해서 왔다"면서 "그런 걸 아니까 (메달 무산이) 가슴이 아픈데 마지막까지 나와서 응원해준 동료들이 제일 고맙다"고 애틋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신승찬도 "끝까지 나와서 응원해주셔서 너무 감사한다"면서 "조금이나마 보답한 거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거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둘의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특히 정경은은 김하나와 함께 나선 4년 전 런던 대회 여자복식에서 위양-왕샤올리(중국)의 이른바 져주기 파문에 휩쓸려 실격을 당했습니다. 정경은은 "4년 전 안 좋은 일이 있었고, 이번 대회도 우리밖에 안 남아서 부담이 컸다"면서 "4강전 뒤에는 진짜 힘이 들어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사실 둘은 호흡을 맞춘 지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정경은은 당초 장예나(27 · 김천시청)와 짝을 이뤘지만 성적이 좋지 않아 대표팀은 파트너 교체를 단행했습니다. 올림픽을 1년 정도 앞둔 시점에서는 모험일 수 있었습니다. 서로 눈빛만 봐도 척 알아서 해야 하는 경지에 이르기 위해 손발을 맞출 시간이 경쟁자들보다 부족해 이를 벌충하기 위해 더 힘든 노력이 들어갔을 것임은 자명합니다.
이런 힘겨운 과정은 "서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절절하게 드러났습니다. 정경은은 "(짝을 이룬 지) 1년 됐는데 (신승찬이) 잘 따라와줬다"면서 "4살 차이인데 언니한테 스스럼없이 하는 게 제일 고맙다"고 운을 뗐습니다. 이어 "4강전 끝나고도 수고했다는 말도 못했는데 그게 제일 미안하고 너무 고맙다"고 말하면서 새삼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이에 동생에까지 눈물 바이러스가 퍼졌습니다. 한동안 눈물을 닦아내며 말을 잇지 못한 신승찬은 "솔직히 내 실력으로 여기까지 올라올 것이 아니었다"면서 "언니가 세계적인 선수에 들 정도로 잘하는데 우리가 복식을 해도 되나 할 정도로 버거웠다"고 그동안의 심적 부담을 털어놨습니다.
훈련은 짧았지만 호흡은 좋았습니다. 정경은은 "1년을 남기고 파트너 교체가 쉽지 않은데"라는 말에 "운도 따라줬다"면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다 보니 집중해서 했고, 승찬이의 네트 플레이와 내 후위 역할이 많이 맞아떨어졌다"고 동메달의 원인을 분석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에 호흡을 맞추기 위해 더 많은 시행착오의 기간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둘의 궁합은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언니가 힘들어도 둘을 끌어줬고, 동생 역시 어려웠지만 믿고 따랐습니다.
그 결과가 리우올림픽에서 나온 한국 배드민턴의 명맥을 이어준 메달이었습니다. 그걸 정경은, 신승찬이 대표팀에 안기며 동료들의 상처를 감쌌습니다. 유일한 메달이었지만 의미가 컸고, 대표팀은 아쉽지만 그래도 값진 성과를 안고 귀국길에 오를 수 있을 겁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 혹시나 싶어 앞서 정경은이 했던 "4살 차이인데 스스럼없다는 말에 뼈가 있는 것이냐"는 농담섞인 질문을 슬쩍 던져봤습니다. 이를 덥썩 물었습니다. 정경은은 "없다고 할 수는…"이라고 묘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뭔가 건지려고 하는데 신승찬이 "이제 끝났으니까 말 안 하죠"라며 유쾌하게 웃으며 빠져나가더군요. 막내라지만 언니의 훈육(?)에 단련된 내공이 제법 느껴지는 대목.
둘의 다정한 사진 촬영을 요청하면서 "이제 야자 타임을 한번 하는 게 어떠냐"는 말을 하자 신승찬은 "그러자"고 환호를 질렀습니다. 그런 동생을 정경은은 귀엽게 쳐다보며 웃었습니다. 리우에서 한국 배드민턴의 노 메달 위기를 극복한 원동력, 4살 차 파트너의 눈물과 웃음이 섞인 '밀당' 워맨스(Womance)는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