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올림픽에서도 장거리 육상은 케냐의 독무대다. 올림픽의 꽃인 마라톤의 여자 부문에서 케냐의 젤라가트 제미마 숨공(31)이 지난 15일 2시간 24분 4초로 우승했다.
1만m에서도 풀킵픈게치 타누이(26)와 비비안 젭케모이 체루이요트(33)가 각각 남자, 여자 부문 은메달을 나눠가졌다.
장거리 육상에서 케냐 선수들이 강세를 보인 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01년 한국의 이봉주 선수가 우승할 때까지 보스턴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는 케냐 선수들이 돌아가며 10연패를 달성했고, 이후에도 6연승을 차지했다.
올림픽에서도 케냐는 1968 멕시코시티올림픽 이후 육상 장거리에서만 금메달 25개, 은메달 34개, 동메달 24개로 총 83개의 메달을 가져갔다.
이처럼 케냐 선수들의 독주가 계속되면서 케냐 선수 유치 경쟁까지 벌어졌다. 지난 16일 여자 4000m 장애물 경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루스 예벳(20)의 국적은 바레인이지만, 고향은 케냐다.
바레인은 2013년 케냐 고교선수권에서 우승한 예벳을 점찍어 오일 머니를 앞세워 각종 지원을 약속해 귀화시켰다. 케냐에서는 생계를 잇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했던 예벳은 바레인의 제안을 받아들여 2014년 국적을 바꿨고, 새로운 조국에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겼다.
심지어 한 케냐 신문은 이번 올림픽에서 다른 나라에 귀화해 출전한 케냐 출신 육상선수가 30여명이나 된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케냐 장거리 선수들의 상당수는 케냐 서부 그레이트리프트 계곡에 모여 사는 칼레진족 출신이다. 이들이 사는 곳은 해발 약 2000m 수준의 고지대로, 이 곳에서 칼레진족은 하루 평균 7.5km를 가축을 몰며 걸어다닌다.
미국올림픽위원회의 선수성과연구소에 따르면, 칼레진족은 팔다리가 길고 허리와 골반이 가늘기 때문에 큰 걸음을 내딛고도 산소 소모량이 적다고 분석했다.
또 덴마크 국립의료원도 "케냐 선수들은 하체 근육량이 유럽 선수보다 12% 이상 적기 때문에 에너지(산소) 소비가 유럽 선수에 비해 8% 정도 줄어든다"고 밝혔다.
물론 이같은 유전적 요인만으로는 케냐의 장거리 육상 제패를 설명할 수는 없다. 오랫동안 장거리 육상 최강의 국가로 군림하면서 케냐에는 육상 전문 업체·육상 클럽의 스카우트들이 선수를 발굴해 훈련시키고, 대회에 출전시키는 등 체계적인 선수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아울러 세계 최대 규모의 슬럼가인 코로고쵸(Korogocho)가 남아있는 등 빈부격차가 심각한 케냐에서 많은 청소년들이 천문학적 규모의 상금과 광고료를 받을 수 있는 육상 스타가 되겠다는 강력한 동기를 갖고 고된 훈련을 견디는 것도 장거리 최강 국가의 비결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