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표는 호남 출신 '흙수저'를 자처해온 비주류 정치역정을 바탕으로 위기에 빠진 당을 구원할 해결사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이에 부응하듯 집무 첫날부터 최고위원들의 발언권을 제한하는 등의 파격 행보로 뭔가 다른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12일 당 사무처 월례조회에선 후배 당직자들을 '아우님'이라고 부르며 분발을 독려했고, 15일에는 사전예고 없이 한국과학기술연구원과 경희대 등을 방문해 즉석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선거 때도 밀짚모자에 배낭 하나 둘러매고 밑바닥 민심을 훑어온 그에게 이런 방식의 행보는 꾸미지 않은 듯 자연스럽다.
집권당 대표가 격식을 파괴하고 거침없는 화법으로 민심과 직접 소통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개혁·혁신의 이미지 효과가 상당하다.
최고위원 발언권 제한도 다소 논란이 있긴 했지만 기존 '봉숭아학당'식 비효율을 걷어낸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평가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 대표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식하는 결과로 이어지면서 독선적 리더십에 대한 우려와 지도부 내 균열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한 비박계 중진의원은 "최고위원도 엄연히 경선을 통해 당선된 지도부의 일원인데 이런 (발언권 제한) 상태가 얼마나 가겠느냐"면서 "지도부 면면으로 볼 때 (비박계보다) 오히려 친박계 최고위원들이 더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편으론 박 대통령의 전폭적 신임에도 불구하고 당내 세력화가 약하고 낮은 선수(3선) 등으로 인한 리더십의 한계도 감지된다.
이 대표는 17일 취임 후 첫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를 소집했지만 중진 21명 가운데 참석자는 8명에 불과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 보다도 훨씬 중요한 문제를 남겨놓고 있다. 당으로부터 이탈하는 민심과 지지층의 신뢰를 되찾기 위한 근본 처방책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특히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문제는 이정현 체제가 독자성을 가질 수 있을지 판가름할 리트머스 시험지다.
그러나 이 대표는 미온적 태도로 일관하면서 벌써부터 당내 비판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17일 원외당협위원장 회의에서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인물이 없는 것도 아니"라면서 우 수석 경질을 건의하라고 요구했고, 이성헌 전 의원도 청와대에 대한 '쓴소리'를 강하게 주문했다.
8.16 개각에 대해 이 대표가 청와대를 두둔하는 태도도 당 안팎의 실망감을 낳고 있다.
그는 박 대통령에게 건의한 '탕평 인사'가 여지없이 거부 당했음에도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것"이라며 물러섰다.
박 대통령은 이 대표에 대한 깊은 신뢰를 담아 전기료 인하 등의 '취임 선물'을 내렸지만, 권력의 핵심 요소인 인사에 관한 한 조금도 양보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한 셈이다.
수도권 한 중진의원은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당 대표 역할을 하기가 어려운 구조"라면서도 "이 대표도 당 대표씩이나 됐으면 이제는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