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 송로버섯·샥스핀 먹으면서 '헬조선' 금기시한 박 대통령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기자들의 취재 뒷 얘기를 가감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사진=청와대 제공)
올해 초 정부기관 주최로 열린 '한일 위안부 합의' 관련 토론회에서 한 패널이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을 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한일정상회담의 선결과제처럼 삼은 이유에 대해 "혈연적 문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행적이 트라우마처럼 작용했기에 외교적 자충수가 될 것임을 알면서도 역사문제를 양국관계의 초입에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시대에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로 창씨개명하고 충성 맹세 혈서까지 써서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한 것은 이젠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는 "그런데 일본으로부터 사실관계에 대해 책임을 인정받고 사과(12.28 위안부 합의)를 받았다는 것은, (그럼으로써 박 대통령이) 친일이 아니라는 것을 국민들이 다 알게 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박 대통령은 반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위안부 합의에 따른 굴욕외교 논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박 대통령의 '실수'가 유독 눈총을 받고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박 대통령은 안중근 의사의 순국 장소를 중국 뤼순이 아닌 하얼빈으로 바꿔 말했다. 연설문 작성자의 단순 실수였겠지만, 여당 내에서도 "왜 하필 그런 것을 틀리느냐"는 탄식이 나올 만큼 공교롭고도 얄궂은 상황이다.


마침 이날은 인기 걸그룹 소녀시대 티파니의 일제 전범기 SNS 논란으로 국민들의 불쾌지수가 급상승하던 중이었다.

지난 1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 간 오찬. (사진=청와대 제공)
더위 먹은 청와대의 좌충우돌은 그 며칠 전에도 있었다. 박 대통령은 11일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 등 신임 지도부와의 오찬에 캐비어와 샥스핀, 송로버섯 같은 진귀한 음식을 내오며 융숭히 대접했다.

박 대통령은 또 이 대표에게 전기료 인하를 선물처럼 추가로 쥐어줬지만 인하 폭은 '찔끔' 수준이었다.

살인적 폭염 속에도 전기료 걱정에 에어콘 틀기를 주저하는 서민들의 분노가 치밀어 올랐음은 물론이다.

이쯤 되면 청와대 참모들의 기강 해이 등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누군가는 책임지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건만 아무런 소식이 없다.

오히려 박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국민들의 자기 비하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질타하며 훈육하다시피 했다.

박 대통령은 "언제부터인지 우리 내부에서는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잘못된 풍조가 퍼져가고 있다"고 했다. '헬조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같은 젊은이들의 자조적 신조어를 준엄하게 꾸짖은 것이다.

누군가는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울지도 말라는 격이다.

민심을 못 읽기는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8.9 전당대회 이후 수평적 당청관계가 거론되는 등 나름 변화의 기미가 보였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대통령 한 마디에 긴급 당정회의를 갖고 전기료를 내린데 이어 역시 대통령 한 마디에 '헬조선' 인식 탈피를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수선을 피우고 있다.

17일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도 박 대통령의 '건국절' 발언을 옹호하고 야당을 공격함으로써 오히려 논란을 키우는 기회로 소진되고 말았다.

끝 모를 양극화와 실업난에 하루하루가 고달픈 서민대중과 젊은층에게 건국절은 청와대 오찬 테이블 위 송로버섯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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