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서 또 한번 올림픽 챔피언을 놀라게 했다. 향후 만리장성을 넘을 기대감을 키웠다.
정영식은 16일(한국 시각) 브라질 리우센트루 3관에서 열린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단체전 4강전에서 단식 첫 주자로 나서 런던 대회 남자 단식 금메달리스트 장지커와 막상막하의 접전을 펼쳤다.
1세트를 따내며 기선을 제압한 정영식은 2세트를 내줬으나 다시 3세트를 가져오는 기염을 토했다. 챔피언 장지커도 정영식의 강력한 드라이브와 날카로운 백핸드에 난감한 표정을 짓는 등 고전했다.
3세트 뒤집힌 경기를 다시 역전으로 이끈 장면이 압권이었다. 정영식은 잇딴 드라이브로 8-4까지 앞섰으나 이후 내리 5실점, 역전을 허용했다. 완전히 분위기를 내줬으나 정영식은 이후 3점을 얻어내 세트를 가져왔다.
특히 3세트 10-9로 앞선 상황에서 상대 공격을 날카롭게 되받아친 게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오른쪽으로 예리하게 파고든 반격에 장지커는 가까스로 받아냈지만 깜짝 놀라 넘어지고 말았다. 그 사이 정영식은 여유있게 텅빈 테이블에 공을 보내 세트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승부처 집중력과 연륜에서 살짝 모자랐다. 벼랑에 몰린 장지커는 4세트를 따낸 데 이어 5세트에도 다양한 서브와 허를 찌르는 코너워크로 4-11 승리를 거둬 경기를 끝냈다. 대표팀은 이후 주세혁(삼성생명)이 나선 단식과 정영식, 이상수(삼성생명)이 출전한 복식까지 모두 져 결승행이 무산됐다.
아쉬운 패배였지만 장지커를 몰아붙인 한판이었다. 장지커는 경기 후 3세트 넘어진 상황에 대해 "정영식이 그렇게나 잘 공을 받아낼지 몰랐다"고 혀를 내둘렀다. 예상 외의 반격에 허둥대 넘어졌다는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입은 허리 부상에 대해 장지커는 "내 플레이에 영향을 미쳤지만 치료를 받지는 않았고, 이겨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정영식은 울지 않았다. 정영식은 "마룽과 대결 때는 첫 올림픽과 세계 1위에게 이길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심리적으로 너무 흥분해서 (진 것에 대해) 자책했다"면서 "그러나 이번에는 시합 전에 생각한 것을 후회없이 다 했고, 심리적으로 냉정하게 해서 후회가 남지는 않았다"면서 "이기려면 더 발전해야겠다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
잇딴 패배가 정영식을 더욱 성장하게 만든 것이다. 잘 모르고 무턱대고 강하다고만 하는 것보다 직접 부딪혀보니 상대를 더 잘 알 수 있게 된 성과를 얻었다. 정영식은 "장지커와는 첫 대결이었고, 마룽은 올해만 4번째 만났는데 5패"라면서 "(중국 선수와) 경기를 하면서 조금 더 발전하면 기회를 잡아서 한번씩 이길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강조했다.
이철승 대표팀 코치도 "연결력, 지구력이라든지 체력 좋고 잘 버티고 있다"면서 "확실히 득점으로 연결될 공격력만 있으면 중국과도 이겼다 졌다 할 실력이 될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좀 더 공격적으로 패턴 바꾸면 좋은 선수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런 말을 쉽게 하지 못한다. 정영식은 "(중국을) 이긴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할 말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정영식은 "내가 (중국 선수를) 이겨야 후배들이 나를 보고 '중국을 이길 수 있겠구나' 생각할 텐데 아쉽게 또 졌다"면서 "이기고 나서 후배들에게 (중국을 이긴다고) 말할 수 있는 멋진 선배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졌다. 정영식은 "16강에서 져서 개인전 메달을 못 땄구나 아쉬워하고 있었다"면서 "모르시는 분들까지도 인터넷으로 너무 많이 연락이 와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너무 응원 많이 해주시고, 관심을 많이 가져주셔서 개인전을 지고 나서도, 단체전 경기를 할 때도 힘이 나고 기뻤고 책임감도 더 생겼다"면서 "너무 많은 연락에 감동을 먹었는데 더 열심히 해야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중요한 마지막 경기가 남아 있다. 오는 17일 독일과 동메달 결정전이다. 이 감독은 "메달을 따지 못하면 지금까지 해왔던 게 허무해질 수 있다"면서 의지를 드러냈다. 정영식도 "올림픽 위해 너무 열심히 준비했는데 힘든 것, 기쁜 것도 있고 3, 4위전까지 왔으니가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메달을 따고 싶다"고 다짐했다.
독일에 대한 자신감도 차 있다. 이 코치는 "전력상 살짝 밀린다"고 했지만 정영식은 "처음에는 독일의 전력이 (일본보다) 더 세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러나 이번 대회 컨디션 보고 나서 이번에는 일본이 결승에 올라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독일과 경기할 것을 생각하고 시합도 많이 봤다"고 덧붙였다.
정영식은 "국민들께서 응원해주신 만큼 메달을 따서 보답을 해드리고 싶어요"라고 또 하나의 승리 이유를 밝혔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성장해 한국 탁구의 대들보로 우뚝 선 정영식. 과연 독일을 상대로 메달을 따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