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울시의 두 얼굴, 철거민에 "똥물 튄다"

박원순 서울시장 "해결하겠다" 약속, 3개월뒤 서울시는 딴소리

옥바라지 골목. 펜스에 적힌 한 시민의 글귀(사진= 강혜인 기자)
서울 종로구 무악동의 재개발 지역, 일명 '옥바라지 골목'을 두고 문제 해결을 공언했던 서울시가 뒤늦게 입장을 바꾸고 있다.

당시 논란이 확산되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나서 "이 지역의 철거는 없다"고 약속했지만 수개월이 지나자 서울시 측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울시에) 똥물이 튄다"며 철거 위기 주민을 두고 폭언까지 일삼았다.

◇ 서울시 고위공무원, "똥물 튄다, 논의 말자"

지난 11일 오전, 서울시청에서는 종로구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에 대한 대책 회의가 있었다.

이 자리에는 권모 서울시 민생경제자문관을 포함해 공무원 2명과 주민 1명, 옥바라지골목보존대책위원회(대책위) 활동가 2명이 참석했다.

이 지역의 마지막 남은 주민 중 한 명('구본장 여관' 주인 이길자(62) 씨)에 대한 대안을 논의하던 중, 권 자문관은 느닷없이 당시 자리에 없던 이 씨를 두고 "(구본장 여관 때문에) 서울시에 똥물이 튄다"고 말했다.

골치 아픈 지역을 서울시가 맡게 돼 괜히 서울시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

해당 지역은 지난 5월 강제 철거가 시행됐다가 박원순 서울시장의 철거 중단 명령으로 극적으로 시행이 멈췄던 곳이자 박 시장이 "서울시가 나서 이해당사자들과 끝장 토론을 열겠다"고 선언한 곳이다.

따라서 주민들은 서울시를 믿고 기다리던 상황.

권 자문관은 이날 회의에서 "똥물이 튈 것 같다, 이미 실제로도 튀고 있다"고 말한 뒤 논의를 중단했다. 대책위는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날 자리에 있던 활동가 박은선(36) 씨는 CBS 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권 자문관의 그런 혐오 발언은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자문관이라는 사람이 '똥물 튄다'며 논의를 중단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펜스에 남긴 시민들의 글을 보고 있는 이길자 씨. (사진= 강혜인 기자)
◇ 주민 흠결 빌미삼아 논의 중단


권 자문관은 자초지종을 듣기 위해 전화한 취재진에게 "대책위가 그걸 기자한테 전했냐"고 되물은 뒤 "그 사람들 참 예의 없는 사람들"이라며 오히려 발끈했다.

그리고는 "걱정이 돼서 한 말"이었다고 해명했다. 권 자문관이 서울시에 똥물이 튈까 걱정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권 자문관은 "구본장 여관에 대해 추문이 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구본장 여관에서 성매매 등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는 제보를 들었다"며 "그런 추문이 도니 그것 때문에 걱정이 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권 자문관은 "재개발 조합 측이 그러한 제보를 했고, 성매매 후기 공유 사이트에도 관련 내용이 다수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내용에 대해 주민 이 씨는 명예훼손까지 거론하며 반박하고 있는 상황.

활동가 박 씨는 "서울시는 문제 해결을 한다고 해놓고 주민 흠결이나 뒤지고 있다"며 "공무원이 소라넷 같은 사이트를 보고 그걸 빌미 삼아 대책 논의를 안 하겠다고 하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씨의 딸 이모(32) 씨는 "구본장 여관은 우리 조카가 드나들고 어머니의 사위가 드나들었던 집"이라며 "왜 이렇게까지 서울시가 잔인하게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본질 호도, 모른 척, 그리고 희망고문

연세대학교 도시공학과 소속 연구원인 활동가 박 씨는 "재개발 문제에서 중요한 건, 사람들이 원치 않게 쫓겨나야 한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박 씨는 "이 문제엔 다수의 동의를 받으면 소수의 의견은 무시되는 법이 있고 수백 명의 용역을 투입해 강제로 철거를 할 수 있게 하는 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쫓겨나는 사람들에 대한 보상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현실과, 다수의 동의는 조합 측의 거짓말로 받아낼 수 있다는 현실이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만 서울시는 되려 본질에서 벗어난 것을 빌미로 논의를 미루고 있는 것.

게다가 서울시는 주민들이 재개발 조합 측으로부터 받은 1억 3천여만원의 손해배상 소송도 모른척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윤창원 기자)
박 시장이 사태 초기 "내가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더라도 모든 수단을 동원해 (철거를) 중단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주민들이 손배소를 당하니 돌아온 건 서울시의 외면.

박 시장이 나서 "갈등 해결을 위해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끝장토론을 하고 싶다"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서울시이기에 주민들은 오히려 속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딸 이 씨는 "달리 말하면 오히려 서울시 때문에 지난 4개월 동안 어머니가 노숙을 하면서 기다렸다"며 "우리는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희망적인 소식을 기대하며 기다린 주민들에게 돌아온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자극적 소문과 똥물 취급이었다.

* 옥바라지 골목은 ?

일제강점기 시대,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됐던 독립운동가 가족들이 머무르면서 '옥바라지'를 했다고 알려진 곳.
1930년대 여학생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여성 운동가 최복순 씨의 하숙집 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서울시는 이 곳에 역사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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