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시인 모친상…시를 통해 본 母 향한 사랑

박노해 시인(자료사진)
박노해 시인이 14일 모친상을 당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 2호에 마렸됐으며, 발인은 16일 오전이다.

시인이자 노동운동가였던 박노해 시인은 1957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나 고흥, 벌교에서 자랐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 객지를 떠돌며 노동과 행상으로 가족을 부양하던 어머니를 만나고자, 시인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 처음 서울 땅을 밟았다.

그는 현장 노동자로 일하던 스물 일곱살 때인 19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출간했다.

이 시집은 금서 조치에도 100만 부 가까이 발간됐고, 박노해는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리며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7년 5개월을 복역한 후 1998년 석방됐다. 이후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전쟁, 분쟁 지역을 다니며 평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박노해 시인은 어머니를 향한 사랑을 주제로 한 시를 여러 편 써내 큰 울림을 전하기도 했다. 그 중 두 편을 소개한다.

거룩한 사랑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서울서 고학하던 형님이 허약해져 내려오면
어머님은 애지중지 길러온 암탉을 잡으셨다
성호를 그은 뒤 손수 닭 모가지를 비틀고
손에 피를 묻혀가며 맛난 닭죽을 끓이셨다
나는 칼질하는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떨면서 침을 꼴깍이면서 그 살생을 지켜보았다

서울 달동네 단칸방 시절에
우리는 김치를 담가 먹을 여유가 없었다
막일 다녀오신 어머님은 지친 그 몸으로
시장에 나가 잠깐 야채를 다듬어주고
시래깃감을 얻어와 김치를 담고 국을 끓였다
나는 세상에서 그 퍼런 배추 겉잎으로 만든 것보다
더 맛있는 김치와 국을 맛본 적이 없다

나는 어머님의 삶에서 눈물로 배웠다

사랑은
자기 손으로 피를 묻혀 보살펴야 한다는 걸

사랑은
가진 것이 없다고 무능해서는 안 된다는 걸

사랑은
자신의 피와 능과 눈물만큼 거룩한 거라는 걸

출처 : '사람만이 희망이다' 박노해, 느린걸음


어머니
남도의 허기진 오뉴월 뙤약볕 아래
호미를 쥐고 밭고량을 기던 당신 품에서
말라붙은 젖을 빨며
당신 몸으로 갈 고기 한 점 쌀밥 한 술
연하고 기름진 것을 받아먹으며
거미처럼 제 어미 몸을 파먹으며 자랐습니다.

독새풀죽 쑤어 먹고 어지럼 속에 커도
못 배워 한 많은 노동자로 몸부림쳐도
도둑질은 하지 않았습니다.
일 안하고 놀고먹지도
남을 괴롭히지도 않았습니다
나로 하여 이 세상에서 단 하나
슬픔을 준 사람이 있다면
어머니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의 오직 하나 소원이라면
가진 것 적어도 오손도손 평온한 가정이었지요
저는 열심히 일했고 떳떳하게 요구했고
양심대로 우리들의 새날을 위해 싸웠습니다
투쟁이 깊어 갈수록 우리에겐 풍파가 몰아쳤고
당신은 더 불안하고 체념 속에 주저앉아
다시 나를 붙들고 애원하며 원망합니다
어머니
환갑이 넘어서도 파출부살이를 하는
당신의 염원은 우리 모두의 꿈입니다
가난했기에 못 배웠기에
수모와 천대와 노동에 시퍼런 한 맺혔기에
오손도손 평온한 가정에의 바램은
마땅한 우리 모두의 비원입니다.

오! 어머니
당신 속엔 우리의 적이 있습니다
어머님의 염원을
오손도손 평온한 가정에의 바램을
잔혹하게 짓밟고 선 저들은
간교하게도 당신의 비원 속에
굴종과 이기주의와 탐욕과 안일의 독사로 도사리며
간악한 적의 가장 집요하고 공고한 혓바닥으로
우리의 가장 약한 인륜을 파고들어 유혹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단 한 사람
어머니의 가슴에 못을 박았습니다
어머님의 간절한 소원을 위하여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의 비원을 위하여
짓눌리고 빼앗긴 행복을 되찾기 위해
오늘 우리는 불효자가 되어
저 참혹한 싸움터로 울며울며
당신 곁을 떠나갑니다

어머님의 피눈물과 원한을 품고서
기필코 사랑과 효성으로 돌려드리고야 말
우리들의 소중한 평화를 쟁취하고자
피투성이 싸움 속에서
승리의 깃발을 드높이 펄럭이며 빛나는 얼굴로 돌아와
큰절 올리는 그 날까지
어머님 우리는 천하의 불효자입니다

당신 속에 도사린 적의 혓바닥을
냉혹하게 적대적으로 끊어 버리는
진실로 어머니를 사랑하옵는
천하의 몹쓸 불효자 되어
피눈물을 뿌리며 나아갑니다
어머니
어머니

출처 : '노동의 새벽', 박노해, 느린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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