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에 들어서자 1,300여 평에 달하는 공터에 폐토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져 있었다. 건설 폐기물들과 폐자재들도 곳곳에 가득했다.
더 놀라운 것은 취재진이 서 있는 곳도 지상에서 약 1.5m 높이로 매립된 곳이라는 것. 현재 흙으로 덮여 있지만, 그 밑에는 대량의 폐토까지 매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토지주 A(44)씨도 지난 6월 초 누군가 몰래 폐기물들을 대량으로 매립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지난 3월부터 새벽시간대에 매립이 이뤄졌다는 말을 인근 공장주에게 들었다는 것이다.
A씨는 공장을 짓기는 커녕 원상복구가 될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알고 보니 지난 1월 폐토와 토사를 쌓아 임야의 높이를 올려주겠다고 접근했다가 거절을 당했던 B씨의 소행이었다.
신고를 받은 일산동구청은 B씨를 불러 폐기물들을 불법으로 매립한 사실을 시인 받았다. 원상복구도 약속 받았다.
그러나 B씨는 자술서를 쓰러 구청에 또 다시 나가겠다고 말한 뒤 잠적했다.
일산동구청은 지난 6월 27일 폐기물관리법 및 산지관리법 위반 혐의로 B씨를 일산경찰서에 고발했다.
경찰은 아직 수배를 내리진 않았지만 B씨의 행방을 찾고 있다고 지난 9일 밝혔다.
◇ 구청, 피해 토지주에게 불법 폐기물 전가해 '논란'
일산동구청이 불법 매립된 대량의 폐기물에 대한 수거를 피해자인 토지주에게 모두 전가해 논란이 되고 있다.
B씨가 매립한 불법 폐기물은 17t 트럭의 900대 분량으로 총 1만 5,300t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거 비용은 폐기물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7억 원.
A씨는 "동네 주민들을 통해 B씨가 구속돼도 교도소에 잠깐 살고 나오면 된다고 한 말을 들었다"며 "원상 복구를 할 능력도 되지 않는다는데 이 많은 폐기물을 개인이 어떻게 치우냐"고 토로했다.
일산동구청은 불법 폐기물을 매립한 행위자가 원상 복구를 할 의사 또는 능력이 없다면 관련 조례에 따라 해당 토지주가 복구를 해야 된다고 밝혔다.
환경오염 또한 우려되지만 수질 또는 지하수 오염 피해가 없어 보이기 때문에 구청에서 수거할 사안도 아니라는 것이다.
구청은 고양시 폐기물 관리에 관한 조례 제5조(청결의 책무 등) 2항에서 토지주가 소유하고 있는 토지의 청결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일산동구청 관계자는 "토지주 입장에서는 황당하겠지만 법적으로 경비원 배치 및 철책 설치를 하지 않는 등 관리 의무를 소홀히 한 책임이 있다"며 "넓게 생각해서 보면 경찰이 평소에 순찰을 하지만 시민이 강도를 당해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과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산동구청에서도 관리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법무법인 담우의 남중구 변호사는 "정부가 국민의 건강과 환경 보호를 위해 폐기물을 엄격하게 관리할 책임이 크다"며 "불법 폐기물 범죄자를 엄단하진 못하고 오히려 선량한 토지 소유자에게 수거 의무까지 부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폐기물 관리법 또는 산지관리법을 위반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