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에서 은퇴한 뒤 2년여간 자신을 보살펴준 훈련센터 직원의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사람으로 치면 할아버지 격인 전직 마약탐지견 13살 '브린'은 기분 좋다는 듯 꼬리를 흔들었다.
13일 관세청에 따르면 탐지견훈련센터를 운영하는 관세국경관리연수원은 최근 증여 대상으로 공고한 불용 마약탐지견 13마리의 입양 신청자들에 대한 선정 절차를 걸쳐 브린을 비롯한 5마리의 무상증여를 최종 결정했다.
브린은 이번에 새 가족을 찾게 된 탐지견 중 최고참이다.
나머지 저드·필승·투지·유나 등 4마리가 너댓살배기 청년견인 것에 비교하면 2∼3배는 더 살았다.
사실 관세청은 이번에도 브린을 데려갈 새 주인이 나타나지 않을까 마음을 졸였다.
브린과 같은 탐지견이 좀처럼 새 주인을 찾기 힘든 이유 중 하나는 개의 수명이 길어야 10∼15년 정도이기 때문이다.
2004년 4월에 태어난 브린은 이듬해 10월 인천공항에 배치된 이후 10년간 마약탐지 현장에 몸을 바치면서 늙어갔다.
사실 탐지견은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공항에서 활동해야 하는 만큼 영리하면서도 차분해야 해 매우 엄격한 훈련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60% 정도가 탈락하는데, 이들은 1∼2살 정도에 새 삶을 찾을 수 있다.
현장에 투입돼도 임무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보이는 개들은 비교적 어린 4∼5살쯤 입양 절차를 밟을 수 있다.
그러나 우수한 개들은 현장을 오래 지키게 되면서 나이를 먹게 마련이다.
오래 일할수록 반려견으로 함께 할 여생이 짧아지는 만큼 입양에 장애요인이 되는 것이다.
브린은 탐지견 중에서도 특이하다. 통상 탐지견으로는 후각이 뛰어나고 온순한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이 많이 쓰이지만, 브린은 스프링거 스파니엘 종이면서도 매우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2014년 11월 은퇴할 때까지 대마류 11건, 해시시 3건, 필로폰(메스암페타민) 1건 등 마약류 총 18건을 찾아냈다.
주어진 소임을 다하는 와중에 담낭에 찌꺼기(슬러지)가 쌓이는 병도 얻었다. 치료는 받았지만, 노견에 병력까지 생긴 브린을 입양하려는 이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작년 매각·증여 공고에서 브린은 외면받았다. 인천 훈련센터에서 수의사와 직원들을 의지하며 한겨울을 났다.
올해 5월부터 진행된 공고에서도 새 주인을 찾지 못하는 듯했다. 그러다 4번째 재공고에서 극적으로 적합한 지원자가 나타났다.
훈련센터 관계자는 "지원자가 있었지만 요건을 채울 수 있을까 싶어 처음엔 입양을 확신하진 못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좋은 집에 입양돼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살 수 있게 됐다. 다행이다"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관세청은 오는 16일부터 브린 등 5마리를 증여 대상자들에게 인도할 계획이다.
하지만 새 식구를 찾지 못한 탐지견들은 남아있다. 김해세관에서 7년을 일한 검은색 리트리버 '우피'(암컷) 등 8마리가 여전히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관세청은 "국익을 위해 활동한 불용 탐지견에게 적정한 예우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제2의 주인찾기를 주선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관세청은 은퇴 탐지견들에 대한 안락사 조치는 절대 시행한 적이 없으며, 훈련센터에서 안전하게 보호해오고 있다고 강조하며 "올 가을 내로 추가 증여 공고를 낼지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