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끝난 게 아냐, 이놈아!" 좌절한 구본찬을 일깨운 한 마디

남자양궁 구본찬이 12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삼보드로무 양궁장에서 열린 2016 리우 올림픽 양궁 남자 개인전 금메달을 확정지은 후 박채순 감독과 환호하고 있다.(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13일(한국 시각)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양궁 사상 첫 전 종목 석권을 이뤄낸 구본찬(23 · 현대제철). 개인전 결승에서 장 샤를 발라동(프랑스)을 7-3(30-28 28-26 29-29 28-29 27-26)으로 눌렀다.


지난 7일 단체전까지 2관왕이다. 한국 남자 양궁 사상 처음이다. 또 남녀 단체와 개인전까지 한국 양궁은 올림픽 사상 첫 전 종목 석권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하지만 절체절명의 고비가 있었다. 8강과 4강 모두 슛오프까지 가는 접전이었다.

구본찬은 8강에서 테일러 워스(호주)와 맞붙었다. 마지막 5세트에서 구본찬은 첫 발 9점에 이어 두 번째 발이 8점에 맞았다. 9점씩을 쏜 워스보다 1점을 뒤지게 된 것. 이때 구본찬은 크게 낙심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박채순 감독은 구본찬을 다그쳤다. 정신을 차리라는 강한 메시지를 보냈다. 이후 워스는 마지막 발이 8점에 맞고, 구본찬이 9점을 쏴 극적인 무승부를 이뤘다. 결국 슛오프에서 구본찬이 승리를 거둬 4강에 올랐다.

4강전 상대는 한국 양궁의 천적 브래디 엘리슨(미국)이었다. 엘리슨은 지난 런던 대회 단체전 4강전에서 한국을 잡는 데 앞장선 에이스다. 구본찬도 지난 5월 월드컵 2차 대회에서 엘리슨에 진 바 있다.

금메달로 향하는 관문에서 구본찬은 강적과 숨 막히는 접전을 벌였다. 3세트까지 무승부가 될 만큼 치열했다. 4세트를 구본찬이 따냈지만 5세트를 엘리슨이 가져가 슛오프까지 갔다. 이번에도 구본찬은 박 감독의 강한 지시 속에 승리를 거뒀다.

남자 양궁 구본찬이 12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 마라카낭 삼보드로무 양궁경기장에서 열린 올림픽 8강전에서 호주 테일러 워스와 접전을 펼치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흔들리던 구본찬을 일으켜세운 박 감독의 모습은 외국 취재진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기자회견에서 한 외신 기자는 구본찬에게 "코치의 지시가 인상적이던데 어떤 얘기를 했느냐"고 물었다.

이에 구본찬은 "경기를 하다 보면 긴장된 순간에 해야 할 것을 놓치는 부분이 많은데 그걸 주문하고 지적해주셨다"고 답했다. 이어 "감독님이 집중해라, 상대 신경쓰지 마라 계속 얘기해주셨고 덕분에 경기를 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실제 상황은 더욱 다급했다. 회견 뒤 취재진과 만난 박 감독은 당시 절박한 상황을 들려줬다. 박 감독은 "끝난 게 아냐. 준비해야지 이놈아, 뭐 하는 거야? 끝난 게 아냐. 끊임없이 얘기를 해줬다"면서 "(상대가) 8점이잖아. 따라와. 심호흡 하나 해서 준비해. 이렇게 말해줬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결국 슛오프까지 들어갔다. 박 감독은 "OK, 봤어? 8점 쐈지? 슛오프 때 절대 급해지지 마라. 더 차분하게 해라. 이런 얘기를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나를 믿고 따라와라 했더니 본찬이도 믿고 가겠습니다고 하더라"면서 "판이 보이는데, 충분히 가능한데 왜 못 따라가느냐는 말이었다"고 덧붙였다. 2번 연속 슛오프를 이겨낸 원동력이었다.

구본찬의 쾌활한 성격을 확실히 파악한 뒤 내린 지시였다. 박 감독은 "본찬이는 풀어줬다가도 확실히 잡아줘야 한다"면서 "그 선이 넘어갈 때가 있어서 거기서 확실히 끊어줘야지 아니면 그대로 무너져버린다"고 웃었다. 역사를 만든 제자와 스승의 교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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