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환(33·국민체육진흥공단)은 올림픽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다. 친구들은 연애하고 장가가고 예쁜 가정을 꾸리는데 김정환은 손에서 검을 내려놓지 않았다. 2016년 한해동안 집에 들어간 횟수가 10번도 안된다.
증명하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정환은 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리스트다. 그때 우승은 얼떨떨했다. 실력 덕분에 금메달을 딴 것인지 뛰어난 동료들 덕분에 금메달을 딴 것인지 헷갈렸다. 국가대표 경력만 11년. 이제는 자신의 힘으로 올림픽 시상대에 오르고 싶었다.
김정환은 "런던올림픽 때는 과연 내가 단체전 멤버 중 실력이 되서 나간 게 맞나, 내 실력을 증명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4년이 지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김정환은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궁금증을 해결했다.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냈다.
김정환은 11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제1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 동메달결정전에서 모이타바 아베디니(이란)을 15-8로 완파했다. 경기 시작 후 6점을 먼저 뽑았을 정도로 파죽지세였다.
경기가 끝나고 마치 금메달을 딴 것처럼 에너지를 분출한 그의 세리머니에 아낌없는 박수가 터져나왔다.
김정환에게 메달 색깔은 중요하지 않았다. 시상대에 오른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올림픽을 제대로 즐긴 것이다.
김정환은 고비를 잘 넘겼다. 준결승에서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아론 실라지(헝가리)에게 졌다. 멘탈이 흔들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베테랑답게 마음을 다잡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정환은 "지고나서 정말 흥분됐다. 4강에서 지고 3-4위전에서 져 4위를 하면 어쩌나, 그럼 도쿄올림픽에 도전해야하나 그런 생각을 했다"며 "많이 지면서 배운 게 있다. 이기고 싶은만큼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것이다. 욕심을 버리면 메달이 가까워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게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김정환은 2번의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많은 것을 놓쳤고 그 중에는 가족도 있다.
"동메달을 딴 순간 어머니가 가장 보고 싶었다"던 김정환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다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아버지 생각에 감정이 복받쳐올랐기 때문이다.
김정환은 "2008년 올림픽 티켓을 따지 못했을 때 아버지께서 괜찮다, 런던에 가면 된다고 격려해주셨는데 2009년에 돌아가셨다. 런던올림픽은 얻은 것만큼 잃은 것도 많다. 만약 나가지 않았다면 아버지와 더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을텐데…"라며 울먹였다.
이어 "아버지가 오늘 경기를 보고 계셨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 가장 기뻐하셨을 것이다. 별이라도 따다 주실 기세로 정말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신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고 말했다.
김정환은 이번 동메달을 "사막의 오아시스"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간절한 목표였다. 김정환은 잠시 검을 내려놓을 생각이다. 올림픽 때문에 놓쳤던 것들을 하나하나 되돌아볼 계획이다.
김정환은 "또래들이 놀 때 운동만 했다. 연애다운 연애도 못해보고"라며 웃으며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도 한번 못갔다. 하나씩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