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귀닫은 정부와 섬기는 리더십

(사진=자료사진)
전기요금 누진제를 둘러싼 정부 당국의 인식을 놓고 국민들의 불쾌지수가 치솟고 있다. "에어컨을 합리적으로 사용할 때도 요금폭탄이 생긴다는 말은 과장이다", "스탠드형 에어컨을 하루 4시간 사용하면 월요금이 10만원을 넘지 않는다"는 등의 산자부 고위공무원의 발언이 기름을 끼얹었다.


국민이 화가 난 이유는 누진제를 바라보는 정부 당국자의 인식에 현실감이 크게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올여름처럼 폭염과 열대야가 수 십일 지속되는 혹서기에 하루 4시간만 에어컨을 틀면서 버티는 것은 정상인일지라도 상당한 고통과 인내가 뒤따른다.

인식의 괴리가 생활패턴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냉방이 가동되는 승용차로 출근해 시원한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점심 때는 겉옷을 입어야 할 정도로 에어컨이 '빵빵하게' 작동되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공무원들이라면 폭염의 실체를 얼마나 체감할 수 있을까? 이 때문에 "장관실부터 4시간 에어컨 틀라"는 여론의 뭇매가 쏟아지는 것이다.

1단계와 6단계의 차이가 11.7배나 되는 우리나라의 현행 전기요금 누진제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다. 주부나 젊은층은 백화점이나 공공도서관, 영화관으로 떠돌며 더위를 피할 수 있다지만 우려되는 것은 임산부와 영유아, 고령층 등 취약계층이다.

거동이 불편한 이들이 4, 50만원이 넘는 전기요금 폭탄이 두려워 가마솥 더위에 실내에서 에어컨 없이 버티는 것은 국민건강상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합리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하면 된다'며 한가하게 권고할 성질이 아니라 정부가 적극적으로 제도의 문제점을 들여다보고 누진제 개편의 방향을 검토해야 할 이유다.

정부는 누진제를 폐지할 경우 결국 저소득층 부담이 늘고 오히려 부자감세만 될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현행 제도의 소득재분배 효과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실을 도외시한 측면이 있다. 고소득일수록 과거에 비해 1,2인 가구가 많아졌고, 에너지 효율이 높은 비싼 제품을 쓰고 있다. 즉, 전기요금의 효율 측면에서 고소득자가 오히려 혜택을 많이 보고 있는 반면 보호받아야 할 저소득층일수록 겨울에 전기장판이나 온열기를 사용하는 가구가 많은게 현실이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한달에 전기사용량이 300kWh를 초과하는 가구의 비중이 1998년 5.8%에서 지난해 29.5%로 크게 늘어날 정도로 소득 증가와 시대 변화에 따라 전체 가구의 에너지 소비 패턴은 서서히 바뀌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전체 전기 사용량에서 주택용이 차지하는 부분은 13%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OECD 국가 평균의 절반 이하로 충분히 아껴쓰는 수준인데도 주택용 전기요금에는 가혹한 누진제가 적용되고 있다.

따라서 현실을 도외시한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민생과제의 하나다.

단계를 축소하고, 최저단계와 최고단계의 요금격차를 줄이는 방향의 개편이 바람직할 것이다. 최대 11.7배의 누진율이 적용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이나 일본은 1.1~1.4배에 불과하고, 대만조차도 5단계 2.4배에 머물고 있는 만큼 기형적인 구조는 시급히 정상화시킬 필요가 있다. 개편에 시간이 걸린다면 혹서기나 혹한기에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방안도 우선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누진제 개편은 산업구조를 에너지 절약형으로 재편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비대위원은 "우리나라의 에너지 생산성은 일본의 절반 수준 밖에 안된다. 값싼 산업용 전기가 에너지 과소비형 산업구조를 조장하고 확대시켜왔다"고 주장했다.

에너지 과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누진제라는 정책수단을 사용하는 것 자체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합리적인 범위를 넘어서고 민생을 위태롭게 하는 수준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정부가 귀를 닫았다면 정치권이 나서서 민의를 수렴하고 행정부에 적절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게 옳다. 때마침 새누리당 이정현 신임 대표의 취임 일성도 '섬기는 리더십'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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