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라운드를 끝마쳤을 때까지만 해도 박상영은 헝가리의 게자 임레에게 4점(9-13)을 뒤지며 패색이 짙었다.
3라운드에 들어가기 전 방송에서 박상영을 비추었다. 앉은 상태에서 코치에게 무언가 조언을 들은 박상영이 눈을 감고 한숨을 크게 쉰 뒤 혼잣말을 중얼중얼 되뇌었다.
무언가 주문을 외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주변 관중들 소음으로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의 입모양은 분명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였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스스로에게 "할 수 있다"는 말을 4차례 천천히 내뱉었다.
모두가 역전은 힘들다고 본 순간이었다. 3라운드를 시작하고 10-14까지의 상황으로 몰리자 한 방송 해설자는 "이거 졌습니다. 솔직히 좀 어렵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다른 방송 해설자는 "아직 따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달라'는 의미에 가까웠지, 승리를 확신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우승 직후 진행된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FM 98.1MHz)와의 현지 전화 인터뷰에서 "(9-13, 10-14 상황에서도) 저는 포기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올림픽은 세계인이 같이 즐기는 축제"인데, 결승전에 오르자 "아, 1등을 할 수 있겠다. 이런 욕심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니까 온전하게 경기에 집중을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욕심을 걷어내고, 마음을 비우니까" 5점을 내리 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왼 무릎 전방 십자인대 파열로 1년 가까이 공백기를 가졌던 박상영.
펜싱 신동으로 불리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때까지만 해도 세계 랭킹 3위까지 올랐던 톱랭커였지만, 부상 때문에 랭킹이 21위로 내려간 사실상 메달 아웃사이더였다.
박상영은 당시를 떠올리며 “사람들이 ‘이제 박상영은 끝났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자괴감이 들고 펜싱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믿었다. 차근차근 재활한 끝에 부상을 이기고 올림픽에 출전했고, 뒤이어 모두가 힘들다고 한 상황에서 대역전의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그는 이제 한국 펜싱의 새 역사를 쓴 주인공이 됐다. 남녀 에페를 통틀어 올림픽 첫 금메달이다. 이 모든 게 "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믿은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