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이 물밑 지원하고 있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대권 가도에는 청신호가 들어왔다. 반면 주호영(4선) 의원을 강하게 밀었던 김무성 전 대표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친박계가 차기 대권 경선에 유리하도록 당직과 지역구 등을 정비하며 여권 내 권력구도 재편에 나설 경우 비박계와의 한바탕 대결도 예상된다.
◇ 친박 ‘당 체질 개선’ 예고…“반기문, 다른 토양에 심을 묘목”
겉으론 계파 정치를 끝내겠다는 말이지만, 속에 함축된 뜻은 친박계가 당권을 장악한 만큼 ‘딴 소리’가 나올 수 없다는 으름장과 같다.
최고위원이 친박 일색인 점도 이 대표의 구상을 뒷받침한다. 최고위원 중 비박계는 강석호(3선) 의원이 유일하다. 구조적으로 비주류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없는 지도부 구성이다.
이 대표는 이 같은 기반을 토대로 당을 장악하는 작업에 착수할 가능성이 크다. 당장 사무총장 인선이 관건이다. 한 친박계 의원은 “주류-비주류 구도에 신경 쓰지 말고, 능력 위주로 임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탕평책을 염두에 두지 말라는 조언이다.
당 대표와 사무총장 등 중앙당의 요직이 친박계 일색으로 짜여질 경우 강도 높은 당무 감사가 예고돼 있다. 가뜩이나 원내 다수(129석 중 70~80석)를 장악한 친박계가 원외 당협까지 물갈이에 나설 경우 새누리당은 명실상부 ‘친박당(親朴黨)’이 된다.
친박계 재선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차기 대권과 관련,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이 의원은 “반 총장이 대권을 거머쥐기 위해선 지금의 당 상황과 같은 토양에선 자랄 수 없는 묘목”이라며 “스스로 당을 만들어 힘을 규합해야 한다”고 했다.
비박계의 견제를 받고 있는 상황을 지적한 것으로 향후 경선 과정에서 부딪힘이 존재할 경우 재창당 수준의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일단 이 대표 자신은 "대선 후보를 외부에서 모셔오고, 내부도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게 경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작업을 할 것"이라며 원론적인 입장을 취했다.
◇ 비박계 김무성 가장 큰 타격…“金의 오더 안 먹혔다”
각 지역 당협 관계자들이 문자 메시지를 통해 “주호영(당 대표), 강석호‧이은재‧이부형(최고위원) 등의 후보를 지원해달라”고 했으나 강 의원 한 명만 당선됐다. 조직력에서 친박계에 역부족임이 드러난 결과이기 때문에 내년 대선 경선에 나서게 되더라도 힘겨운 싸움을 하게 됐다.
지역 조직에 이른바 ‘오더(order‧투표 명령)’를 내린 과정에서 적도 많이 생겼다. 한 비박계 관계자는 “안동 지역에 비박계의 오더가 내려왔는데, 김 전 대표의 측근인 한 원외인사 쪽에서 왔었다”고 지적했다.
해당 지역의 현역 김광림 의원이 버젓이 있음에도 다른 경로로 오더를 내린 결과 김 의원이 이정현 대표를 지지할 명분을 줬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현역 의원이 없는 지역이라면 몰라도, 현역이 있고 확실한 우군이 아니라면 오더를 주지 말았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단일화 과정에서 생긴 전략적 실수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특히 주호영, 정병국 의원이 단일화하는 과정에서 실제 당원 명부를 사용한 것이 문제로 거론된다. 친박계 당원들이 상대적으로 상대하기 수월한 주 의원으로 역선택을 하도록 방치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김 전 대표의 단일화 전략이 '혁신'이 아닌 ‘정략’으로 비친 점이 실패라는 지적이다. 비박 성향이 강한 정 의원 대신 계파 색채가 옅은 주 의원이 단일 후보가 되면서 ‘혁신 대(對) 반혁신’ 구도가 희석되고, 계파 간 맞대결 양상만 부각됐다.
내년 대선 경선이 친박 중심으로 치러질 경우 김 전 대표뿐만 아니라, 유승민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다른 비박계 주자들도 불리한 출발선에 서게 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