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바지선과 기다림…'세월호 뱃머리 들린 이후'

적막함 감도는 현장…다음 소조기 기다리는 바지선

사진 = 김광일 기자

6차례의 연기 끝에 간신히 성공한 세월호 선수들기 후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찾은 사고 현장은 적막했다.

소조기를 기다리며 작업을 멈춘 바지선은 자리를 지키며 바다 위에 떠있을 뿐, 고요함 속에 인양을 기다리는 미수습자 가족의 마음에는 두려움과 기대감이 자리잡았다.

◇ 적막한 사고 해역…1km의 한계

지난 5일 오전 8시 50분쯤, 취재진이 타고 있던 작은 어선이 세월호가 침몰한 맹골수도 옆에 다다르자 물살은 눈에 띄게 거세졌다.

어선은 사고 해역으로 1km쯤 다가가자 '탁탁' 거친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일반 배들이 1km보다 가까이 접근하는 건 불가하기 때문이다.

어선 선장 이옥영(49) 씨는 "1km보다 가까이 들어가면 해경에서 곧바로 전화를 걸어온다"며 "GPS와 레이더로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더 가까이는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 = 김광일 기자
조도(鳥島)에서 남쪽으로 약 6km 떨어진 세월호 사고 현장에는 중국 상하이 샐비지 소속 바지선인 붉은 색의 '다리호(大力號)'가 떠있었다.

2년여 전 4월 16일, 뒤집힌 푸른색 뱃머리가 가리키던 사고 해역의 위치를 이제는 1만톤급의 바지선과 예인선 두 척이 알려주고 있다.

오른쪽으로 1.6km 떨어진 지점에 동거차도를, 뒤편으로 병풍도를 둔 다리호는 잠잠했다.


다리호는 15일 주기로 물살이 약해지는 소조기에만 작업을 할 수 있기에 한 달에 두 번 작업을 개시할 뿐 그 외의 날에는 그저 자리를 지켰다.

세월호를 끌어올리는 붉은 크레인은 바지선 안쪽으로 접혀있었다.

두 척의 예인선도 호우나 태풍 등 기상이 악화되면 바지선을 현장 바깥으로 빼내기 위해 양 옆에서 자리를 지켰다.

◇ 거북이처럼 진행되는 인양과 기다림

혁규 군과 동생 지현 양. 지현 양은 구조돼 고모 손에 자라고 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사진 = 권오복 씨 제공)
“선수들기 성공했다고 하니까 이제 기대가 좀 되지. 9월 말에는 목포 신항에 올 거야.”

남동생 권재근 씨와 조카 권혁규 군을 기다리는 권오복(62) 씨가 말했다. 권 씨는 “9월에는 꼭 떳떳이 (가족들) 장례를 치러주고 싶다”고 말했다.

2014년 4월 16일 참사 이후 꼬박 2년 4개월 만에 성공한 선수들기.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양을 결정하기까지 사고 이후 1년이 걸렸고 본격적으로 인양 작업이 시작되기까지 또 다시 11개월이 걸렸다.

그리고 3개월 후, 선수들기 작업이 시작됐고 그로부터 2개월 뒤인 지난달 29일. 가까스로 뱃머리가 들어 올려졌다.

가족의 시신을 찾기만을 꿈꾸며 팽목항을 지키는 미수습자 가족들은 2년 4개월의 긴 기다림 끝에 인양 과정의 첫 관문인 선수들기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바다 속에 잠긴 세월호는 이후 선미(꼬리 부분)들기 과정에 들어가, 계획대로라면 9월말 인양돼 목포 신항으로 옮겨지게 된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목포 신항으로 올 세월호에서 아직 찾지 못한 가족들을 만나기를 꿈꾸며 여전히 팽목항을 지킨다.
(사진 = 강혜인 기자)

실시간 랭킹 뉴스